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가을 여행 (feat. 런던에서)

Christi-Moon 2024. 10. 14. 16:23

런던으로의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2016년에는 학생들과 연극 작업 때문에 런던 국립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일정을 잡고 왔었고, 2017년에는 런던 일정을 빡빡하게 잡고 벨기에 겐트에 다녀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관람했던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나 테이트 모던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기록을 잘 남기지 않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 아쉬운 점은 런던의 공연표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물론 좋지 않은 자리로 예매하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싸졌다. 슈퍼의 장바구니 가격은 우리나라 보다 비싸지는 않은 듯하다. 특히 과일 가격과 야채 가격은 우리나라 보다 오히려 싸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는 확실히 이곳이 서울보다 춥다. 재미있는 것은 롱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부터 여름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눈에 심심치 않게 띈다. 어쨌든 아침과 오후에 기온 차이가 꽤 나기도 하지만 비가 자주 내려서 낮에도 쌀쌀하다. 런더너들은 네덜란드나 독일 대도시 사람들 보다 확실히 자전거는 덜 타고 다닌다. 런던에 사람이 많다. 거리에 사람이 넘쳐난다. 서울에서 몇 년 안에 만날 사람의 수를 이곳 런던에서 다 만난 것 같다. 지난 토요일에는 영국 박물관의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리 수밖에 없었다. 평일 오픈 시간 직전에 방문하든지 온라인 예약을 하고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일 여행일정에 오늘 딱 반이 흘렀다. 이제 시차는 적응되었다. 늘 여행 시작 처음에는 그곳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수면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쨌든 여행지에서 계속 돌아다니고 긴장하고 다니니 수면 시간은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여행지 바로 도착해서 잠이 좀 안 들어도 며칠 지나면 피곤해서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런던 여행에서는 지하철을 거의 안 타고 버스를 많이 탔었다. 처음 여행 시작한 초기라 시내 중심부와 관광지에 가까운 곳의 숙소를 구했기에 지하철을 탈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 숙소는 런던의 1 존에서 떨어진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시내 중심 숙소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내와 좀 떨어진 곳을 구했다. 그런데 성공이다. 이곳은 런던 지하철 노던라인(Northern)이 정류장이 있는 이곳은 현지인들이 사는 아주 조용한 동네에 위치해 있다. 햄스테드힐스 공원 근처에 위치한 이 동네는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가을 특유의 쓸쓸함과 적적함이 배어있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좋다. 그 고독의 가을 기운이 오히려 나에게 기운을 불러 넣어준다고 할까. 잎이 떨어지는 이 계절은 평온하고 사람들도 들떠있지 않아 보여 나도 차분해진다.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물론 런던 시내 중심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런던은 잘 살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 천국이다. 너무나도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아 사실 사람의 피부색의 구별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5년 전에 처음 올 때 보다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그때 유심히 보지 않아서 그럴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워낙 관광객이 넘쳐나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실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잘 구별도 안된다. 그리고 한국 사람도 확실히 많다. 관광객이라기보다는 여기서 살거나 혹은 유학 온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로 꽤 있어 보인다. 그들도 자연스러운 런더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이번 런던 여행도 뭔가 런더너 느낌으로 다니고 있다. 유럽 여행들이 준 힘이라고 할까. 초기 여행 시절보다 자연스럽고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구글 지도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길을 잃을 까봐 전전긍긍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잘못 길을 가더라도 돌아서 가면 되고 그 잘못된 길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역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고 뭔가 시도해 봐야 용기가 생기나 보다.

유럽의 지하철은 상당히 편하다. 지하철의 역사가 영국이 제일 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하철 역사 안은 무척 낡았다. 그러나 시스템은 나쁘지 않아, 너무 편한 게 지하철 탈 수 있다. 이제는 이동 중에 책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지하철 안이 좁고 답답한 느낌도 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뭉클함이 올라온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지하철 안에서도 삶의 위로를 받고 있다.


*리젠트 파크


예전에는 뭔가를 꼭 봐야 되고 어디를 꼭 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지난 빈이나 뮌헨 여행에서도 그랬지만 그냥 낯선 곳을 걷는 것도 이제는 좋다. 특별히 어디를 가서 보는 것도 좋았지만 도시를 걸으며 낯선 곳에서 새로운 느낌의 건물과 그곳의 각기 다른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좋았다. 이번 여행이 그렇다.

오늘은 여행 일주일 동안의 소감을 두서없이 정리해 보았다. 원래 일요일에는 블로그를 꼭 업데이트하는 것이 나와의 약속이었지만 월요일에 업데이트 하게 되었다. 어제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프리즈 런던에  시간을 보내느라 숙소에 돌아와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뻗었다. 조식 먹으러 가기 전에 내 느낌을 대충 정리해 본다. 좀 더 구체적인 여행 테마는 귀국해서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별 탈 없이 일정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