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배우의 ‘가짜 연기’ 인터뷰 관련하여, 남명렬 연극배우의 발언이 이슈가 된 기사를 보고 이쪽과 관련된 전공자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글로 내 생각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연기술에 있어서 ’ 방송연기’와 ‘연극연기’는 다른가? 에 대한 것을 먼저 정리해 보고, 인터뷰 기사 관련 이야기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를 하는 연기 방법론의 차이점은 연기 티칭 하면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며, 그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주기 위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연기술’이라는 기술을 티칭 하는 사람으로서 우선 이 기술에 대해, 완벽하게 뭔가를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티칭이란 것은 가르치는 자가, 어떤 기술에 관련된 지식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론을 먼저 습득하고 배우고 경험한 것일 뿐이지 그 기술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가르치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티칭 하면서 찾아내게 된다. 심지어 틀리게 알고 있었던 것들을 수정하는 과정도 생긴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와주는 ‘선생님’은 타인의 성장을 도우면서 티칭자 스스로도 성장한다. 학생들로부터 선생 역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 관계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생각한다. 스승이든, 인생의 선배든, 세상은 고정된 것이 없이 늘 변화하고 있기에 그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이다.
https://youtu.be/6KA-bKeVqpA?feature=shared
손석구 기자 회견 영상을 보면 손석구가 참여한 연극 작품에, 손 배우가 공연용 핀 마이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기자가 물어본 것이다. 기자는 매체 연기에서 명성을 얻은 손 배우가 이번 연극을 할 때, 무대 객석 관객까지 대사 전달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핀 마이크를 끼고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에서 물어봤을 것이다. 매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발성이 연극을 하기에는 약한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말이다. 인터뷰 한 기자는 매체 연기와 무대연기의 차이점에 대해 나름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나보다.
손 배우의 ‘가짜 연기’ 논란에 대한 것을 말하기에 앞서 정말 매체 연기와 무대연기는 다른가에 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보겠다. 전공자이며, 액팅 코치로서 내 답은 무대와 매체 연기는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다는 것이다. 밥을 밥솥에서 하는가? 돌 냄비에다 하는가? 아니면 집에서 하는가? 캠핑장에서 하는가? 가스불에 하는가? 연탄불에 하는가? 즉 밥을 하는 도구들과 밥을 하는 장소 즉 공간에 따라 밥 짓는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만 밥이 되기 위한 본질, 쌀을 깨끗이 씻고 반드시 물과 불을 필요 요소로 해,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밥이 되려면 쌀과 물과 열이 필요하듯이, 연극이든 영화든 관객 혹은 관람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할 장소 다시 말해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다. 연극(영화)의 3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작품이 완성된다. 이 삼요소가 무대(공간), 관객(관람자), 배우이다. 그러기에 같은 대사라고 해도 무대(공간)에 따라 배우의 연기는 달라져야 한다. 무대와 매체는 연기하는 장소 즉 공간이 달라지므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극과 영화로 만들 경우 대사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연기술은 분명 달라져야 할 것이다.
반대로 무대연기와 매체 연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관점은 이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연극이든 영화이든 배우는 자신이 맡은 인물의 생각을 관람자에게 잘 전달해 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대사 전달이 안된다면 관람자는 작품의 내용조차도 이해 못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에게 가장 요구되는 본질적인 훈련의 하나를 꼽으라면 배우의 전달력인 것이다. 이 전달을 잘하기 위해 배우는 맡은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배우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가져오는 훈련 과정이 매체든 무대든 본질적으로 필요하다.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손흥민 축구 선수가 매 경기마다 다른 장소 다른 선수 다른 날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경기를 잘 뛰기 위해 훈련을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축구 공과 친해지는 연습, 공과 자신이 하나가 되기 위한 연습을 엄청나게 했을 것이다. 공을 내 몸처럼 다루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연극과 영화라는 장르를 떠나, 자신이 맡은 인물과 하나가 되기 위한 연습은 필수적이다. 영화 <기생충>의 히로인 이정은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지방 사투리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맡은 인물을 체화시키기 위해 직접 그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 가, 그 지역 사람들과 생활하고 대화하며 공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렇듯 매체든 무대든 배우가 인물을 소화해 내기 위해 요구되는 체화 과정은 동일하다.
밥을 맛있게 잘하기 위해서 물의 양, 열을 가하는 시간, 밥 짓기 위해 요구되는 온도등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밥이 맛있게 되는 것처럼 같은 밥 짓기이지만 밥 하는 도구와 공간에 따라서 유연성을 발휘해야만 한다. 밥 짓기 고수는 그 밥을 돌솥에다 하든 냄비에다 하든 주어진 상황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해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연기도 마차가지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직접 맡은 인물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과, 카메라로 촬영하여, 화면 프레임을 통해서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르다. 배우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무대 위 배우는 펼쳐져 흘러가는 극의 역할에 몰입하는 힘이 필요하고 매체는 장면별로 연기한 것을 편집하여 영상으로 보기에, 촬영할 때 극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면서 그날 촬영하는 장면에 순간 집중해야 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객석에 있는 관객에게 대사를 전달하는 것과, 카메라로 촬영하여 화면 틀 안에서 전달하든 연기의 방법이 전달 방식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것을 유념하고 배우는 연기해야 한다. 이 점에서 무대 연기와 영상 연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남명렬 배우가 말한 것처럼 350석의 무대, 공간에서 전달력이 좋은 발성을 가진 배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남 배우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과거에는 ‘핀 마이크’ 시스템이 없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무대 기술 역시 발전하고 진보한다. 예전만 해도 무대 세트를 설치하기 위해 무대에다 못질을 해야 하고 세트를 ‘막’마다 전환하기 위해 조명을 암전 시켜 그것을 이동하고 설치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기술력이 발달해 무대 세트를 기계 시스템으로 위아래 혹은 옆으로 이동시키는 기술력이 생겼다. 유럽에서 연극 관람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을 잘 이해할것이다. 핀 마이크 기술이 나오기 이전 에는 350석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무대에서 객석까지 대사를 전달하기 위한 배우의 능력은 소리 크기 즉 발성과 상관있었다. 그것 때문에 성대결절에 시달리는 배우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과학 기술의 혜택으로, 핀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는데 굳이 이것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전기밥솥이 생겼는데 굳이 냄비에다 할 특별한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핀 마이크 사용은 공연 제작비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핀 마이크 사용이 유럽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핀 마이크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공간이 크다면, 대사 전달을 위해서 이것을 사용해야만 한다. ‘사랑의 속삭임’을 보여주기 위해, 350석 관객에게 마이크 없이 ’속삭이는 의도‘로 보이는 연기가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그야말로 ‘속삭임‘그 자체를 보여주기에는 사실성이 떨어진다.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또한 연기 몰입과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 여파로 관객 역시 극에 대한 몰입도 또한 떨어질 것이다. ’사랑의 속삭임‘에 대한 분위기가 관객에게 그야말로 ’속삭임‘ 그 자체로 전달되어야만 극은 더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350석 관객에게 ‘속삭임’이 되기 위해서 핀 마이크가 없이는 아무리 좋은 발성이라고 해도 얼마간의 ‘과장’과 ‘소리 지름’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여행 기간에 연극 공연 관람 일정을 꼭 가진다. 우리나라는 매체에 진심이지만 유럽은 무대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에 투자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려는 의지는 인터넷이 발달된 우리와 다르게 무대 관련된 기술이 굉장히 앞서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 영화배우들이 매체나 무대를 자유롭게 넘나 든다. 제임스 맥어보이, 베네딕트 컴버베치, 메리 스트립 등 공간을 넘나들면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존경받고 연기력 또한 인정받는다. 그거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갈길이 먼 듯싶다.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달함에 따라 생활 패턴 또한 급속하게 달라지고 있다. 책을 종이가 아닌 모바일로 보는 시대가 왔듯이 예술 또한 과학 기술의 발달로 변화해야만 한다. 자연 안료로 사용해 과거의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질 좋은 화학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핀 마이크 기술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성대결절 걸리는 배우가 줄어들 것이고, 좀 더 사실적이고 섬세한 연기가 이루어져 관객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극과 영상이 무대에서 하나로 만나는 또 다른 영역이 개척되고 있다. 국립극장에서 상연하는 유럽의 NT LIve 영상을 보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무대 공연이지만 영상과 결합해서 영화 못지않은 배우 표정연기의 섬세함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무대 위 배우들은 모두 ‘핀 마이크’를 끼고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혼을 집어삼킬만한 연기력을 지닌 유럽 배우들이 350석 관객에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전달 못할 정도로 발성이 약해서 핀 마이크를 찼을까 생각해 보면 ‘가짜 연기 논란’은 뭔가 씁쓸하다. 과학이 발달하면 모든 것이 그것에 맞춰 따라 변화한다. 연극이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예술로 그 지위가 영원히 고수는 되겠지만, 영상을 무대로 가져와 파생된 장르가 새롭게 개척되고 있는 지금이다. 기술력으로 영상 못지않은 ‘속삭임’ 뿐만 아니라 섬세한 배우의 감정을 공연 객석에 앉아서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니 그 세상이 낯설다고 저항해서는 안될 것이다. 변화의 움직임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는 의지와 자세를 가져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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