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독서 기록 (feat.이탈리아 구두)

Christi-Moon 2023. 5. 8. 18:31

여행 가기 전 여행하는 나라의 문학을 찾아서 읽어 보는 편이다. 왠지 그러면 여행하는 나라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 책을 가지고가 기내나 숙소에서 틈틈이 읽는 것도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스톡홀름 여행 때는 헤닝 망겔의 <이탈리아 구두>를 읽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젊었을 때는 두려움이 크다.  살아온 시절을 돌이켜 보면 걱정부터 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지레 짐작해서 하고 싶은 어떤 일들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 당시 일들을 돌이켜 보면 두려움들로 감정 낭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하면 될 일을 쓸데없이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다 소진시켰다. 그런데 이것을 신의 섭리라고 해야 하나 우주의 섭리라고 해야 하나 그 두려워하던 일을 피했다 싶으면, 생각지도 못했는데, 피할 수도 없는 복병이 갑자기 나타나  그 두려움을 잠재워 버린다. 올 것은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삶을 예측할 수 없다. 만약에  예측할 수 없는 삶이라면 어떻게 살아나가는 것이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주인공 프레드리크 벨린은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연인 하리에트를 버린다. 어렸을 적 버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벨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보다 컸다.

보고 싶었지. 하지만 그리움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 뿐이야. 난 그리움이 두려워... 생략... 배신당할까 봐 두려워 내가 먼저 배신했다. 얽매이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감정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벨린은 연인 하리에트를 버리고 그 후 의사가 되지만 실수로 의료사고를 낸 뒤  섬으로 도망쳐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바깥세상과 차단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삶도 결국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 자신만의 섬에 있다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계속 내 성체를 지켜야 하나? 아니며 패배를 인정하고, 어쩌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내  삶 속에서 뭔가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할까? 결정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 누워 바깥 어둠을 내다보며, 내 인생은 그저 지금 같은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겠지.


벨린의 바람과는 다르게 우주의 섭리는 그가 뿌린 씨를 결국 다 거두어 가도록 벨린의 삶을 이끌었다. 40년 전 자신이 버렸던 하리에트와의 마지막 여행,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루이제와, 벨린이 의료사고를 내 힌쪽 팔을 잃은 앙네스와의 만남, 앙네스가 돌봐주고 있던 시마라와의  인연. 그들과의 만남은 벨린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들은 우연이 아니다. 이 모두 벨린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의 씨앗이 자라난 것이다. 어쩌면 벨린이 버린 하리에트와 자신의 딸 루이제의 상처와 아픔이, 한쪽 팔을 잃은  앙네스와 부모 없는 환경에서 자란 반항아 시마라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앙네스와 시마라와의 인연이 벨린의 의지와는 다른 사건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젊은 시절 벨린이 두려움으로 버린 하리에트와 아버지 없이 자란 딸 루이제에게 준 고통의 대가를 결국 벨린이 돌려받은 것이다. 벨린의 두려움이, 앙네스의 팔을 절단시키는 의료사고와 시마라가 벨린의 집에서 자살하는 것을 보게 되는, 즉 막연한 내면의 두려움이, 더 큰 두려움과 공포로 현실화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누군가에게 희생당하고, 반대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관계 속에 산다. 옳지 못한 생각의 집착과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우리는 관계의 연결망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벨린의 구두를 만들어주는 이탈리아 구두 장인 자코넬리도, 자신의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지는 구두를 주문하기 위해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지 않는가? 피하고 싶어도 관계의 고리 사슬에 언젠가는 걸린다.

*Stockholm


규격화된 사이즈에 우리 발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단 한 명도 같은 발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사람을 규격화시키지만 우리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모두 개별적이기에 자신만 특별할 수도 없다.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기면서 오는, ‘좌절과 자만의 한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죽음만이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늘 죽음을 기억해야 겠다, 두려움이 마음 속에 일어날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