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런던 여정을 마치며

Christi-Moon 2024. 10. 26. 14:11

이번 여행이 나에게 준 의미는 여행에 대한 앞으로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는 점에서 보람 있다 하겠다. 더 이상 앞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나에게 여행을 가지 못해서 오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과연 나는 괴롭지 않고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Moco Museum, London


이번 런던 이후 또 다른 여행을 하는 기회가 감사하게 주어진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한편으로 여행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하이드 파크

우선 오랫동안 비슷한 패턴으로 경험한 여행에(물론 조금씩은 변화가 있긴 있었지만)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여행하는 몇 년간 미술관 가는 것에 흥미가 생겨 그림 관련 책을 읽게 되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질 좋은 해외 공연을 접하게 되는 시간을 가졌었다. 감사하다. 물론 아직 보지 못한 공연도 많을 것이고 가보지 못한 미술관도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또 유명 미술관을 관람했다고 해도, 모르고 지나친 작품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한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다음 여행 목표는 내가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여행이 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돈과 시간이 우선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영화 노팅힐에서 나왔던 북샵


내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한 가지 꼽으라면 영어에 대한 부족함과 외국서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유학까지 이 나이에 가는 것은 과유불급이라고 해도, 언어 공부나 요가 센터에 등록해서 여행을 넘어선, 배움의 장에 직접 뛰어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실천은 자신감과 별개지만 이번 런던 여행에서 든 생각이다. 그 어떤 변명을 나 스스로에게 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떠날 수 있을 용기와 확신과 시기가 올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은 언어(영어)를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요가나 명상 센터에 등록해서 생활해 보는 것이다.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서 요가센터를 등록하더라도 (영국이면 좋겠다) 영어를 알아야 더 요가를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들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노팅힐 근처 주택단지 앞 전경


어제 배우 김수미 선생님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지는 않지만 공인이기에 남일 같지는 않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연기자였던 그녀의 삶이 대중에게 화려하게 비치기도 했겠지만 우리의 삶이 순간 찰나라는 허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다 남 얘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그런 일이 닥쳐오지 않을 거라는 무의식 속 자만을 경계하며 살고 싶다.

*런던 템즈강


부모님이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살아계시지만 언제가 모두 죽음을 통해서 이별해야 된다 생각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모두 다 죽는다는 이런 명확한 사실이 또 어디 있겠는가. 너무 명확해서 무감각한듯하다. 믿는다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죽음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죽음이 주는 의미를 깊이 인식하면서 행동하는 게 필요하지만 늘 잊어버리거나 놓치고 산다. 죽음은 특히 어떤 상황을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될 때 늘 염두에  둔다면 보다 지혜롭게 대처해 나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망각한다. 이 표현이 더 적절한듯하다. 주위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만 잠깐 경각심을 가지게 될 뿐이다. 하지만 죽음을 인식하는 삶의 자세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이 우리 삶에 용기와 도전을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런던 여행 전에도 내 삶에서 마지막 여행이 될 수 있어...라고 마음에 새기고 떠났던 것 같다.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삶의 끝을 말이다.

*런던 코코아


지난 블로그에서도 언급한 이야기지만 런던의 출퇴근하는 좁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주말에도 넘쳐나는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분주한 식당 종업원들, 호텔에서 투숙객들을 응대하는 호텔리어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다 똑같구나... 먹고 살아가야 하기에, 열심히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다들 자신들의 삶을 돌아볼 수 시간을 가지고 살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과 내가 동일시되어, 삶이라는 전쟁터에 함께  던져진 동지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그들에게 연민이 생긴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말이다. 비록 피부색도 다르고 내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지만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본질, 그래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그 무엇...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 말의 느낌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전 여행과 또 다르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버러우 마켓


여러 액티비티를 하지 않고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고, 런던 시내를 이곳저곳 걸어 다녔다. 혼자 안전하게 여행을 다녀온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자 하고 런던을 떠나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목적을 크게 두지 않았어도, 많은 것을 경험했다. 특히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런던 사람이 도와주었는가 되짚어 보면 그 많은 런던 사람이 지나다니면서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많은 인파 때문에 실수로 내가 살짝 치기도 했으나 그들은 늘 먼저 “쏘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런던은 건널목 표시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보행자를 위해 일단정지하고 보행자에게 배려를 했다. 당연한 룰이지만 그래도 굳이 보행자 무시하고 차를 몰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지만 어김없이 그랬다. 당연한 것이고, 사소해 보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시 스치고 만나지 않을 타인에게도 친절하자. 모두 다 나의 이웃이다,라는 것을 말이다.

*런던 윈덤극장 앞


우리나라도 다민족 국가가 어울려 살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김해만 해도 내가 내려갈 때마다 다민족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때마다 스스로 적응하기 어렵다는 느낌과 그들에 대해 가졌던 경계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런던 여행은 그런 점에서 이런 닫힌 의식을 깨우고 좀 더 현실을 받아들이는 적응 능력이 부족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도 되었다. 주어지는 상황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낯섦에서 오는 경계심에 나부터 깨어있어야 될 것이다. “나부터 변화해야 세상도 변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실천해야 될 나이가 된 것이다.

*런던 숙소에서 바라본 런던 새벽 거리


며칠 전에 런던에 있었지만 먼 과거의 추억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런던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번 여행은 다른 때보다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그렇지 않았음을 다시 알았다. 많은 것들이 사진에 담겨있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이 포근함 또한 감사하다. 아직 시차 적응이 덜되어 낮 시간에 정신이 멍하고 런던에서 걸린 감기가 다 낫지 않았지만, 이 기적 같은 여정을 무사히 마침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