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 본다면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정답은 각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호흡을 하고, 올바른 음식을 먹고,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면서, 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 '올바른'이라는 말도 사람마다 각자 그 뜻하는 것이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혹자는 막연하다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구체적인 기준을 나 나름대로 가지게 되었으며,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기준들을 공유하고 싶다. 어느 정도 이 길이 올바른 해답이 아닐까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올바른 호흡을 하려면 코로 들이마시고 내 쉬는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좋은 호흡을 하면 복식호흡을 떠올리는데 이 복식호흡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코로 숨을 쉬는 능력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숨을 가슴으로 들이마시는 흉식 호흡을 하고 있다. 코로 들이쉬는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 들이쉬는 호흡이 원활하게 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것이 된다면 복식호흡은 자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이런 올바른 호흡에 대해 참고할 만 책은 제임스 네스터가 쓴 <호흡의 기술>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는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호흡 하는 방법들이 나오는데 참으로 유용하다. 나 또한 매일 올바른 호흡을 하려 하고 그 방법들을 적용해 보고 있다.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행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불교 경전을 읽으며 나를 다스리고 추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법륜 스님이 쓰신 <반야심경 강의>와 <금강경 강의>는 삶의 지혜가 묻어있는 보물 중에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늘 산란해질 때 이 책들을 읽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유튜브를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되고 올바른 생각과 행동에 대한 기준을 나름 세울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소중한 것들이 비싸게 대가를 치러야만 얻을 수 있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다.
'올바른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내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의 식습관을 고쳐 보려고 마음먹은 시기는 2020년 무렵이었다. 그 당시 읽은 조한경의 <환자 혁명>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식습관을 바꿔야겠다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 예전에 없던 알레르기 반응과 원인 모를 목 아픔에 대한 통증으로 내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던 즈음이다. 하루 2잔 이상 마셨던 커피, 바쁜 일상으로 잦은 외식, 알게 모르게 중독되어 있었던 설탕,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 그때는 이것들이 얼마나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되는지 모르고 입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가 오면서, 불행 중 다행으로 생계를 짊어져야 할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던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일에 쓰이던 에너지가 건강을 챙기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환자 혁명>에서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없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 책을 읽고 난 즉시, 지속적으로 먹고 있던 영양제를 끊고 몇 년간 복용 중이던 콜레스테롤 약도 안 먹어 보기로 했다. 몇 년 간을 해온 요가와 그즈음 시작하게 된 명상은 좋아하던 육류를 멀리하고 밀가루를 통밀로 대체하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로 연결되었다. 이런 생활을 시작한 지 놀랍게도 거의 2주 만에 8kg 정도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현미 채식을 하면 2주 만에 살이 빠진다는 경험담을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다들 나처럼 2주라고 말했다. 몸의 변화가 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났음을 직접 체험한 나로서는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그때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 몸이 최고의 의사다>의 임동규 작가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의사였던 그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있는 질병은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의사는 좋은 식습관을 지니고 건강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모습을 환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역량 있는 의사라고 생각한다. 임동규 저자가 그런 삶을 직접 실천하고 살고 있음에 신뢰가 갔다. 그가 경험한 것들이 나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거의 모든 병들이 생활 습관에서 온 질병이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환자 스스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지려는 의지와 그 실천이 따라줄 때 몸은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미 채식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질병이 나을 수 있는 자연 치유 기능이 일어난다는 것은 경험상 신뢰할 만하다. 나 스스로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주위 지인들에게 2주 간 설탕과 흰쌀, 밀가루, 동물성 육류를 끊고 현미 채식을 해보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려고 의지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식습관을 버리라고 하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건강에 경각심을 가지더라도 자신의 고착화된 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는 커피 습관을 완전히 끊고 싶어 투쟁 아닌 투쟁을 하고 있다. 과식을 하며, 빨리 음식을 먹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직도 갈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된다. 커피는 희망이 보인다. 일단 몸이 커피를 마시면, 예전과 다르게 몸이 반응한다. 하루에 한잔 마시던 커피를 두 모금 세 모금 마시고 버리게 된다. 커피를 마시기 전 커피 향기가 그리워,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한번 빠지게 되면 그 충동을 제어하기 어렵다. 마시고야 만다. 그런데 다행히 이제는 커피가 목에 넘어가는 순간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에 없던 심장이 두근거리고 뭔가 혈관이 늘어나는 불쾌한 느낌이 든다. 미치도록 마시고 싶어,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몸이 불편하다는 느낌을 그 즉시 받게 된다. 그래서 두 세 모금 마시고 버리게 된다. 커피를 끊기 위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마시지 않고 버린다. 머지않아 커피와 친하게 지내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하루에 한잔이라도 기분 좋게 마시면 좋겠지만, 몸이 먼저 거부하고 있으니까 마시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이토록 음식이 중요한데 왜 우리는 입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몸에 좋은 것은 외면하고 살게 되는 것일까? 건강을 잃은 사람들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을 잃은 이유가 자신이 먹는 음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쉽지 않다.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늘 먹던 음식을 바꾸고 다른 식습관을 가지려는 노력은 내가 커피를 단번에 못 끊는 것만 봐도 단순한 결심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듯하다.
치유는 스스로 저절로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나는 말한다. 치유는 상처를 꿰매거나 부목을 대는 것과 상관없이 내 몸이 스스로 알아서 저절로 한다. 그래서 '스스로 치유'다. 때문에 병이 낫는다는 의미의 한자는 치료가 아니라 스스로 자(自), 그럴 연(然) 자를 붙여 '자연치유'다. 그리고 질병을 치유하는 힘을 '자연치유력(自然治癒力)'이라고 한다. '스스로' 치유는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치유는 내 몸속에 존재하는 치유하는 힘(자연치유력)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처방을 내리고 저절로 작동하여 이루어진다. 내 몸이 스스로 알아서 치유하므로 자연치유 과정에는 별다른 부작용도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살이 찢어졌으면 지혈시키고 살을 차오르게 하고,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열을 내서 면역을 강화시키는 이 일은 그 누구도 시킨 적이 없다. 내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한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는 내 몸 안의 의사를 말한 것이다.
젊었을 때 없었던 진통제 항생제 알레르기가 생겼다. 그래서 병원 가는 것조차 꺼려진다. 없었던 약의 부작용 또한 내 잘못된 생활 습관과 생리통으로 오랫동안 복용한 진통제 내성과 부작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치유하는 약은 현실적으로 없다. 그 어떤 약도 이런 알레르기 증상을 호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한다고 해서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이런가에 대해 한탄만 하고 있으면 뭐 하겠는가. 나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몸을 치유하기 위한 실천적 행동을 위한 의지를 내어 몸을 변화시키고 개선해야만 했다. 현미 채식을 시작한 지 햇수로 4년이 흘렀다. 먹거리가 얼마나 몸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현미 채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게 되면 몸이 다른 식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선 어쩌다 먹는 밀가루 음식이나 가공 식품이 몸에 들어가면 소화가 잘 안 되고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느낀다. 더러운 곳에 다른 더러운 것이 보태져도 함께 더럽기 때문에 새롭게 보태진 더러운 것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깨끗한 곳에 더러운 것이 하나만 있으면 그 더러운 것이 눈에 잘 띄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도 그렇다. 나쁜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뭐가 나쁜지 구별이 안 갈 것이다. 그런데 건강한 먹거리로 식사를 하다가 어느 날 설탕이 든 케이크이나 가공 식품을 먹으면 몸이 달리 반응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건강한 음식은 속이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음식 섭취를 가볍게 여기고 입에 당기는 음식만을 먹으려 한다면 몸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 일 뿐이다.
내가 강조하는 현미밥 채식은 속껍질이 그래도 살아 있는 통곡식을 껍질째 먹는 것을 말한다. 현미, 통밀은 물론 감자도 속껍질을 그대로 먹고, 고구마, 포도, 사과, 배, 심지어 귤 까지도 가급적 껍질째 먹을수록 훨씬 이롭다... 그래서 나는 채식이라는 말 대신 건강 채식 또는 현미밥 채식이라는 말로 바꾸어 쓴다. 채식이라고 모두 다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설탕, 흰쌀, 흰 밀, 보리, 흰 소금등 정제 식품과 껍질을 벗겨낸 과일은 고기보다야 낫겠지만 치유 음식이 아니다. 영양학적으로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가장 완벽한 밥상은 현미밥 채식이다.
이상하게 위가 안 좋은 사람들은 현미를 먹으면 안 좋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참 이상한 것은 본인이 직접 먹어보지 않고 그렇더라는 말을 믿고 현미를 꺼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현미 식사를 해야 한다. 당뇨약을 복용하더라도 식생활 개선이 없다면 그 병은 개선될 가능성이 제로이다. 그런데도 현미 식사보다는 당뇨약 먹는 것이 효과 측면에 더 낫다 생각하고 늘 약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왜 위에 안 좋다는 현미를 당뇨 증상이 있으면 먹으라고 하겠는가. 유튜브 건강 영상을 들어보면 흰쌀밥이 좋다고 말하는 의사들이 실질적으로 몇이나 있는가. 거의 없다. 통곡물 위주로 식사해야 됨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미를 반기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다. 의문이다. 현미 채식을 강조하는 임동규 작가처럼 현미는 신이 주신 최고의 식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위가 좋지 않은 나는 현미를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오히려 백미를 많이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하다. 채소와 현미를 좀 많이 먹었다고 해서 소화가 안 돼, 속이 더부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속이 편안하다. 현미가 내 체질에 맞기에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에 현미의 진정한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몸 안의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은 하늘이 내린 명의도 고칠 수 없다."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말이 깊게 와닿는다. 인간은 모두 다 다르게 만들어졌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얼굴과 몸의 크기와 형태가 다르듯 내장 기관의 모양과 위치 그리고 작동하는 힘의 세기도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현대 의학과 약은 인간을 동일한 조건에 놓고 치료하며 처방한다. 전형화된 치료가 물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지는 않겠지만, 개개인의 다른 특성을 고려하여 치료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개인에 적용하는 의술이나 적절한 양의 약 투여, 복용 기간등 여러 변수를 달리 고려해야 될 만큼 사람들은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현대의학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태도도 위험하지만 실비 처리가 된다는 이유로 병원을 자주 방문하며 병원 처방에 맹신하려는 태도에 대해 경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현대의학은 보편적 특성을 가지고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의 특별함을 고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특별함은 나 자신을 성찰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 기준이 개인에게도 어느 선에서는 적용 가능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부분은 인간이 정한 보편적 기준과는 맞지 않고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한다. 유별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보편적 기준에 맞추느라 나 자신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모를 수 있다. 그러기에 자기 건강에 대한 성찰은, 돈 버는 사회 활동 이상으로 중요할 것이다. 건강은 누가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 자립적으로 내 건강을 챙길 수 있을 때 삶의 활기를 가지게 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깊이 깨달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길로 보인다.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말은 “너의 몸은 네가 알아야 한다. “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병원 가는 것과 약 처방이 병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맹신은 조금은 내려놓아야 된다. 마음 챙김처럼 건강 챙김 또한 자발적 노력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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