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폴란드출신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성경의 십계명을 주제로 제작된 10부작 TV 드라마 <데칼로그>중 5번째 이야기를, 극장에 상영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얼마 전 블로그에 글을 올린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도 이 10부작 중에 하나인데, 이 두 영화 모두 크쥐시토프 감독이 성경의 십계명에 대한 해석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에 대한 연민이 생기고, 그에게 사형이 주어지는 게 마땅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두침침한 도시 속 배경으로 세명의 남자가 나온다. 한 명은 능력 있는 변호사를 꿈꾸는 피토르, 그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 중이다. 젊은 남자 야체크는 길거리를 배회한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스스로 고립되길 원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뭔가 반항적이고 불량스럽다. 야체크 못지않게 뭔가 나쁜 기운을 자아내는 택시 운전사는 동물을 싫어하고 심지어 그 동물들을 은연중에 학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택시를 잡지 못해 불편을 겪는 손님들의 애로 사항은 안중에도 없다. 심지어 택시가 타는 것이 절실한 그들의 힘든 마음을 부추기고,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세명은 나중에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야체크는 택시운전사를 잔인하게 죽이고, 피토르는 변호사 시험에 통과하고 야체크를 처음으로 변호하게 된다. 야체크에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사형 직전 피토르는 야체크의 어린 시절, 야체크가 사랑하던 동생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야체크가 무자비한 살인마가 아니라고 이해한 피포르는 야체크가 사형까지 당하지 않도록 사형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속수무책이다. 야체크는 사형당하기 직전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저항하지만 결국 사형당한다.

크쥐시토프 감독은 잔인한 살인자 야체크와 사악한 택시 운전자의 죽음을 놓고 관객에게 특별한 화두를 던져준다. 살인은 나쁘지만 그 죗값으로 한 인간을 사형시키는 제도가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죄를 물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의 여지를 가지게 한다. 살인죄에 대한 사형 선고가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하고 적절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감독은 변호사 피토르를 통해 전달해 준다. 피토르는 자신이 변호사가 되기만 하면 뭔가 세상의 불의를 바로잡을 것이라는 의욕에 불타있었다. 하지만 사형직전 야체크가 말한 자신의 과거 상처와 고통이 그를 살인까지 저지르는 씨앗이 되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사형제도에 대한 불신과 젊은 야체크를 지켜주지 못한 변호사로서의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야체크는 자신이 동승한 친구 차에 치어 죽은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방황했고, 그 짓눌린 마음이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가 단순하게 택시 운전사를 살인한 것이 라기보다는, 과거 죽은 여동생을 친 운전자에 대해 무의식 속 쌓인 원망과 분노 그리고 동생의 죽음 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책과 죄책감이 축적되어, 잔인한 살인 행위를 하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야체크에게 살해당한 택시 운전사도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과연 그 죽음이 하늘의 날벼락인가라고 치부하기에 그의 행동들이 순수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동물들을 학대하는 사람이었고 택시 타는 것이 절실한 손님들을 차갑게 외면했다.
인간이 인간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심지어 살인을 하는 행위와 말도 못 하고 힘없는 동물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사람에 대한 죄의 대가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가. 혼란스럽다. 이런 죄에 대한 형벌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완전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크쥐시토프 감독의 영화 속 의도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죄와 벌>의 악랄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니코프가 떠올랐다. 그는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이, 세상의 정복을 위해 살상한 것은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이 문제는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면 영웅이 되고, 한 인간을 살인하면 살인자로 낙인찍히는 세상이 과연 죄의 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죄와 벌>은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인식하게 하고, 나에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길러준 작품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크쥐시토프의 시각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되기 어렵고,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신의 권한이지 인간의 권한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죄와 벌>에서도 그랬지만 이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보면서 섣불리 한 인간의 잘못을 판단하고 죄를 설명하려 드는 것은 어쩌면 자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인간이 정한 시스템에 다양한 인간이 적응하고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완전하다고 믿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경계심을 지니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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