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의 저자 임우진은 프랑스 국립 건축가로 활동하는 건축사이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현대미술비엔날레에서 디자인 부문 최고상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그가 활동하고 있는 파리와 서울의 건축 정책과 시스템, 자신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의 사고와 이들을 관리하는 당국의 관리 방향을 비교하며, 건축을 전혀 모르더라도 쉽게 이해될 수 있고 공감가게 쓰인 글이다.
이 책을 쓴 임우진 건축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여겨진다. 건축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개인과 당국이 지나쳐 버린 정책들, 감춰져 있던 불편한 진실들을 끄집어 내주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힘을 실어준다. 책을 읽으면서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면서 늘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요즘 건축이라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얼마간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봉착한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위로와 영감을 받게 되고 두려움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의 질과 풍요로움에 대한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제시해 주었고 어느 정도의 확신과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접한 이 건축이라는 환경에 발을 내딛으며, 이와 관련된 것들이 새롭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제껏 경험했던 것들과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음에 용기를 내고 있다.
임우진 건축가처럼 자신의 일에 노하우가 생기고 연륜이 쌓이면 세상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가치관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이유는 개인에게 부와 평안한 삶을 가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받은 것들을 어느 정도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돈과 같은 물질적인 제공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직업의식을 지니고, 그 직업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큰 실천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이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작은 개인의 힘이 보태져야 만 한다. 무엇보다 세상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개인 인식의 성장이 필요한데, 그런 삶의 태도와 방향성이 나 자신과 접해있는 외부 환경과 더불어 맥락 속에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 또한 이상적인 시스템을 막연하게 실현하기보다는 보다 철저히 그 공공재를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공공재를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말은 '인간적 양심'에 대한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현실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중앙선 없는 프랑스의 도로 정책은 철저하게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도시 시스템의 실체가 기본적으로 사람이 악하다는 '성악설'에 그 철학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양심 즉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화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마음을 제어하고 통제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운데 그 통제를 인간의 양심에게 맡긴다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도시 구조에서 발생하는데,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다. 개개인은 양심적일 수도, 비양심적일 수도 있지만 교통 신호는 나쁜 사람만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조금 편하고 싶고 조금 빨리 가고 싶은 것뿐이다. 그들 모두를 비양심적인 범죄자로 매도하는 것은 쉽지만, 단속하고 벌한다고 해서 향후에도 그들이 지속적으로 양심적 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믿었던 시민들에게 상처를 입는 도시는 누군가가 뒤에서 계속 지켜봐야 하는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을 동원해 시민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사람을 이용해 사람을 제어해야 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차라리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서구의 도시들처럼 도시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선진국은 있어도 선진 국민은 없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흔히 선진국이란 그 나라의 국민 의식이 좀 더 품격 있는 질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고 생활하는 환경에 따라 새롭게 변화한다. 한 나라의 ‘시스템의 선진화’가 선진 국민을 만드는 것이기에 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효율적인 대안들이 실행되어야 선진국 반열에 오를 것이다. 스톡홀름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그 나라의 표지판들이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같은 안내 표지판의 표시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표지판을 보는 눈의 시선에 맞춰, 표지판의 높이를 고려하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기 위해 신중하게 고려한 것 같다는 말을 지인에게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여행하면서 단순히 내 느낌이라고 치부했는데, 프랑스 도시 정책 부분을 읽고 난 뒤 스토홀름 여행하면서 든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통찰하고 그것에 맞춰 정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지성이 요구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공부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성공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좋은 쓰임으로 쓰이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성과 인성을 가지고 있어야 선진적인 정책과 대안도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시스템에 따라가는 우리는 개인의 출세와 부의 축적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불편한 사실이라 생각한다. 고층 아파트, 부자 집의 높은 담벼락, 욕망의 집산인 고층 빌딩들에 대해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세금으로 운영하는 여의도 국회 의사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는 윈스턴의 책 속 인용글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고 있다.
사는 집이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건설 상품, 전 국민을 획일회된 공간에 똑같이 살게 만든 주범, 집값이 올라도 내려도 모두가 불평만 하는 이상한 시장..... 많은 학자와 전문가각 한국의 아파트를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곳에 살지 못해 안달하고 오늘도 분양 시장에는 추첨을 기다리는 인파로 가득하다... 이야기의 핵심은 왜 그곳이 외부에 적대적인 '자폐성'을 갖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주택을 샀다. 주위 사람들은 아파트가 편하지, 단독 주택을 관리하려면 신경이 몹시 쓰인다고 말했다. 주택을 어렸을 때 말고는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 측면에 대한 어려움을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당해봐야 아는 일이니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우선 아파트를 보유하기에, 수입에 비해 세금이 만만치 않았고, 획일화된 아파트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30년 이상된 빨간 벽돌집을 산 나는 이 집에 들어가서 살기 위해 댓가를 치러야 하는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다. 이 오래된 집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느니 차라리 부수고 새로 지어 땅의 효용도를 높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몹시 흔들리기도 했다.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겠지만, 나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이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음의 정리는 되었다. 35년 된 빨간 벽돌집을 부수지 않고 옛것과 지금 것을 조화시켜 잘 다시 보수해 보기로 말이다. 이 결심에 용기를 받은 결정적 계기는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글에서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20여 년 전 파리에서 갓 건축 실무를 시작했을 때, 오래된 공장 건물 자리에 사옥을 짓고자 했던 프랑스 건축주가 있었다. 전쟁 전에 지은 낡은 벽돌 외관에, 내부 구조도 노후화돼 기존 건물을 해제하고 새로 건물을 짓는 방안이 합리적이었다... 이 안이 가장 경제적입니다. 도면을 본 그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건축가님, 80년 된 벽돌벽을 다시 만들 수 있나요? 나는 무슨 질문이 그러냐는 식으로 실룩거리며 답했다. 그렇게 노후화된 벽을 왜 인위적으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만들려고 해도 불가능하지요. 제아무리 최고의 장인이라 해도요. 건축주는 옅은 미소를 띠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처럼 뛰어난 건축가도 다시 못 만드는, 80년 된 시간이 만든 그 벽의 가격은 얼마나 할까요? 미소로 가려진 그의 말속에 분노가 서려 있음을 둔감한 외국인 건축가도 느낄 수 있었다.
-임우진 건축가 블로그 글 <시간의 가격>중에서-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건축가들의 설계 측면에서 더 자유로울 것이다. 새로운 것을 구성하고 창조해 내는 것도 큰일이지만 옛것을 보존하고 그것을 현대와 조화시키는 것 또한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 자신의 완전한 작품으로 내세우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예전에 사용할 수 없었던 기술과 재료들을 접목하여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예술의 영역이며 장인 정신과 재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주택에 살아 보기로 한 선택에 책임을 지고 많을 것들을 결정해야 되는 이 시기에 임우진 건축가와 실제로 대면한 것이 아니더라도 건축에 대한 그의 가치관과 생각들이 내 결정에 보탬이 되었다. 추후 살게 될 공간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 그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지 그 길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더 나은 세상으로 진보하기 위한 의식 개혁이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안주하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식으로 몰려 간다면 사회의 성장은 더디게 이루어질 것이다. 좀 더 배운 사람들이, 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좀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임우진 건축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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