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밀란 쿤데라의 <농담> (feat. 생각의 무거움)

Christi-Moon 2024. 11. 18. 04:25

소설 <농담>은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 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화가 이루어지던 당시 루드비크 헬레나 코스트카 야로슬라프, 이들의 삶과 그에 따른 변화에서 오는 경험의 이야기를 그들의 시각과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향한 관점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옳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삶에 펼쳐진 상황들은 중요하고 진지하며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농담>의 주인공 루드비크는, 여자 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별생각 없이 쓴 편지 속 농담으로, 반공산주의 사상자로 몰린다. 군대로 축출되어 강제 노역을 하는 노예의 삶을 살게 되지만 이 시기에 자신을 구원해 줄 여인 루치에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와 사랑을 이어가는데 실패한다. 세월이 지나 대학시절 자신을 비극으로 내몰았던 제네마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부인 헬레나에게 접근해 그녀의 사랑을 얻게 되지만 자신이 계획한 복수는 실패한다. 루드비크의 친구 야로슬라프는 민속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 전통을 특히 자신의 아들 블라디미르가 계승해 주기를 원한다. 헬레나는 남편 제네마크에게 만족하지 못한 사랑을 루드비크에게 채우기를 원하나 자신을 향한 루드비크의 사랑이 진심이 아님을 알자 자살을 시도한다. 코스트카는 종교적 신념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에 고뇌하면서 자신 안에 도덕심과 그와 반대되는 욕망을 인식하는 힘을 지녔다. 그는 루드비크의 도움으로 루드비크의 고향인 모라비아의 병원에서 일하며 우연의 일치로 루드비크가 사랑했던 루치에 한테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루드비크와 관련을 맺고 있다. 루드비크를 중심축으로 루드비크와 교차되어 각자의 이야기가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루드비크는 자신이 던진 가벼운 “농담”으로 삶이 버티기 힘든 삶의 무거움을 경험하게 되고 그 밖에 인물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무게와 진지함과는 반대되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이 원하던 삶의 방향과는 다른, 가벼움(농담)이 늘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원하면 원할 수록 반대로 작용하는 힘 역시 커짐을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작품 속 야로슬라프는 자신의 고향 모라비아의 전통문화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을의 민속 축제 계승이야말로 인류의 지혜를 내포하고 있다는 신념을 지녔다.  “인류의 지혜로운 영원성”을 자신의 아들 블라디므르에게 그대로 전수해 주고 싶어 하고 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의 가치관을 지니고 살기를 바라지만, 블라디므르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실어준 무거움을 “농담”처럼 가볍게 여기고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다. 루드비크가 헬레나 자신에게 가진 사랑의 무게가 묵직하다고 믿고 있던 그녀는 루드비크가 자신을 향한 사랑의 가벼움이 한낮 "농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자살을 시도한다. 종교적 신념을 지닌 코스트카는 자신의 도덕성과 다르게 결혼생활에 얽매임을 싫어하고 자신을 존경하는 루치에의 진지함과는 다르게 코스트카는 자신의 “욕정(농담)“을 이겨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한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과 철학이 <농담>을 시작으로 <불멸>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 속 유토피아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데올로기를 향한 진지함 이면에 가벼움이 내재되어 있고 이 이치는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욕망의 배가 끝없이 항해하기를 원하지만 폭풍을 만나 산산이 부서져 가볍게 날아가 버릴 수 있음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보이는 대로 세상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무거움은 가벼움으로,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늘 전이된다. 이것이 신의 섭리이자우주의 질서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그 생각 속 이미지가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것이 밀란 쿤데라의 견해다. 소설 속 루드비크,  헬레나 코스트카 야로슬라프까지 모두  실재하지 않는 사랑, 종교 전통 계승, 이데올로기 등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속 이미지에 몰두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고 집착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삶도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할까. 밀란 쿤데라는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기 위한 길을 인도해주고 있다. 쉽지 않은 글 속 작가의 철학을 읽어낼 문해력, 독서력이 요구되는 작품인 듯하다. 감사하다.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나가야 할지 그 길을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걱정, 이것들에서 오는 생각들, 경험하고 저장된 이미지들의 실체 없음에 깨어있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