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행을 혼자 갔을 때는 지금 여행하는 것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그 당시 출국하기 1주일 전 남겨두고 그냥 가지 말까 하고 갈등하기도 했다. 낯선 공간에 혼자 있다는 상상을 하니 두렵고 공포심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여행지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그런 감정은 온 데 간데없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두려움과 무서움이 작지 않았었고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것이 처음이었던 그 순간, 어떤 희열과 해방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자유로웠다. 몇 번의 여행을 혼자 한 지금도 가기 직전 약간의 두려움은 늘 올라온다. 도착하면 그것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였다는 것을 어김없이 알게 되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런 두려움의 크기와 강도가 줄어들었다.
혼자 여행 갔을 때는 여행 기간 동안 할 것들에 대한 계획을 미리 짜놓고 갔다. 거기서 뭘 구경할 것인지는 물론, 그곳을 이동하는 교통수단과, 타는 곳, 내리는 곳 도착지 위치등 구글 지도를 보고 상세하게 검색한 뒤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또 여행지에 가서 길을 잃어버릴까 구글 지도를 수시로 봤다. 거의 손에 핸드폰을 놓지 못했었다. 길을 잃어버리면 국제 미아가 될 거 같은 무서운 상상을 하며, 긴장 상태에서 목적지로 이동하곤 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거꾸로 타면 놀래서 사색이 되기도 하고 구글 검색으로 나온 길만을 가려고 했다. 구글에 대해서 감사함을 가지면서 말이다. 길치이지만 혼자 자유를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은 구글 지도의 역할이 크다. 물론 지금도 구글 지도를 열심히 안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한번 검색 한 뒤 안 보고 갈 수 있도록 그 길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핸드폰만을 의지하지 않게 됐다. 지도 때문에 핸드폰을 계속 들고 있으면 걸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거리 풍경을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에만 집중하면 계획하지 않은 것들 외에 예기치 않은 것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려도 국제 미아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과대 상상이고 다시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보고 원래 가려던 곳으로 돌아오면 되기에 그다지 복잡한 문제도 아니다. 두려움이 크면 둔해지고 오히려 무감각해진다는 것 또한 알았다. 당황하면 판단력을 상실하고 말기에 일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밤늦게 다니지 않고 우범지역 쪽으로 가지 않으려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연 관람 후 늦은 시간의 귀갓길은 무척 조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처럼 커튼콜의 시간을 짧게 뿐이 못 가지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 서운함을 뒤로하고 숙소로 빨리 돌아오려고 노력한다. 밤에 다니는 것은 여행지와 상관없이 이제는 집에서도 불편하고 기상 시간 때문에 밤 10시면 늦은 시간이 돼버렸다.
특히 이번 뮌헨에서는 여행 계획을 예전보다 더 세우지 않고 갔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태해진 것인지 아니면 여행의 노하우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숙소 위치 결정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무엇을 가서 할지는 대충 마음속으로 정리만 하고 갔다.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거기 가서 하루 전날 저녁에 다음날 날씨 여부와 몸의 상태에 따라 계획을 변경하기도 하고 몸 피로도에 따라, 다음 날 갈 장소와 이동량을 달리하여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영국 정원에서 마음껏 산책할 수 있었기에, 이번 여행에 대한 만족감이 어느 때보다 컸던 것 같다. 사실 영국 정원은 하루나 이틀 정도 가보면 되겠지라고 계획한 곳이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영국 정원의 가을 숲을 걷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되어 버렸고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숙소가 그곳과 가까워 매일 산책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그 정원을 통과해서 가면 좀 돌아가더라도, 뮌헨 중앙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의 매일 그 숲을 걸으면서 감사했다. 그 숲이 주는 힐링과 치유의 효과를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이다. 집 옆에 산책하는 곳이 있더라도 일상을 지내다 보면 마음 놓고 산책하며 맘껏 즐겨지지 않는다. 또 그런 초록이 우거진 곳을 찾아서 전원 지역으로 가더라도 치유의 느낌이 길게 지속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잠시 힐링될 뿐이었다. 뮌헨은 다시 못 올 수 있다는 마음도 한 구석에 있어,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려고 했다. 무엇보다 그 울창한 숲의 치유력이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신선하며 활기찬 기운이 내 안에 지금도 남아있다.
뮌헨 사람들이,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사람들 보다 여유가 있는 듯하다. 더 친절했고, 독일 특유의 무뚝뚝함이 덜한 것 같았다. 아마 이 숲이 주는 치유 기능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도 이처럼 크지 않지만 공원이 있다. 그런데 공원을 관통해서 시내로 나갈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영국 정원은 뮌헨 시 중앙부에 있기에 시민들이 자주 산책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이 초록 냄새와 맑은 공기의 향유는 그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생기게 하고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다. 뮌헨 시민들은 그곳에서 산책하고 데이트하며 자전거 타기와 조깅을 한다. 또 숲 곳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햇빛을 즐기며 간단하게 가게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는다. 산책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는데, 특별히 단속하는 경고 안내판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아름다운 숲을 시민 개인의 양심에 맡겨 그들로 하여금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는 것에 대해 자유를 준듯하다. 시민의 자발적인 의지로 숲을 이롭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그 이로움이 되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깨끗했다. 부러웠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그 영국식 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나무 잎들은 가을의 기운에 찬란하고 화려하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낙엽이 쌓이고 밤새 내린 비에 촉촉이 젖어든 숲의 나무와 땅의 냄새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속 따스하게 녹아들었다. 여행에 돌아온 지 10일 정도 지난 지금도 그곳을 생각하며 글을 쓰니 마음이 벅차다. 그곳에서 생긴 활력이 아직까지 남아있음이 느껴진다. 다시 뮌헨을 간다면 아마 그곳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 주는 치유력이 무엇인지 알꺼같다. 그곳에서, 그 느낌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나 혼자 그런 좋은 것을 누린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곳이 멋졌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감히 할 수 없었다. 그것 때문인지 때로는 쓸쓸하고 지독한 고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짙은 고독 또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인생은 홀로 떠나는 여정이다. 죽을 때 함께 가거나 대신 죽어줄 사람은 없다. 불가능하다. 누구든 말이다. 나 역시 상대방에게 그렇다. 인간은 결국 혼자 남겨진다, 생각하며 순간 밀려드는 고독감을 달랬다. 그곳에서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매일 나는 그렇게 걸었다.
먼 거리에 비싼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가게 되면 아무래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에 여러 도시나 국가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돌아온 경우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한 도시 안에도 좋은 곳이 있었지만, 일정을 맞추다 보니 둘러볼 여유 없이 지나쳤구나, 여행 후 알게 된다. 일정에 맞추고 계획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보통 관광객들이 가는 장소에 가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다. 물론 그것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낯선 장소에 가서 생긴 예기치 않은 경험은 그야말로 득템으로 무언가를 얻게 된다.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Moco Museum이 그랬고,뮌헨에서는 Museum of Urban and Contemporary Art(MUCA) 미술관이 있었다. 현대 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의 전시회(The Weight of Things)"가 막 오픈 한것이다.
이곳은 뮌헨의 구 도심, 마리엔플라츠 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규모 작은 미술관이다. 1926년에 설립된 이 미술관은 거리 예술가인 뱅크시의 작품이나 핫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기획 전시하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우연하게 관람하지 않은 미술관을 검색하다 이곳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은 점은 데미안 허스트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인 "For the Lover of God (2007)“이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된 것이라고 한다. 백금과 8601개의 다이아몬드, 그리고 실제 인간의 치아를 박아서 만든 이 해골은 그 당시 1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데미안은 이 작품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관계를 성찰하게 하기 위해 이 작업을 감행한 듯 보인다. 이 작품 말고도 그의 다른 몇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안내인의 도움으로 이 작품만 따로 전시되어있는 밀실 같은 곳으로 데려가 관람할 수 있었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보는 긴장감은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데미안 허스트는 오스트리아 빈 현대 미술관과 스페인 모코 뮤지움에서 인상 깊게 본 터라 데미안 허스트의 지금까지 관람한 작품을 모아 글로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무사히 뮌헨 일정을 마치고 10일이 지난 지금 감기에 걸려 이 글을 쓰고 있다. 여행지에서 아프지 않았던 것이 감사하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올 가을을 보낸 여행지에서의 기억과 느낌을 떠올리며, 글로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 또한 감사하다. 이제껏 여러 곳을 여행하며, 별 탈 없이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와 능력이 아니라 신이 도운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의 걱정 속, 기다림에 대한 결과물이며, 여행지에서 나와 관계한 그곳 사람들이 도와준 덕택인 것이다. 다시 여행 가고 싶다는 욕망과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고, 감사함에 스스로 깨어 있어야 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여행 후 실천하고 싶은 것은, 좀 더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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