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오십에 읽는 주역

Christi-Moon 2024. 2. 25. 20:18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경험마다 많은 것들이 연결돼서 일어나기에, 경험을 했다고 과거의 시행착오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맥락 속에 일어난 경험들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객관화시켜 현재와 미래 삶에 녹아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어적 사고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언어로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그 경험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이것이 어렵다. 왜냐하면 경험으로부터 발생된 감정의 기억이 크기 때문에, 그 경험들이 때로는 트라우마가 되어 저장된다. 과거의 경험이 감정적으로 나빴다면 그런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될 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로 인해 또다시 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저항하는 의지력을 발휘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좋은 감정을 가진 경험은 이와 유사한 상황에 맞닥뜨려질 때 과거의 좋은 상황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과거의 경험들은 현재와 다가 올 미래의 삶의 모습을 결정을 짓게 된다. 지나간 과거의 경험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녹여낼 것일까? 

우선 그 과거의 경험들이 내 삶에 축적되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 또 경험 속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들을 객관적으로 바랄 볼 수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경험들은 모두 공부였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다. 좋았던 과거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 앞전 시기에 어둡고 혼란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좋고 나쁨의 순환이 거의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 예외는 없다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어떤 시점에 일어나느냐의 문제이고 시간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나쁜 상황은 자만했던 삶의 태도가 그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분명한 것은 오늘 나의 마음이 바뀌면 나의 행동이 바뀌고,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명제는 주역 점의 기본 원리를 이루는 것이기도 한데, 이렇게 해서 사람은 과거를 포함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 가치 있는 일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십 대와 삼사십 대를 거친 오십에게는 그동안 축적한 인생이 있다. 그러므로 오십에 이른 이는 이제 자기 인생을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자신의 기질을 넘어 스스로 객관화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는 이제 운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살 수 있다.

 
<오십에 읽는 주역>에서 저자는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말한 이유는 지금 내 마음이 과거에 있어던 여러 경험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제껏 살아왔던 과거가 달리 규정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내 과거의 상처를 트라우마가 아닌 삶을 공부했다는 태도로 과거를 받아들인다면 현재는 보다 풍성해지고 두려움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연륜’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50이 넘어 보니 과거는 늘 실패가 아니라 인생 공부였다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늘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 역시 사람이 잘 보지 못하도록 감추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자기 과거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시 돌아보시기 바란다. 지난 과거는 다각적이다. 지긋지긋한 과거였는가? 의미 있는 과거였는가? 여러 각도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자신의 과거인지 사람은 잘 보지 못한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오십이라는 나이에 부연된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역경>은 세상 만물이 일정한 법칙으로 순환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 관찰한 결과 얻은 선조들의 기록물이다. 이러한 법칙을 제대로 알고 있고 이것을 삶에 반영할 혜안이 있다면 좀 더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오십에 읽는 주역>에서 언급된 율곡의 조언대로 <역경>을 읽은 후 자신이 처한 상황의 알아채고 그 기미를 살펴서 다가올 길흉을 감지하여, 물러날 때와 들어갈 때의 시기를 알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야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 기미를 몸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조금 생기는 듯하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세상 만물이 일정한 틀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그 기미를 더 빨리 알아챌 수 있다는 능력을 얻게 되니 든든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공부가 바로 이런 공부가 아닐까? 적어도 50이 됐다면 이런 순환의 이치가 이해되는 나이이며, 삶에 녹아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된다

역경을 읽을 때 그냥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기미를 관 칠 하기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역경은 인생사의 매 경우를 64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에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를 서술한다. 또한 그런 결과를 암시하는 기미가 무엇인지도 서술한다. 그러므로 율곡의 조언은 역경을 읽고 나서 이를 토대로 현실에서 내가 처한 상황의 기미를 포착하도록 힘쓰라는 것이다. 기미를 포착하면 앞으로 전개될 나의 길흉과 존망 진퇴 소장의 추세를 알게 되어 그에 맞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은 율곡이 말한 기미를 알아채는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 밑거름을 통해 지금과 미래를 결정하기에 트라우마가 된 과거의 경험은 신속히 날려버려야 한다. 과거의 시행착오를 파악하고 객관화된 데이터로 현재의 삶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책은 멘토이자 스승이며, 삶을 조언해 주는 등불과 같다.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책을 읽어야 된다는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된다. 삶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하지만 그 경험이 다시 체화되고 승화돼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최고의 지침은 책뿐이 없다고 생각한다. “주역”은 자기 계발서의 고전이다. 어쩌면 대학 교양 중 필수 과목으로 공부해야 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영문본 주역을 반쯤 읽다 말았는데 다시 꺼내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