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독서기록 (feat. 금강경 &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Christi-Moon 2023. 5. 11. 18:51

토마스만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까? 이 책을 두 번째 읽고 읽는 중이다. 확실히 두 번 읽으니, 처음에 모르고 지나쳤던 앞에 상황들이 뒷부분과 연결되면서 고개가 끄덕이지는 부분이 많다. 토마스 만이  이 소설에서 이 집안의 몰락에 대한 불행을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전부였을까? 그것만은 아니다. 극의 구조는 한 집안의 몰락 얘기를 다루고 있다. 몰락의 징조들이 이 책의 첫 장면, 새집으로 이사 온 부덴브로크 가족들의, 손님 초대 만찬과, 장남 고트홀트와, 차남인 영사와의 재산상의 갈등부터 뭔가 몰락의 징조들이 시작된다. 호화스러운 집과 왁자지껄한 초대 손님들과 만찬의 화려함, 이 이면에는 뭔가 이 집안에 짙은 어둠이 천천히 드리워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부르주아 가정의 쇠퇴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 책 2권에 나오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쇼펜하우어가 쓴 철학서를 읽는다면 이 소설의 진의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읽고 있는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에서 나온 내용과 연결해서 한번 정리해 보았다. 

*Stadtpark, Vienna


작가 토마스 만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은  4대에 걸쳐 서서히 몰락해 가는 집안에 대한 큰 구조 틀 안에, 부덴브로크 집안에 대한 자부심과 이 자부심이 손상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결국 죽음 앞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쇼펜하우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 성찰을 하게 된다.  그의 이 성찰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으로 인해 가문이 몰락하고 있다는 징후에 대한 괴로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토마스가 완벽하게 깨우쳐서 죽음을 맞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성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토마스와는 반대로 여동생 토니는 예민하고 순간순간 직감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부덴브로크 가문이라는 틀 안에 갇혀 그것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그녀의 행동이 독자로서 감정이입이 되어 안타까왔다, 남 얘기만은 아니다. 모두 얼마쯤은 토니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사니까 말이다.
 

토니는 이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침착하게 몸을 뒤로 접힌 채 손을 무릎과 잠옷의 비단 고름에 얹고..."그래요.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거지요. 크뢰거 가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사치스러운 성향이 있어요. "... 그녀에게 각인된 가문의 성향 때문에 그녀는 자유 의지나, 스스로 결정한다는 개념과는 거의 소원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의 숙명적인 기분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기의 특성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런 차별도 못 느끼고 그래서 그 특성을 고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부지불식간에 그녀는 어떠한 종류의 특성이건 관계없이 가보이자 가문의 전통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다소 존경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견해를 지니게 되었다. 여하튼 누구든지 이러한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니가 지니고 있는 가문에 대한 그녀의 인식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토니는 사물의 본질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인식한다. 이것은 금강경에서 이야기하는 ”여리실견분 如理實見分 “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는 모든 상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상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세상의 참모습을 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개시허망-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의 허망은... 허무와는 다른 뜻입니다. 허무는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말하는 반면, 허망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 상이 물거품과 같아 거짓되고 망령된 것이란 뜻입니다. 허망하다는 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도 고유한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은 몸의 특징에서부터 기대감이나 고정관념까지의 넓은 개념입니다... 상이 허망함을 깨치고 모든 형상이 집착을 뛰어넘어야만 부처의 도리를 알고 자유와 행복의 참맛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상'에 대한 집착을 깨고 자유와 행복의 참맛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회사 대표로서, 대통령으로서... 이 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마치 '나'인 것처럼 착각하고 집착하며 그 상에 걸맞은 행동과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살아간다. 토니 또한 이런 가문의 집착이 자신이 지켜나가야 할 신념이고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믿는다. 점점 집안이 몰락하면서 자신의 물질적 부 또한 줄어든다.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들 중에 제일 강하다. 일을 하지 않고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다 살다 보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 물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토니는 첫 번째 결혼의 실패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두 번째 결혼에서도 그리고 딸 에리카의 결혼에서도 실수를 반복한다. 가문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우월감에 따른 자만은 현명한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방해요소가 돼버린 것이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새로 태어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토니는 이 작품에서 끝까지 살아있다.  '상‘에 갇혀 변하지 않는 인물의 상징인 것일까? 그런데 반전이 있다. 작가는 토마스 부덴브로크의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몰락이 끝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이 부덴브로크가 라는 가문이 몰락해 가문의 '표상'은 사라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으로 영원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드러나지 않게 제시해주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토마스가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이야기는 내일 다시 정리하려고 한다.
 
환절기이기도 하고 몸 관리를 소홀히 했더니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누구에게 돈 받고 매일 글을 쓰라고 했으면 이렇게 한 달 넘게 매일 쓰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책 읽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글을 통해 정리가 된다는 느낌을 받으니 뿌듯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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