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할 때 사실 그 일 자체가 힘들기보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일이 크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일의 성과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2024년에는 내가 살면서 하지 않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변화를 위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사람과의 관계, 돈 문제, 상황마다 판단하고 결정해야 되는 여러 일들이 있고 함께 일할 사람을 선정하기 위한 일을 앞두고 있다.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려 말에 현혹되거나, 쉽게 두려워하거나 자만하고 과신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이 깨어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 말씀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페이 융이 쓴 <반야심경 마음공부>를 찾아서 다시 읽어 보았고, 최근 출간 된 <금강경 마음공부>를 사서 읽었다. 선입관과 틀에 박힌 사고로 가벼운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함인 것이다. 하려는 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전에 마음부터 다스리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읽으면서 뭔가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고 일을 해야 할지, 어두운 터널을 두려움 없이 나만을 의지하며 그 길을 잘 가야 할지, 책 속의 부처님 지혜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깊이 되새겨 또 하나의 성장으로 가는 길 위 용기 있게 발을 내디뎌 보자.
외부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선이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이 정이다. 외부의 모습에 집착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외부의 모습을 없애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본성은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고요하지만 다만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면 곧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경계를 보고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선정이다.
'선정'(dhyana)은 사물과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순수하고 옳은 결정을 내리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돈과 관계되는 결정을 내릴 때 참으로 긴장된다. 돈의 이익과 관련이 있을 때 사람들의 말만을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처음했던 말과 나중에 말이 달라져 신뢰에 금이 가기가 쉽다. 나 또한 돈에 집착하면 함께 일 할 사람을 판단하는데 그 집착이 걸림돌이 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 좋게 만난다. 시작부터 나빴다면 관계도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처음에 지녔던 믿음이 추후에 화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 신뢰가 깨지는 행동을 처음부터 드러내줬다면 그들 또한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기에 내게 귀인인 것이다. 앞으로 함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인연이며 고마운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무조건 신뢰하거나 불신하지 않도록 평정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마음이 흥분되고 초조해지거나 갖가지 유혹에 저항하기 힘들다면, 자신의 호흡에 집중해 보라. 오로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작에만 집중하혀 천천히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경지에 이르면 그 유일한 소리가 자신을 내면으로 데려가 주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복잡한 생각이나 명상도 필요 없다. 그저 심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내면으로 회귀해 마음속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흥분되고 초조해질 때 이것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금강경 마음공부>에 있다. 그중 하나가 합장이라고 페이 융은 말한다.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여 땅을 보는 것인데 한번 해봐야겠다. 누구에게나 접근하기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호흡이라고 말한 점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루를 보낼 때 호흡에 신경을 쓰면서 생활하는 것과 하지 않을 때,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어떤 약보다 이렇게 효과가 바로 느껴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신비롭다. 빠른 시일 안에 함께 일할 사람을 결정해야 되는데 복잡하게 생각만 하면서 두려움을 키우지 말고 호흡에 더 집중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와야겠다.
어떤 개념이든 존재의 풍부함과 복잡함을 온전히 내포할 수는 없다. '여름'아라는 개념이 실제 여름이 갖는 풍부함과 복작함을 표현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또 우리 머릿속에 '여름', '미안' 같은 개념이 생겨나는 것은 개인의 판단이 아니다. '나'가 그 개념을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그 개념에 축적된 것들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여름이라는 개념만 해도 적어도 1천 년 넘게 존재해 왔다. 모든 개념은 역사와 인연의 조합으로 인해 생겨난다. 게다가 동일한 개념이라도 국가나 개인에 따라 이해하는 바가 천차만별이다. 그 어떤 개념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람 간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은 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많다. 사람 말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되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니까 말이다. 들리는 말, 읽히는 글자 만으로 판단하거나 그 자체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도와 맥락적인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람이 하는 말, 상대방이 사용한 단어, 글자에 집착해 화가 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언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의 쓰임새와 눈에 보이지 않은 현상을, 한 집단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특정한 기호로 공용화시킨 것이다. 언어로 집약된 개념은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너 죽고 싶어?"라는 말이 한 사람의 자살을 예감하고 걱정되어 경계하는 말일 수 있다. 혹은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과로로 죽을 수 도 있으니 과하게 일하지 말라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귀에 들리고 눈으로 읽히는 문자의 조합만으로, 한 사람이 말하려는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시적인 언어의 소통은 갈등과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상대방의 진심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는 며칠간 하나의 일을 결정하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그 의견들이 어느 것은 같고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같은 것을 놓고 이야기하더라도 그들마다 각자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어떤 일에 대한 총비용을 크게 잡은 사람과 적게 잡은 사람은 일의 종류에 따라서 중요도를 달리 했기에 비용이 달랐을 것이다. 수요자 입장에서 언뜻 적은 비용이 드는 게 단순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었다. 동일한 일에서 같은 비용을 말한 공급자라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항목마다 다르기에 수요자가 원하는 내용의 핵심과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 즉 총비용이 부합하다 하더라도 각각의 항목이 수요자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총비용이 같다고 말한 몇몇 공급자들도 그 안에서 갈라진다는 말이다. 총비용을 높게 얘기한 공급자라도 수요자의 생각을 존중한 나머지, 중요한 항목수를 많이 넣어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 판단이 결과의 성과물을 놓고 봤을 때 옳을 수도 있다. 전체 비용이 다른 공급자 보다 높다고 비싸다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더라도 반드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언어만으로 한 개인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단순하게 판단하는 오류를 줄여야 하며, 맥락적인 사고를 가지고 소통하는 것은 일을 진행하고 좋을 결과를 돌출해 내기까지 중요한 요소이다.
한 가지를 이루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한 가지 일을 이루고 나서 그것이 삶에서 겪는 여러 경험 중 하나임을 안다면,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둬도 이성을 잃고 방종할 정도로 기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과거에 뿌린 씨앗이 현재에 와서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 뿌린 씨앗은 이제 종결되었고 새로운 씨앗은 지금 뿌리고 있다. 이 순간과 미래는 이 순간의 마음과 행동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차분함을 잃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젊었을 때는 원하는 것을 이루면 그것으로 삶의 행복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오르고 내려가며,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외부적인 상황이 변화된 것일 뿐 본질은 똑같다. 늘 도전의 연속이고 변화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적응해야만 된다. 이제는 이런 삶의 반복 패턴을 깨닫고 예전보다 덜 집착한다. 덜 괴롭고 덜 기쁘다. 왜냐하면 세상 속 그 어떤 것도 멈춰서 유지되는 것이 없다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삶의 안정감을 얻고 싶어 애썼던 행동들은 결국 욕망과 집착을 야기시켰다. 결국 안정감이라는 것은 삶의 오르 내림을 받아들이고 유연한 자세로 대처하는 힘을 지닐 때 생기는 것이다. 외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새롭게 무엇을 한다는 것은 늘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그럴 때 부처님의 말씀은 그 어떤 것 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게 하는 힘이 있다. 마음이 심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 나가야 하는 이 시점에 페이 융이 쓴 불교 경전에 대한 이야기들은 큰 힘과 위로가 된다. 감사하다,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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