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여행지에서 얻는 기쁨(feat.Damien Hirst)

Christi-Moon 2024. 2. 18. 16:53

여행하면서 좋았던 점은 계획하지 않은 곳을 현지에 가서 알게 되고,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때였다. 또 현지 미술관을 둘러보다, 예상하지 않은 작가의 유명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때 여행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던 모코 뮤지움(Moco Museum)이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이곳에도, “Moco Museum”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뱅크시(Banksy) 작품이 주로 많았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뱅크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명 현대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 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에 가서 알게 된 스페인 화가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apies)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는 "Fundacio Antoni Tapies"도 좋았다. 작년 가을 방문한 뮌헨의 “MUCA(Museum of Ubarn and Contemporary Art)”는 규모가 작은 미술관이었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기획 전시가 마침 전시되고 있어 데미안의 귀한 작품을 관람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뮌헨 “Pinakotheck der Moderne Brandhorst”에서 관람한 앤디워홀(Andy Warhol)의 서로 다른 시기에 그려진 자화상들도 예상치 않았던 앤디 워홀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여행 기억을 소환하니 마음이 설렌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여행 때 찍은 작품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고, 이렇게  글로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Museum of Ubarn and Contemporary Art, Munich


영국 출신 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는 스페인 Moco Museum에서, 오스트리안 빈의 Albertina Modern에서도, 뮌헨의 MUCA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작가 중 한 명이였다. 영국 출신의 현대 예술가로 아직 나이가 50대인 그는 독일에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뭔가 작품 방향성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그 이면을 특별한 시각으로 그려내주고 있어 여행 후에도 잔상이 오래 남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예전 나의 뮌헨 여행 기록에서 언급된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해골에 제작된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2007)"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고가로 제작된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죽어서 너나없이 해골로 될 몸에 치장된 값비싼 보석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 메시지에 경각심을 가지기보다는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보석을 감상하느라 오히려 당연하게 전해주는 메시지인 ‘죽음’을 망각하게 된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데미안 허스트가 관람자에게 요구하는 또 다른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다이아몬드 때문에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해골은 안중에도 없고 보석으로 제작된 스토리가 머릿속이 가득 차게 된다. 결국 수많은 보석들의 화려함에 가려, 죽음을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고 관람을 마치고 집에 가서도 계속 보석 이야기가 더 회자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 의도이다.”라고 작가는 혼자 낄낄 거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석에 눈먼 관람자들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만큼 보석은 해골 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해골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엄청난 고가의 다이아몬드로 제작된 작품으로 화제가 되어 죽음을 잊은 관람자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경각심을 자극시키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멋지게 작가는 우리를 속인 셈이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다이아몬드가 해골에 박혀도 죽음은커녕 다이아몬드 만을 이야기하다니... 얼마나 너희들이 보석을 좋아하는지 알겠지!!”라고. '메멘토모리'를 상장하는 작품의 의도를 분명히 알고 있어도 해골의 상징은  화려한 다이아몬드에 가려 안중에도 없다. 나조차 정신이 팔려었다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For the Love of God, 2007

데미안 허스트의 2008년 작품인 “The Immaculate-Sacred"는 바르셀로나 Moco Museum에서 관람했던 작품이다. 언뜻 보면 화이트의 촉감이 밝고 따뜻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잔인하다. 어린 시절 가톨릭 신자였다는 데미안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속죄의 상징인 '성심(聖心)‘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과거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간을 대신해서 희생양을  받치는 제사 의식이 있었다면 현대 사회에서 희생양은 무엇일까? 데미안 허스트는 그 질문에 답을 과학, 즉 기계 문명에서 찾은 듯하다. 신은 기계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대치되고 그것을 위한 희생양은 바로 우리 인간이 된 것이다,라고. 과학으로 인한 문명의 발전이 인간이 이룬 업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과학과 기계 문명에 종속되어 의지하고 살아가는 물질문명의 희생양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예리한 철사 줄에 감겨, 섬뜩한 칼에 찔려 깊은 상처가 났음에도 피가 안 나기에 그게 상처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 문명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The Immaculate-Sacred, 2008

 
MUCA에서 관람한 "The Forgotten Dead, 1997"는 내가 말하고 싶은 화두였다. 커다란 원형 통 안에 빼곡히 쌓인 구겨지고 버려진 담뱃갑과 담배, 라이터를 보니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사는 나로서는 할 말이 많다. 아파트 내에서 금연은 의무 사항이다. 겨울이 오자 추워서 밖에서 담배를 피기가 불편하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들이 있다. 그때 담배 냄새가 환풍기를 통해서 우리 집까지 전해져 오는데, 마치 직접 담배 피운 것만큼이나 냄새가 심각하다. 도대체 어느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집안 환기를 위해 내가 뭔가를 조치할 수밖에 없다. 통 안에 든 담배꽁초를 데미안 허스트는 어디에서 이것을 다 모은 것일까? 참으로 많다. 작품을 보고 있자니 담배 냄새가 실제로 나는 착각을 불러일으켜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담배꽁초 하나하나가 처참하고 외롭게 버려진 하나의 영혼처럼 보이기도 하기에 연민이 들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을 파괴하는 뱀의 유혹을 거절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늘 미래를 두려워 하지만 쾌락은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지금 이순간만 있을 뿐이다.

”The Forgotten Dead"를  보고 단번에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의지가 생기는 관람자가 있었음 하는 바람이다. 담배 피우는 것이 그렇게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 끊는 의지력인데 추우니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것이다. 건강이 우선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불편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위해  환기시켜야지 별도리가  없다.


*The Forgotten Dead, 1997


오스트리아 비엔나 Albertina Modern에서 관람한 "The Last Supper"는 재기 발랄한 작품으로 보였다. 제약회사의 약품 팩 안에 현대인들이 애용하는 식품의 이름이 적혀있다. 소시지, 베이컨, 칩스, 영국식 파이 등. 현대인들이 먹는 식품들 중에 몸에 해로운 식품도 많다. 이런 음식들이  마치 우리 몸을 지탱시켜 주고 활력을 넣어준다고 믿고 이것을 신봉한다. 그리고 이런 음식 못지않게 약에 대한 신뢰도 상당하다. 약이 마치 우리의 많은 병을 치료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의지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12명의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이제는 우리들이 집착하는 음식과 약의 잔치는 생명과 직결되고 생명을 앞당기는 우리의 ‘마지막 만찬’ 될지도 모를 일이다.   


*The Last Supper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처럼 감각적이긴 하지만 쉽게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편안함이 데미안에게 있다. 영국과 독일의 표현 방식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세계적인 두 거장, 영국 출신 영화감독 켄 로치(Ken Loach)와 독일 출신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감독이 만든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야 되나, 이들 모두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주제는 명확하다. 그러나 독일 출신인 요제프 보이스와 미카엘 하네케는 영국 출신의 두 예술가에 비해 표현이 난해하다. 눈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모두 다 대단하지만 말이다. 이 네 명의 대가들은 세상에 대한 부조리와 그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점을 밖으로 드러내어 예리하고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그리고 관객과 관람자로 하여금 실천할 수 있는 마음가지과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한다는 점에서 실천 지향적이고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는 혁명가들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비싼 가격으로 팔기 위해 조작하여 무리를 빚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씁쓸했다. 자신의 실제 삶과 추구하는 예술의 접근 방식과 가치관이 상충하면 과연 작가 자신의 작품이 관람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예술가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의 깊이 면에서 요제프 보이스에게 나는 더 마음이 간다. 하지만 현존하는 현대 예술가로서 주목받는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우연히 시기가 맞아 여행하는 동안 관람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길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유명 배우를 만난 것처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을 그곳에서 마주할 수 있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