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해충이 되었을 때 비로소 바람직한 인간으로서 한 가정의 아들, 오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레고리의 ’ 변신’으로, 벌레가 되었을 때 가족들에게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갈 힘을 실어주어 변화를 가져다주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의 삶이 벌레보다 못한 인간의 삶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이 벌레의 삶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름없음에도, 존중받고 살았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레고리의 에고는 한 사람의 착한 아들 오빠 충실한 직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참모습이고 마땅히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레고리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고 성찰하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마치 진실이 있는 것 마냥,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습관적이고 익숙함에 자신을 맡겨 버린다. 그레고리처럼 말이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 중심인 것처럼, 열심히 사는 것이 선인 것처럼, 가정과 사회 국가라를 시스템에서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말이다.
어쩌면 외형이 인간일 때와 해충이 되었을 때나 본질적인 삶의 형태는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실한 아들로서 가족들에게 소모된 것이나 벌레가 돼버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나 그레고리 자체에 대한 존중은 결여된 상태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레고리 어머니만 그레고리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기 하지만, 그녀 역시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힘에 휘말려 옳은 판단을 내리기에 역부족이다.
그레고리는 여동생 그레테를 진심으로 위했었다. 자신의 여동생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빠 그레고리는 자신이 번돈을 그녀의 음악 공부를 위해 쓰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반면에 그레테는 오빠가 애정을 담아 만든 액자에 대해 어떤 관심도 없다. 그녀에게 눈에 보이는 오빠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빠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상실되어 있다. 그레고리의 아빠는 더하다. 불능 상태이다. 눈에 보이는 직위, 남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읽을 힘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충이 된 그레고리를 동정할 수밖에 없지만 냉정하게 카프카는 그레고리를 죽여 버린다. 그런 인간은 죽어 마땅하다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레고리의 죽음의 결정적 계기는 아버지, 잠자 씨가 던진 사과를 통해서이다. 왜 카프카는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사과를 선택했을까. 이브가 ’ 선악과‘를 따먹을 때부터 인간은 구별하고 식별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상징을 떠올려 보면, 무엇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이분법으로 사고하는 인간의 사고가 그레고리 비극의 단초가 아닐까. 인간과 벌레를 구분하고, 좋은 아들과 나쁜 아들을 구분하고, 성실한 직원과 불성실한 직원을 구분하고, 누구 말대로 인간의 모든 비극은 이 구별에서 비롯되었음을 카프카 역시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시스템에서는 관계를 맺고 살아야 생존이 가능하다.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스템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을 살아가기 위해 서, 각자 자신의 사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이 요구될 것이다. 지혜로운 선택을 위해 우선 시스템이 부여하는 과도한 책임감과 신델레라 콤플렉스에 어느 정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볼 줄 아는 힘이 필요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욕망이 자신의 욕망인지 착각하고 살지 말아야 될 것이다.
‘당신은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실상은 벌레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카프카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몸을 어떻게 가눠야 될지도 모르고 자신이 벌레인지 인간인지, 벌레처럼 산 것인지 인간으로 산 것인지 판단도 할 틈도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소모시키고, 결국 말라비틀어져 죽어가는 것조차 모르게 죽어가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카프카는 그레고리를 희생시킨 것이다. 시스템에 소모되고 희생당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조차 인식 못하는 세상 속 그레고리들의 비극을 상기하며, 제대로 된 자신만의 삶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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