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배움으로 지혜를 얻다 (feat. 학문의 즐거움)

Christi-Moon 2023. 12. 24. 14:12

<학문의 즐거움>의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필즈상을 수상하고 자신의 전공인 수학을 통해 깊은 깨달음과 성찰을 얻은 수학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어떤 하나의 일에 몰입하고 성과를 내는 그 과정은 어떤 것이나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정성을 들여서 하고 있는 모든 분야의 일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그런 공감대를 가지기에 충분했으며, 이제껏 일을 하면서 막연하게 느낀 점을 작가는 시원하게 글로 표현해 주고 제시해 주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성장의 즐거움'을  맛보고 이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 시점이 있었다.  이제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려는 의지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태도로 살아가려고 한다. 젊을 때는 그런 마음가짐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결과와 성과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과정 자체가 즐겁고 또 그 과정에 대한 성과물은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예상치 않은 시점에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 과정 속에서 예상치 않게 얻은 것들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 다른 성장의 씨앗이 되기에 그 과정 자체에서 작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늘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창조'란 무엇인가? 이 물음 또한 어렵다. 그러나 창조는 결코 학자자 예술가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부단히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잘 해내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배운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배운다. 그 과정이 잘못된 길을 가고 그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어쩌면 더 빨리 가기 위한 도약의 신호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과정 중에 얻는 경험은 실패와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삶의 다양한 지혜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막힘없이 순탄한 길을 갔다면 다양한 지혜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순탄한 길은 자극적이지 않기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장애물이 생기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온몸이 반응하고 그것을 없애려고 에너지를 총 동원한다. 문제의식을 자각하고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의지력, 거기서 지혜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시행착오를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실패에서 얻은 지혜가 그때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니 실패와 실수에 당황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 당연한 경험이고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하던 일을 지속시켜야 한다. 이 책의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해 준다. 또 배워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죽을 때까지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살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성장의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전혀 배워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경험도 없는 사람과는 달리,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면 별 고생 없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혜에는 그런 측면이 있다. 나는 그것을 '지혜의 넓이'라고 생각한다. 너 나아가 지혜에는 대상을 깊이 살펴보는 '깊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결단력을 유도하는 '힘'이라는 측면도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공감하고 배우고 싶었던 부분은 친구를 사귀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스스로의 주체성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친구와 밀접한 끈을 형성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을 고수하는 것이다. 살면서 이 부분이 쉽지 않아 나는 늘 후회하곤 했다. 사람말에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는 나 자신이 싫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믿고 그 믿음으로  내 생각 또한 공감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이 생겨서 그야말로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귀는 것이 현명한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함을 늘 반성한다. 큰 일을 해낸 김연아 선수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보면 자기만의 방을 철저히 지키고,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밀고 나갔기에 그런 경지에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휩쓸리지 않는 베짱이 있어 보인다. 관계하는 이들을 존중하되 어느 정도의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마음이 맞는다든가 의기투합할 수 있다든가 하는 것으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을 삼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친구,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친구를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사귀어 왔다. 그 때문에 아주 친해지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 안에 있는 작은 세계에 친구가 들어오려고 할 때에는 단호히 배격하려고 노력해 왔다.

 


 
수학자인 저자의 글을 통해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막연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더 명료함을 가지게 되었는데, '수학'이라는 학문은 냉철한 이성으로만 풀어 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요구되는 상상력이라는 것은  풀어야 할 문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일종의 상상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창조해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과정임을 알 수 있었다. 수학을 푸는 것은, 자신의 몸이 철저히 그 문제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즉 물아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수학을 풀어가는 과정의 실마리가 되는 생각이나 공식을 찾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전공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았다.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 배우 스스로 늘 생각하는 방식으로 사고하며, 그것에 따른 선입관과 습관의 틀을 버리지 않고는 자신이 맡은 인물을 제대로 연기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령 살인자 역을 맡았다면 대부분 살인자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얼굴도 흉악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연기를 한다. 살인자는 흉악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배우 자신의 선입관은 다양한 인물을 창조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배우는 역할을 철저하게 그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만한다. 살인자는 살인을 할 때,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풀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유 없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살인자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살인자는 사람을 죽일 때 음식을 먹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나,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나 본질은 똑같다. 살인자 입장에서 보면 보통 인간이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나 살인하고 싶다는 충동과 욕구는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 인물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런 것을 간과하고 자신이 살인자 역할을 맡았으니 악한 얼굴을 가질 것이라는 오류에 빠져 나쁘게만 연기하려고 한다. 이처럼 수학 또한 푸는 자의 선입관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문제입장에서 풀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모든 일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수학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도 '문제'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궁극적으로 '문제'가 '자기'인지 '자기'가 문제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 융합한 사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발상이 떠오르거나 법칙을 찾게 되는 것이다. "천재란 연구 대상인 문제와 자기 자신이라는 그 두 가지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체가 돠는 사람이다."라고 한 물리학자가 말했는데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일상의 창조든 일의 창조든 창조를 하기 위해서 세상에 익숙하고 길들여져 있던 습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때로는 버릴 수 있는 도전의식과 용기가 필요하다. 또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만과 독선은 경계해야 한다. 이것을 저자는 '소심(素心)‘, ’소박한 마음', 다시 말해 비우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어떤 일에 좋은 성과물을 내면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얻은 '성공'은 독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삶은 죽을 때까지 완성이 없는 것 같다. 늘 배우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지속하면서 성장하며 살아가는데, 이런 삶의 패턴이 죽을 때까지 재생된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일을 배우고 해 나가야 할 때  빨리 해내려는 조급함과  원하는 결과만을 얻으려고 하는 집착 그리고  바라던 것을 이루었을 때 그 상태나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깨게 되니 한결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그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시행착오는 낭비가 아니었다는 믿음이 있기에 배우려는 의지를 죽는 그 순간까지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배움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야말로 축복받은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