지난겨울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었다. 소설에서 인상 깊은 것은 시간과 계절에 대한 작가의 설득력 있는 시각과 거기서 오는 삶의 통찰이다. 우리는 한정된 언어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자 너머에 세상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만과 좌절에 빠져 산다. 오늘은 계절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 "틀림없이 눈이 올 거야." 요아힘이 대답했다. "우리는 이런 바람을 잘 알고 있어. 이런 바람이 불면 썰매길이 생기지." "말도 안 돼!" 한스 카스트로프가 말했다. "아직 8월 초잖아."... 중략... 한스 카스트로프는 완전히 겨울로 변한 풍경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스팀이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너희의 여름은 끝난 거야? 한스 카스트로프가 사촌에게 신랄한 반어조로 물었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 요아힘이 사실대로 대꾸했다. "또 여름 같은 멋진 날씨가 오게 될 거야. 9월에도 그런 날씨가 가능해."
여름과 겨울은 상반되어 있고, 봄과 가을은 닮아 있지만 정 반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초 봄은 겨울의 기운이 짙게 깔려 있지만 늦가을에 느끼는 스산함과는 다른 따스함이 있다. 마찬가지로 초 가을 또한 여름의 따스함 이면에는 시원한 기운이 담겨 있다.
늘 생각하는 방식대로만 생각하면 4계절의 뚜렷한 4가지의 변화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마의 산>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4계절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날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환절기에, 외출하기 전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가야 좋을지 고민할 때가 있다. 예측하기 어렵다.
그 예측하기 어려운 불편함은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계절을 분리된 언어로만 이해해서 그런 것이다. 문자 이면의 것이 존재함을 깨닫고, 그 이면의 것을 읽어내는 것이, 삶에 더 필요한 것임을, 아니 더 중요한 것임을 알지 못한다. 이런 통찰이 없다면, 쓸데없는 감정의 에너지로 삶을 낭비할 때가 많아진다. 변화의 다양성이 수 없이 많은 상황을 불러 일으킨다. 삶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유연하고 변화에 대한 경우의 수는 무한대이다.
작년 4월 스톡홀름에 20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북유럽이라 서울보다 추울 것이라 예상 했지만 예측한 것 보다 더 추웠다. 봄이기에 따스했지만 갑자기 다시 겨울로 돌아갈 것처럼, 매서운 한파와 함께 눈이 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에선, 갑자기 봄이 찾아왔고 초 여름의 햇살처럼 뜨겁기까지 했다. 그 당시 불현듯 이 얘기가 떠올랐다. 동이 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이야기. 변화 직전에 센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 결국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뜻이고 의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4계절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무수히 많은 예측 할 수 없는 변화들이 일어난다. 결국 삶도 이 계절의 변화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변화하기 직전에 그 변화가 코 앞에 다가와도 그것을 감지하거나 기다리지 못하고 좌절한다. 따스한 봄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쳐, 봄의 오리라는 기대가 꺾이고 만다. 그런데 늘 봄은 온다. 변함없이 꼭 찾아온다.
가혹해 보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이다. 그 안에 삶을 사는 지혜의 정수가 들어있다.
자연의 섭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삶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무심코 지나쳤었다. 무지해서 인지 아니면 자만했었는지, 삶에 적용시켜 보려는 지혜가 없었다. 이제는 계절의 틀 안에서 무수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하며, 삶의 다양한 변화 속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언제든 순환하고 찾아오는 것임을 명심하고 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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