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갈매기(feat. NTLIVE 갈매기)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1860-1904)는 19세기말,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러시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농노 집안에 태어난 그는 의대에 진학한 후 돈을 벌기 위해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단편뿐만 아니라 그의 희곡을 보면 대단히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다. 감성에 호소해서 연민을 일으키기보다는 관찰자 입장에서 인물과 상황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1890년 당시 러시아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진 사형수들 유배지인 사할린 섬을 다녀온 안톤 체호프는 그 지옥 같은 삶의 현장을 수필로 남겼다. 사할린 섬을 다녀온 이후 그의 작품세계는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 섬의 여정 이후 남긴 희곡이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이다. 이 네 작품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희곡이며 세계적인 극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과 함께, 연극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이 네 편의 희곡을 필독서로 읽어야 한다. 이 네 희곡 중에 나는 <갈매기>를 제일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공연으로 올리고 싶은 작품이었기에, 외국 여행 갔을 때 관람하고 싶은 공연 중 하나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주 관람한 영국 NT Liv의 <갈매기> 공연 영상은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흡족한 공연이었다.

안톤체호프의 <갈매기>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지망생인 뜨레플레프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친구 니나는 배우 지망생이다. 뜨레플레프는 자신이 쓴 극작품으로 니나를 배우로 연극을 올린다. 가족인 엄마 아르까지나, 삼촌 소린, 주치의인 도른, 소린 집의 집사인 샤므라예프, 그의 부인 폴리나, 뜨레플레프를 짝사랑하는 그들의 딸 마샤, 그녀와 결혼하고자 하는 메드베젠꼬를 관객으로, 공연을 올린다. 아르까지는 자신의 아들의 공연에 대해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평을 하고 그녀의 아들은 그것에 좌절한다. 이 공연 후 배우 지망생인 니나는 아르까지나의 남자친구이면서 유명 작가인 뜨리고린과 사랑에 빠진다. 이 젊고 열정적인 배우 지망생인 니나의 사랑 고백에 감동한 뜨리고린은 그녀를 통해 새로운 소설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뜨레플레프는 작가로서의 좌절과 니나를 짝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아르까지나와의 갈등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총으로 죽여 그 분노와 억압을 표출한다. 급기야는 자신의 머리를 권총으로 쏘는 자살을 시도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아르까지나는 뜨리고린과 함께 오빠 소린의 집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트레플레프를 남겨 둔 채 떠난다.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4막, 뜨레플레프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고, 뜨리고린과 니나는 아이까지 낳았지만 아이는 죽고 니나는 형편없는 배우로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니나를 버리고 뜨리고린은 아르까지나와 다시 연인 관계로 돌아온다. 소린의 집에 모두 모여 집안사람들과 게임을 한다. 그 사이 뜨레플레프와 니나는 오랜만에 재회하고 이 작품에서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니나의 긴 고백이 이어진다. 그녀를 붙잡는 뜨레플레프를 거부하고 니나는 다시 그의 곁을 떠난다. 뜨레플레프가 2년 전과 같이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또 쏘고, 그 사실을 알리는 도른의 대사로 극은 끝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언급되는 것이 '갈매기'에 대한 의미일 것이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등장인물 모두를 상징할 수 도 있겠고, 인간이 가지는 꿈, 이상, 혹은 욕망의 상징이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은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배우로서 입는 옷에 대해서 신경 쓰고, 뜨리고린은 독자의 눈치를 보고 글을 제 때 발표해야 되는 것이 고통스럽다. 니나는 배우로서 명성을 쫒고 뜨레플레프는 니나와 엄마의 사랑의 결핍에 늘 목말라하며,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한다. 소린은 과거를 쫒고 마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뜨레플레프만을 욕망한다. 그녀의 엄마 폴리나는 주치의인 도른에게 사랑받기 위해 집착한다. 도른은 과거 사랑했던 여배우 아르까지나 곁을 맴돈다. 폴리나의 남편인 샤므라예프는 자신 스스로를 충실한 집사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에 집착하고, 따뜻한 아버지와 남편은 아니다. 마샤의 남편이 된 메드베젠꼬는 현실에 쫓겨 마음에 여유도 없고 자신감도 없다. 이들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자신들의 결핍을 메꾸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늘 제자리이다. 갈매기처럼 말이다. 갈매기는 날갯짓을 하고 아주 멀리 떠날듯한 모양새이지만 호숫가 근처를 맴돌고 육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배경인 호수가 상징하는 의미 또한 비록 깊고 넓어 바다처럼 호수가 보이더라도, 결국 갇혀있는 물이다. 고여있다. 등장인물과 자연(갈매기와 호수)은 닮아있다. 크고 원대해 보이기도 하지만 갇혀있고 한정되어 있다. 틀 안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국립극장에서 상연된 영국 제이미 로이드 컴퍼니(Jamie Lloyd Company)의 갈매기 공연은 갇혀있고 한정된 공간을 빈 무대로 보여 주었고, 소품 없이 의자와 배우들의 연기로만 극을 끌고 갔다. 세트 없는 빈 무대가 넓고 심플해 보이지만 모든 등장인물이 한 공간에서 거의 큰 이동 없이 연기하기에 그 공간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숨 막히는 공간으로 변해간다. 객석에 있는 나에게까지 그 답답함이 전해졌다.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로 숨 막힘이 느껴질 정도다. 이 공간의 답답함을 환기시키는 것은 트레플레프가 쏘는 총성 소리이다. 갈매기를 죽이고 트레플레프 자신을 죽이기 위해 총을 쏜다. 어쩌면 이것은 트레플레프가 그 답답한 공간을 탈출하려는 시도 일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틀 없는 무한한 공간으로 이동하려는 시도,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갈망의 발현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가 열렬히 사랑하는 니나 또한 자신의 틀을 깨고 다시 나아가려는 인물이다. 뜨레플레프 보다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 틀을 벗어나게 된다. 뜨리고린과의 사랑으로 명성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뜨리고린과의 불안한 사랑으로 연기에 집중하지 못해 주목받는 배우가 되지 못했고, 뜨린고린과 사이에서 낳은 아기마저 죽게 되는 슬픔을 겪게 된다. 인간의 삶에서 경험하는 여러 고통들을 한꺼번에 경험한 그녀다. 그 고통을 통해 그녀가 가지고 있던 내면의 틀을 깨게 되고 정신의 자유로움을 얻어 강해지게 된다.
내가 여기 살아 있는 동안에 나는 계속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 안에, 정신적인 힘이 성장하는 걸 느껴요. 이제는 알아요, 코스챠. 우리가 하는 일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무대에서 연기를 하든, 글을 쓰든 간에 중요한 것은 내가 꿈꾸는 이상, 명성, 영광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단지 살아가는 거예요. 각자에게 주어진 자신만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에 대한 신념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덜 고통스러워졌어요. 이제 두렵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니나의 마지막 대사이다. 이 공연에서 니나역을 맡은 배우 에밀리아 클라크는 이 독백을 멋지게 해냈다. 마지막 엔딩에서 방긋 웃는 그녀의 미소는 우리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육체를 죽이고 자신의 틀에서 트레플레프가 탈출하려는 변화를 시도했다면 니나는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통해서 과거에 지녔던 생각의 틀을 깨고 거듭난다. 머물러 있고 늘 하던 것에 익숙함에 벗어나 성장하려는 인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싶다. 생각의 쓰레기 더미로 삶이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공연의 무대에는 등장인물의 등 퇴장로가 없었다. 어떻게 했겠는가! 극의 공간이 아닌 객석으로 나와 퇴장했다. 간단했다. 무대 안에서만 등 퇴장해야 된다는 고정된 틀을 깨면 되는 것이었다. 시각적인 효과를 없애고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작품을 끌고 간 연출의 도전과 시도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이런 도전 또한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욕망과,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이나 시행착오의 산물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성장은 세상이 정해준 물리적 공간의 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가 이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면 각색자와 연출자의 새로운 시도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무한 사랑을 보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