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든 부처님의 말씀이든, 그들의 이야기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삶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과 붓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넘어 지금도 그들의 사상은 혁명적이다. 성경 속 이야기 모두 표현방식과 접근방식이 다를 뿐 성경 속 말씀과 불교 교리는 싱크로율 백프로로,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종교임을 강조하고 타 종교를 비난하는 말들을 주위서 가끔 들을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현주 개신교 목사님이 인도나 불교 철학을 자신이 믿는 신과 그것들을 연결시켜 이해하고 깨달을 바를 저술한 책이나 방송을 듣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현주 목사님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성 있게 설파하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법륜 스님 또한 자신에 맞는 종교를 선택해서 따르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종교를 넘어 불교는 과학이라 말했다. 아인슈타인인 독일 철학자 에릭 구트킨트(Eric Gutkind)에게 타계 1년 전 보낸 편지 내용에 자신의 종교적, 철학적 견해를 밝힌다.
내가 아는 한 진짜 허공을 본 사람은 석가모니밖에 없다... 학계에서 나를 현대 과학의 아버지라 하지만, 과학의 진짜 아버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계를 부정해 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왔다. 그러나 미래의 종교는 자연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야말로 내 생각과 일치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불교신문 3477호> , 네이버 참조
나의 삶의 멘토이신 법륜 스님은 이현주 목사님처럼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진정한 수행자이며 혁명가로 보인다. 한국 불교 주류 시스템을 박차고 나와 1988년 정토회를 맨 손으로 설립했다. 유튜브가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부터, 법륜 스님은 이를 이용해 ‘즉문즉설‘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계신다. 나도 그 덕을 보았고 많은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삶을 살아가는 방향과 지혜를 쉽고 재미나게 말씀해 주신다. 이 시대의 참 종교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 중 한 명으로 생각한다. 법륜 스님은 노벨 평화상쯤은 마땅히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법륜 스님이 저술한 <금강경> <반야심경>은 어려운 불교 경전을 너무나도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이렇게 어려운 경전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썼다는 것은 본인의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 수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혁명가 붓다> 역시 부처님의 생애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그의 여정이 일목요연하고 쉽게 쓰여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읽힐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 속에 가장 내 마음에 꽂힌 말씀은 “수행 정진해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부처님에게 올리는 우리의 최고의 공양”이라는 것과, 120세 수행자였던 수밧다에게 설하신, 여덟 가지 바른 길, “팔정도”를 설한 내용이다. 예전에 듣고 알고 있던 말씀이지만 다시 이 말씀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아침마다 이것을 상기시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밧다여...마음 속에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을 신뢰하기 어렵다. 그런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논하지 마라. 내가 너에게 말하리라. 여덟 가지 바른길을 가거라. 첫 번째, 바른 견해를 가져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봐라. 두 번째, 바른 사유를 해라.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나타났다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 세 번째, 올바른 말을 해라. 네 번째, 행동을 바르게 해라. 다섯 번째, 생활을 바르게 해라. 여섯 번째, 부지런히 정진해라. 일곱 번째, 일어나는 마음 상태를 항상 알아차려라. 여덟 번째,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한곳에 집중해라.”
다른 사람말에 휘둘려 그 말에 온통 정신을 뺏겨 하루를 갉아먹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대방 말에 분노와 감정이 생기고 그 당시 기억을 꼽씹으며 화내고 슬퍼하던 날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냐 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지만, 거기서 끝내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이런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에 빠져, 자책감 마저 불러오지 않았냐 말이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런 삶을 되풀이해 살고 싶지 않은 게, 요즘 나의 화두다. 과거 바람직하지 않은 삶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런 삶이 반복돼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감정에 놀아나는 횟수와 강도를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바꿔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욕심을 내면 집착이 될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평정심에 대해 인식하고, 내면을 조절하려는 의지는 긍정적이라 하겠다.
부처님은 한 나라의 왕자로 고뇌하는 삶에 의문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 정진하며,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라. 낙수물이 바위를 뚫듯이. “ 이렇게 말씀하시며 일상을 그대로 사셨다. 수행은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호흡처럼.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면서 기독교인들에게 지녔던 편견을 깨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이 어딘가에 실체하고 있고 존재하기에, 신이 죄를 지으면 벌한다는 말을 들을 때 반발심이 일었다. 신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든 불교든 거기서 나오는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고, 좋은 말씀을 따르며 사는 것이 모든 종교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종교들이 부처님이 말씀한 “수행 정진의 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들일 뿐이며, 추구하는 진리는 모두 동일하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법륜 스님의 저서와 <즉문즉설>을 꾸준하게 시청하면서 알게 모르게 “팔정도”의 길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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