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정체성> (feat.정체성은 No-Thing)

Christi-Luna 2025. 1. 5. 06:53

밀란 쿤데라의 후기 작품인 <정체성>은 이전에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불멸> 보다, 분량이 적다. 쉽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 번 읽었지만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가볍지 만은 않다. 쓰고 나서 그 책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이 생기기도 하고 블로그에 쓴 내용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사고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번역된 문학을 통해서 원작자 사상의 본질을 읽어내는 행위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읽고 난 뒤 마음 한구석 시원치 않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지 않고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딴 얘기지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품을 온전히 우리말로 읽어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된 점은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지의 언어로 잘 번역되어 읽히기를 바란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정체성이 모호한 스토리이다. 이야기 전체가 샹탈의 꿈이었다는 게 마지막에 밝혀지면서 작품 전체가 어느 게 꿈인지 현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혼란에 빠트리고 이 책의 정체성의 틀조차 벗기고 싶어 하는 작가의 모호한 의도가 엿보인다. 소설 속 연인인 샹탈과 장마르크도 그들 스스로 상대방에게 가졌던 이미지가 노르망디 해변을 여행하는 시작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물리적 관계도 멀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상대방의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어린 아들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상탈은 남편과 이혼한 후 얼마 안 있어 샹탈 자신보다 젊은 애인 장마르크와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살고 있다. 이 둘은 여행지에 함께 출발하지 못해, 숙소인 노르망디 해변의 한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다. 늦게 도착한 장마르크는 해변가에 있던 늙은 여자를 보고 샹탈로 오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황한다. 그즈음 호텔에 먼저 도착한 샹탈은 자신이 늙어 더 이상 남성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점에 당황한다. 이제 나이 들어, 젊은 시절 가졌던 모습의 변화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샹탈에게 익명의 편지가 도착하게 된다. 늘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한 남자의 편지 내용에 샹탈은 설레어하며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일지 상상의 나래를 피고 미지의 남자에게 사랑마저 느낀다. 심지어 이 편지에 대해 같이 동거하는 연인 장마르크에게 숨긴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마르크다. 장마르크는 더 이상 젊지 않다고 실의에 빠진 샹탈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시작한 편지임에도, 자신이 만들어낸 남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샹탈의 의외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당황해한다. 얼마 후 이 편지의 주인공이 장마르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 그녀 역시 염탐하듯 자신의 행동을 관찰한 장마르크의 이면을 알게 되자 배신감 마저 느낀다. 급기야 둘의 관계는 나빠지기 시작하고 마음마저 멀어져 이별의 위기에 놓인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샹탈의 ’ 꿈‘이었고 그 꿈에 깬 샹탈은 자신 옆에 누워있던 장마르크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The Mysteries of the Horizon, René Magritte


19세기 프랑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영감을 받아 밀란 쿤데라가 <정체성>의 장마르크 편지 장면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야기 중반부 ‘시라노’ 이야기가 작품 속에 언급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속 주인공 시라노는  코가 너무 커 사랑하는 록산느 앞에서 자신감이 없었다. 너무나도 짝사랑했던 록산느를 위해 쓴 아름다운 편지를 쓴다는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정체성>을 읽으면서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시라노‘의 주제는 “정체성”이 핵심이었다. 시라노가 쓴 편지를 록산느는 그녀가 사랑하고 있는 크리스티앙이 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과 크리스티앙을 결부시켜 또 다른 크리스티앙이 시라노의 글로서 창조되고, 이것을 록산느는 믿어버린다.

셰익스피어 <리어왕>에서도 리어가 자신의 재산을 딸 셋에게 나눠주기 전, 자신을 얼마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두 딸은 그 사랑이라는 미사여구로 리어의 귀를 즐겁게 해 준다. 그러나 막내딸 코딜리어는 “사랑에 대해 실체가 없다(NO-THING)”라고 말한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리어는 막내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비극의 단초가 된다. 사랑한다는 말에 의미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사랑에 마치 정체성이 있는 것처럼, 또 그것이 진실이고 고정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돈키호테 역시 자신이 몰두한 중세 기사와 관련돼 책을 읽고 돈키호테 자신이 상상한 ’기사‘가 되었다고 믿고, 산초와 여정을 나서며, 산초와 전혀 다르게 세상의 사물과 현상을 보고 창조해 낸다.

’정체성‘은 결론적으로 실체가 없다.라고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글에서 밝혀준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된, 하나의 ’이미지‘, 즉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꿈‘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꿈을 꾸는 당시에는 그것이 사실이라 생각하면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가끔 모호하게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꿈속에서 인식하기도 하지만 깨어나 보면 확연히 그것은 실체 없는 ‘무’ 상태가 된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 언급되는 단어 ‘사랑‘ ’ 죽음’ ‘실종’ ‘꿈’ 같은 단어가, 언어를 통해, 이미지가 각인되어 실제 한다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멀리 외국에 나가 만나지 못하고 연락을 안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은  나에게는 죽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사람이 존재하지만, 나에게 보이지 않고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실체 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반대로 눈앞에 본 적이 없고 실제  살아있지 않는 한 명의 인간을 인간은 자신의 머리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작품 속 샹탈이 받은 익명의 편지 속 남자도 실체는 없었다. 하지만 있다고 믿었을 뿐이다. 장마르크 자신에게 새겨진 샹탈의 이미지와 그녀의 시누이에게 전해 들은 샹탈의 과거 이미지, 편지를 숨기며 알게 된 또 다른 샹탈의 모습은 그 어떤 고정된 실체가 인간에게 없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인이 전해준 생각이 이미지로 저장되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혹은 스스로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이미지화시키고 그것이 마치 자신과 동일시되길 원하고, 그것이 마치 ‘나’인 것 착각하고 살아간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실제로 없다는 것이 밀란 쿤데라의 견해이다.

인도 영성가 삿 구루와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괴로움을 자초하는데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아야,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말이, 이 책에서 밀란 쿤데라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샹탈은 꿈에 깨고 나서야, 자신을 사로잡은 생각과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실체 없는 꿈을 수없이 꾸고 창조하고, 그 창조물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가. <정체성>에 그 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