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feat. 욥의 자만과 집착)
영화 <리바이어던>은 2014년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유럽 영화를 좋아하는데 러시아 영화를 본 적이 없어 검색하던 중 이 작품을 알게 되어 보았다. 예전에 관람했던 유럽 영화들과는 다른 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광활하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장면 속 느껴지는 에너지와 원초적이며, 짐승 같은 힘을 느끼게 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정이 강하고 성격 급한 콜랴는 아내 릴랴와 사춘기 아들 로마와 아름다운 해안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은 콜랴에게 헐 값으로 그 해안가 집을 빼앗아 자신이 차지하기를 원한다. 이일로 법정 소송이 붙은 콜랴는 친한 친구이자 모스크바의 유능한 변호사인 드미트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법원은 시장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만다. 한편 이를 회복하기 위해 시장에 대한 비리 자료를 가지고 있던 드미트리는 이것을 해결하려 한다. 그렇게 하는 중에 경찰서에서 난동을 핀, 콜랴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드리트리는 시장의 비리를 폭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상하고, 콜랴를 감옥에서 풀어주게 하면서, 해안가 집을 인수하기 위해 적정한 돈을 시장으로 하여금 지불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콜랴는 자신의 부인 릴랴와 친구인 드미트리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극은 다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불륜을 저지른 죄책감을 느낀 릴랴는 해안가 절벽에서 실종되고 며칠이 지난 후 콜랴는 부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부인 릴랴를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간다. 그리고 그의 집은 바로 철거되고 얼마 후 해안가 콜랴의 집은 교회로 탈바꿈한다.
이 영화는 성경 속 괴물 레비아탄과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 41장에 나오는 바다 괴물인 레비아탄, 즉 인간의 힘을 제압하는 괴물에서 나온 말로, 성서 속 이 괴물이 내뿜는 힘처럼, 누구도 대항하지 못할 국가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홉스가 펼치는 내용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란 국가가 생기기 전의 인간 모습을 말한다.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보다 더 큰 힘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서로서로 싸움을 거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계속된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국가는 이때 등장한다. 계약을 어겼을 때 상대를 무자비하게 처벌하여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도록 하는 힘 그것이 바로 국가이다. 국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항해서는 안된다. 만약 국가가 무너진다면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계약을 지키게 하는 힘이 없어지고 만다. 강력한 국가가 주는 평화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따라서 국가는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토머스 홉스의 주장을 안드레이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로왔다. 시장은 콜랴의 집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제의 조언을 들으며 일을 진행한다. 정치와 종교의 결탁은 평범한 콜랴의 집을 교회로 탈바꿈시켜 버리고, 콜랴의 아름다운 해변가 집은 신을 모시는 교회가 된다. 교회를 짓는 과정에서 생긴 죄는 죄가 아닌가. 신의 성전을 통해 면제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시장과 사제는 가지고 있었을까. 오래전에 지어져 보존된 유럽의 성당들 또한 신을 담보로, 개인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희생을 거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속 해안가 성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콜랴의 고통은 흔적조차 없어져 잊힐 것이며,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 레비아탄과 마찬 가지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의 상징으로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을 것이다.

콜랴:
신부님 자비롭고 전능한 신은 어디 있는 거죠?
신부:
나와 함께 게시죠. 당신의 신은 모르겠군요. 누구에게 기도하죠? 교회에서 본 적 없는데. 금식도 영성체도 고해도 안 하잖소.
콜랴:
촛불 켜고 그딴 거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이미 늦은 건 아닌가요? 죽은 아내가 돌아옵니까? 집도 되찾고요? 너무 늦었나요?
신부:
저는 모릅니다. 신의 섭리는 오묘하죠.
콜랴:
모른다고요? 그럼 왜 고해성사를 하라는 겁니까? 아는 게 뭡니까?
신부:
네가 "리바이어던을 잡을 수나 있겠느냐. 네가 그 혀를 끈으로 묶을 수 있겠느냐. 그 괴물이 네게 간청하고
부드럽게 말하겠느냐. 그렇게 비할 존재가 없지만, 그런 괴물 위에 나는 군림하는 신(왕)이다."
콜랴:
바실리 신부님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선문답을 합니까?
신부:
욥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당신처럼 삶의 의미에 집착했고, 왜 화필 접니까라고 물었소. 번뇌가 심해서 피부병까지 생겼소.
아내가 설득하고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고 친구들이 말렸지만 소란을 피우고 재를 머리에 뒤집어썼소. 그러자 그를 불쌍히 여긴 신이 폭풍의 형상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소.
콜랴:
그래서요?
신부:
욥은 그제야 운명을 받아들이고 백사십까지 살면서 아들과 손자 자손 4대를 보고 늙어서 만족하며 세상을 떠났소.
영화 속 부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콜랴는 신부님이 그에게 해준 말을 통해 자신의 자만과 교만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급기야 부인을 죽인 살인자로 몰리면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콜랴는 대항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들이 모두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받아들이는 눈물을 흘린다. 그의 고통이 모두 신의 의지와 뜻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성경의 욥처럼.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국가와 종교의 힘에 굴복하는 콜랴 개인의 비극이, 끝은 아니다. 영화는 비록 끝났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더 남아있다고 본다. 개인의 욕망과 자만을 내려놓을 때 국가도 바로 서고 세상도 안정될 것이다. 콜랴는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경의 욥 처럼 잘 살아갈 것이다. 영화 속 괴물 레비아탄의 상징인 시장과 사제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레비아탄을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듯이 신이 알아서 해결해 주지 않을까? 영화에서 해결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러시아 감독이 제작한 영화를 처음 접했지만, 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하고 힘 있는 에너지가 신선했고, 그 깊은 기운이 극 중 장면들과 배우들 연기에 잘 녹아있어 기대 이상이었다.
2018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행 갔을 때 러시아는 미국이 무시할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동네 식당이나 카페 화장실이 대부분 깨끗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동네 서점이 곳곳에 있어 그곳 사람들이 책에 관심이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보면 러시아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안톤체호프, 음악가로는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세계적인 발레단체가 있는 예술 강국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더 가깝고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에 저항감이 있고, 그래서 뭔가 낯선 부분도 있지만, 러시아의 오랜 예술문화와 전통은 상당히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도 파리 루브르나 빈 미술사 박물관 못지않게 좋았다.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러시아가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최근에 본 이란 영화와 <리바이어던>을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대한민국의 언론과 교육에 자주 노출되는 서방 세계들을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모르고 사는 것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