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두 달 만에 쓰는 토마스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이다. 살림 출판사 6권짜리 이 장편 소설 중 1권 2권을 두 번씩 읽었고, 현재 3권 '이집트에서의 요셉 상'편을 읽고 있는 중이다. 독서를 하다 보면 한 권의 책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을 함께 읽게 된다. 10월 11월 홍신자 무용가님의 수필 <생의 마지막 날까지>와, 제임스 네스터가 쓴 <호흡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홍신자 선생님의 글은 오래전 <자유를 위한 변명>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있어 세월이 지난 지금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뮌헨에서 입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다. 그리고 <호흡의 기술>은, 호흡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된 이후 호흡에 대해 매일 의식하며 생활 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올바른 호흡에 대해서 다시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호흡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이 호흡에 대해서 나중에 글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자 다시 <요셉과 그 형제들>에서 말해주는 토마스 만이 주는 통찰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 토마스 만도 요셉처럼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을 통찰 할 수 있는 능력을 작가들이, 다들 지니고 있겠지만 토마스 만은 그 중에도 특별하다. 그의 필력은 인간이 지닌 깊은 무의식을 깨워주는 재능이 탁월하다. 그것을 작가의 단지 재능이라 말하기에 그의 글은 우주 같다.

우물에 빠진 주인공 요셉이 '교만'을 통해서 겪은 고통과 시련은 인간의 태도중 신이 가장 싫어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요셉이 자신의 형들에게 한 행동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요셉 스스로 깨닫게 되는 그 묘사가 가슴 깊숙이 울림을 주었다.
형들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 표정에서 요셉은 고통스러운 증오를 읽었다. 봉변을 당하면서 느낀 공포감의 대부분은 이 때문에 비롯되었다. 두렵기도 하고 주먹에 얻어맞아 아프기도 해서 울음을 터뜨리긴 했다. 형들들의 땀으로 얼룩진 면상에서 읽어낸 고통스러운 중오에 대한 동정심으로 젖어 있었다. 이런 동정심이, 형들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벗는 곤혹스러움과 만나게 되면 회환과 비슷한 감정이 된다... 요셉은 이제야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 보게 되었고, 바로 이런 일을 초래한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생각은 공포에 짓눌려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생각들은 단순히 끔찍한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황급히 날개를 달고 과거로 날아갔다. 거기엔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방패 삼아 무의식적으로, 또 일부는 뻔뻔스럽게도 절반쯤 의식을 하기도 하면서 이런 일이 터지도록 준비한 자신이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교만'이라는 것이 특별한 사람만이 지는 마음 가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악의 없다고 생각하고 무심코 뱉은 말들 혹은 의식적으로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어 행한 말과 행동들 이 모두 '교만'에서 시작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독서하는 것이 좋고 그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리고 싶은 충동에, 못 이겨 상대방에게 이야기했다면 그 또한 '교만'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독서에 대해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경계심과 불편함이 가중될 것이다. 심지어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자책마저 상대방에게 불러 일으키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저 위의 글에서 말해주듯, 중요한 점은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방패 삼아 무의적으로, 또 일부는 뻔뻔스럽게 절반쯤 의식 하기도 하면서' 상대방에게 말을 한다는 점이다. 요셉은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어 형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그것들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충동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마음을 뻇기고도 살인자들의 운명을 동정할 마음의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게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굳이 그 이야기를 하자면, 형들에게 꿈 이야기는 결코 들려주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을. 그건 사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어떤 면에서든 눈치 없고 생각이 모자란 처사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것이 분별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속으로는 항상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별없이 행동한 순간에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하고 말았다. 왜? 그렇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요셉은 형들이 준 고통을 그들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야말로 축복받은 자이다. 살인 행위를 한 형들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마음 아파한다. 자신이 이제껏 한 행동과 말들이 형들의 증오심과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요셉 자신이 받은 고통의 결과는 자신에게서 씨가 뿌려져 비롯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신에게 축복받은 자’, ’꿈꾸는 자‘ 요셉은 또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신의 섭리임을 받이들이게 된다. 자신에게 벌어진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요셉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고 밀어닥친 시련에, 좌절하지 않는다. ‘신에게 축복 받은 자’ 라는 의미는 이런 신념으로 자신과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남다른 기운을 가진 이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죽게 만들려는 것 같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까지 요셉이 그렇게 믿은 건 아니다. 가슴 깊이, 저 밑바닥에는 확신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구덩이 너머 훨씬 더 먼 곳까지 내다보시며, 그분이 항상 그렇듯, 저 멀이 있는 앞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요셉으로 하여금 형들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가게 하신 게 틀림없었다. 형들을 따지고 보면 미래를 위해 희생된 제물이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떻게 나와 같을 수 있겠는가.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 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 또한 교만이 없음을, 그리고 이 교만으로 불러들인 행동이 불어나면 예상치 못한 시련과 고통을 경험할 수 있음을 요셉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고통 받게된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고, 죽음까지 두려워 하지 않게된 요셉은 우물에서 나오게 되고 새로 태어나게 된다. 고통과 실연은 자기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것이 신의 섭리이며, 우주의 이치일 것이다.
가르치는 업을 20년 가까이해 본 결과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경우 그 일을 익히는 과정 속의 어려움을 견뎌내며, 한 가지 일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 성급하게 포기한다. 가르치는 사람을 탓하거나 혹은 주위 상황을 탓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내가 그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나 스스로의 교만과 자만이 원인이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글 쓰기 연습을 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고, 언젠가 세상에 울림이 되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그러나 빨리 잘쓰고 원하는 시간에 결과를 얻으려는 것 또한 교만이다. 교만은 스스로 잘났다고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남을 배려 잘하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것, 빠른 성과물을 기대하는 것 역시 교만에서 시작된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교만심은 살아가면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토마스 만은 욕망 뿐만 아니라 ‘교만’ 또한 자신의 파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성경의 메세지를 요셉의 스토리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토마스 만은 어두운 바다를 비쳐주는 등대 처럼, 깜깜한 밤 하늘 반짝이는 별 처럼, 나의 영혼을 밝혀주는 등대이며 별이다. 그의 영혼이 깃든 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신의 축복’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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