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푸른 들판을 걷다 (feat. 보여지는 너머의 사랑)

Christi-Luna 2025. 2. 9. 07:38

<푸른 들판을 걷다>는 클레어 키건의 또 다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에 비해 분량이 더 짧다. 하지만 그 안의 함축된 내용은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거대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단순한 시골 마을 어느 사제의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세 번 정도 읽으니 사제로서 소명 의식과 연인과의 사랑 사이에서 그의 고뇌가 작지 않았음이 이해가 되었다. 
 
우선 우리나라 번역본은 <푸른 들판을 걷다>이지만 원 영어 제목은 <Walk in the Blue Fields>이다. 낮에 걷는 초록색 들판이 아니라 별이 빛나는 파란 밤하늘 아래 들판을 사제가 걷는다는 의미였다. 푸른도 파랑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지만 뭔가 제목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밤하늘을 걷는다는 느낌은 푸른 밤보다는 뭔가 더 촉촉하고 아름다우며 맑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어감이 "Blue"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파란 밤하늘, 반짝이는 별빛 아래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하는 외로움을 달래는 사제에게 자연 즉 신이 선물해 준 너무나도 따뜻하고 소중한 공간의 밤하늘이었기 때문이다. 낮에 푸른 들판을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Van Gogh, La Nuit étoilée


처음 룰러 딸과 만난 그날 밤은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하러 다니느라 지쳐 있어 유독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사제는 가지고 있었다. 낮에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늘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한없는 자비심과 사랑을 내어주어야 하는 게 사제의 역할이다. 그에게 그런 사제로서 지닌 무게를 덜어주고 위로해 준 공간은 일을 마치고 한가한 밤에 파란 들판을 걷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이 곧 '신'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고, 오늘 밤 하느님이 대답하고 있다. 사방에서 야생 커런트 덤불이 풍기는 짙은 냄새가 뚜렷하다.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서 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하느님은 자연이다.

 
사제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위로와 치유의 기회를 가지는 은총을 받는다.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식에 참석해 그녀에게 축하를 해 주어야 하는 그는 그 결혼식날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터였다. 피로연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결혼식 신부와 사제와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말과 행동으로 그를 힘들게 한다. 이렇게 사제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서 떠나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하루 동안 보내게 된다. 이런 그에게 파란 들판 이상으로 그를 치유해 준 것은 그의 몸을 만져서 심적 고통을 덜어준 차이나맨의 위로였다.   
 

중국인이... 손을 뻗어 사제를 만진다... 모르는 사람의 손이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게 느껴진다. 어째서 상처보다 부드러움이 사람을 훨씬 더 무력하게 만들까? 그의 손은 건조하고 따뜻하다... 중국인이 사제의 머리 양옆에 무릎을 대고 그의 처국 맨 아래, 꼬리뼈에서부터 몸통을 지나 무언가를 끌어온다, 뭔가 딱딱한 것이 꼼짝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중국인의 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제는 미처 마음과 준비도 되기 전에 안에서 무언가 접히는 것을 느낀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접히면서 또 다른 파도를 만들 때 같다. 그의 입에서 파도가 부서진다. 그녀의 이름이 끔찍한 비명처럼 터져 나오고 다 끝난다.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으면서, 클레어 키건이 대단하다 생각한 지점은 설교와 기도로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사제의 역할과는 다르게 인간의 몸을 만져 그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 주는 차이나맨의 설정이다. 그 차이나맨은 이 소설에서 종교인이 하는 역할 이상을 수행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제가 이 차이나맨에게 질투 비슷한 부러움을 느낀다는 부분에 공감도 되었다.
 
클레어 키건은 연인들 간에 사랑하는 행위에서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교감하며 위로받지만, 몸을 만져주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서도 한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충분히 덜어줄 수 있다고 차이나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차이나맨은 사제의 몸을 보기만 해도 그에게 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사제의 몸을 만져주는 행위 안에도 신이 함께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클레어 키건은 차이나맨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사제’ 역할을 부여한 듯하다. 신은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치유받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인간을 치유할 수 능력을 선물하셨다. 자연과 인간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으리라.

보이는 사랑 너머에 보이지는 않는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사랑이, 파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들판이 이어지 듯이, 세상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이야기가 사제의 사랑을 통해 신비롭고 따스하게 작품 속에 녹아 있었다. 사제가 걸었던 별이 비추는 파란 밤 들판을 나도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