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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보고 있는가, 이미지를 보고 있는가

와 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에 쓰인 두 작품에서 묘하게 닮은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돈키호테는 기사소설을, 엠마는 낭만소설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삶과 사랑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현실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극단적으로 전개되지만, 과연 그 모습이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우리 역시 수많은 기억과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낭만적인 사랑, 돈 많고 멋진 남자, 이상화된 성적 이미지, 성공과 행복으로 포장된 이상적인 삶, 모든 것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까지. 반복해서 접한 이미지들은 알게 모르게 기억 속에 쌓이고, 어느 ..

사유의 기록 2026.08.29

전정한 지성이란 무엇인가.

많이 안다고 지성인일까우리는 보통 학력이 높고, 책을 많이 읽으며, 지식이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 혹은 문학과 예술에 관해 깊이 이야기하고 세련된 말과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서, 지성과 교양을 느낀다.그러나 머릿속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교양 있어 보이는 것과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를 읽다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전혀 다른 기준을 만났다.“감각을 통제하는 것이 그 길의 시작입니다. 감각을 통제하지 않고 제사만 지내는 것으로는 신을 알 수 없습니다. 육체적 욕망은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버릴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지혜에서 얻어집니다. […] 진정한 지혜는 곧 감각의 통제입니다.”여기서 제사란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아니라,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고대 인도의 종..

사유의 기록 2026.08.23

잘 산다는 것은 - 책임감에 대하여

우리는 책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특정한 상황을 떠올린다. 부모로서의 책임, 맡은 일에 대한 책임, 잘못에 대한 책임처럼 무엇인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책임감은 종종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온다. ‘내가 책임져야 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감당해야 해’라는 생각과 함께 의무감과 부담감, 때로는 죄책감을 느낀다.그런데 사드구루는 에서 책임(responsibility)을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그는 responsibility를 response와 ability, 즉 ‘응답할 수 있는 능력(response-ability)’으로 바라본다.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외부 상황을 만난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말하기도 하고,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며, 예상..

사유의 기록 2026.08.16

왜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현재에 머물러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이 질문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 문제다. 플로베르가 그려낸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실제로 살아가는 현재보다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과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왜 우리는 생각과 마음을 현재에 두지 못할까.우리는 현실 자체에 머무르기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더 큰 기대를 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그 미래가 이루어졌을 때 느끼게 될 감정과 감각을 미리 만들어내고, 그것이 막연히 지금보다 더 좋을 것이라고 믿는다.현재의 삶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현실의 사람에게는 결점과 권태가 있고, 현실의 일에는 불만족이 있으며, 현실의 하루에는 피로와 불편함이 있다...

사유의 기록 2026.08.09

<보바리 부인>-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것

사랑은 남녀 모두에게 강렬한 감정이지만, 사랑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일반적으로 남성은 외모와 신체적 매력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남성들은 상대의 얼굴이나 몸매, 목소리와 같은 신체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반면 여성은 상대의 능력이나 자신감, 경제적 안정감, 사회적 지위와 같은 요소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안정감과 인정받는 느낌,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같은 감정적 충족을 불러일으킨다.사랑의 출발점은 다를 수 있지만, 플로베르는 에서 그 이면의 공통된 구조를 보여준다. 로돌프는 엠마의 외모와 관능성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자극에 끌리고, 엠마는 로돌프가 자신에게 열어줄 것 같은 새로운 삶과 낭만적 사랑,..

사유의 기록 2026.08.02

성공을 다시 생각하다

우리는 대부분 성공을 원한다. 어쩌면 삶의 여러 선택이 성공을 향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성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 기준은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대개 성공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 막연하게 받아들인다.교육과 언론,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살아간다. 좋은 직업, 안정된 자리, 경제적 여유, 남들이 인정하는 결과가 성공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그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쯤 성공이 무엇인지 스스로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다.영화 《북샵》의 주인공 플로렌스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사람처럼 보인다. 남편을 잃은 과부이고 자..

사유의 기록 2026.07.23

좋은 작품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수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를 접하며 살아간다.재미있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감동적이면 명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정말 그럴까.대중이 선호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어떤 작품은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해 우리의 인식 능력을 흐리게 하고, 어떤 작품은 인간의 욕망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며, 어떤 작품은 관객과 독자의 감정을 과잉으로 자극한다.특히 우리는 감정을 과잉으로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착각하기 쉽다.그래서 나는 감정의 강도를 작품의 깊이로 착각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싶다.물론 감동과 재미는 소중하다.하지만 감정이 작품의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기보다 감정에 몰입하게..

사유의 기록 2026.07.19

공연 발표회를 준비하며 -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이기적인 행위를 버리는 것을 버림이라 하고, 모든 행위의 보상을 내려놓는 것을 내려놓음이라 한다.”“제사(sacrifice)와 베풂(charity)과 자기 수행(self-discipline)은 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반드시 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조차도 결과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행해야 한다.”— 18장 2절, 5~6절7월에 있을 공연 발표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하나의 봉헌 즉 제사이며, 연기를 배우기 위한 수강생에게 배움의 장을 마련해 주는 베풂이고, 동시에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바라보고 다스리는 자기 수행이기도 하다.나는 젊은 시절 ‘좋은 선생’, ‘누구보다 잘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그것이 목표라..

독서 기록 2026.07.11

카프카의 <변신>-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의 감정조차 누군가가 지닌 역할과 효용 가치 위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나에게 필요하고, 위안을 주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낀다.그러나 그 사람이 더 이상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나에게 아무 효용도 주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카프카의 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의 한계를 드러낸다.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여전히 그레고르였다. 그는 가족을 걱정했고, 여동생의 미래를 생각했고, 음악을 들으며 감동했다. 가족도 그 안에 여전히 그레고르의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그럼에도 가족은 더 이상 그를 그레고르로 대하지 않는다.역할을 잃은 순간, 그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기능을 상실한 존재..

사유의 기록 2026.07.04

<벚꽃동산>을 읽고 - 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들의 희망은 헛되고,그들의 행위는 헛되며,그들의 앎은 헛되고,그들의 생각은 헛되다.미혹된 본성에 기대어헛된 희망과 헛된 앎 속에 머무는 것,그것이 악이 스며드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9장 12절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악마라는 것이 어떤 실체라기보다,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자기를 속이고, 그 속임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 스스로 만든 환영 위에서 희망하고, 행동하며, 안다고 착각하고, 생각마저 그 환영 안에 가두는 것. 어쩌면 바로 그런 미혹이 악이 스며드는 자리인지도 모른다.를 읽으며 문득 안톤 체호프의 인물들이 떠올랐다.그 작품에는 분명한 악인이 없다. 그러나 인물들은 저마다 자기 환영 속에 살고 있다.라네프스카야는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가예프는 현실을 회피하..

사유의 기록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