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밀라노 여행 (feat. 최후의 만찬)

Christi-Moon 2023. 6. 15. 19:43

오늘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다시 읽을 생각으로 책을 펴다가 2018년 이탈리아 여행 때, 관람하기 어렵다던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Santa Maria delle Grazie)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갔던 그 날이 문득 생각이 나서, 이 작품에 대해 글로 정리해 보고 싶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벽화에 그려진 작품이다. 오랜 시간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해야 되나. 아무튼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았다. 전쟁을 겪으면서 훼손이 많이 되어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그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레오나르도가 어떤 방식으로 성경 이야기를 끌고 갔는지에 눈을 돌렸을 것이다. 이 그림에는 동일한 테마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닮은 데가 하나도 없다. 이들 전통적인 그림들에서는 사도들이 식탁에 한 줄로 앉아 있고 유다만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요 예수는 조용히 성찬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 새로운 그림은 이전의 전통적인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이 그림에는 드라마가 있고 흥분이 있다. 레오나르도는..."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하자 사도들이 너무 슬퍼서 모두가 예수께 "주여, 나니이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과연 어땠을까를 눈앞에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예수는 방금 비극적인 말을 했고,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 계시를 듣고 공포에 놀라 뒤로 움츠리고 있다. 어떤 사도는 그들의 사랑과 죄 없음을 호소하는 것 같고, 또 어쩐 사람들은 주님이 누구를 지칭했는지를 심각하게 논의하는 것처럼 보이며, 또 다른 사도들은 예수가 방금 말한 것을 설명해 달라고 예수를 쳐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유다만이 몸짓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예수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이 이 모든 극적인 움직임을 지배하고 있는 완벽한 예술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E.H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최후의 만찬(1495-1497)


나는 곰브리치와 다르게 이 작품이 읽힌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 유다 이외의 제자들은 예수의 말에 양심이 찔려하는 모습으로 나는 읽힌다. 12제자 중 오직 유다만이 예수를 비방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에게 결정적인 행동을 옮긴 것은 유다지만 나머지 제자들은 과연 예수에 대한 욕을 뒤에서 조금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자신의 스승에 대해 섭섭한 것조차도 그들끼리 말한 적이 없을 만큼 결백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11명의 제자들의 호흡은 안정적이지 않고 가볍게 느껴진다. 뭔가 과장된 제스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은  마치 결백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평소에 유다가 예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나머지 제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유다의 호흡은 진실되어 보인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내 눈에는 더 사악해 보인다. 이런 내 생각을 들으면 곰브리치가 무덤에서 뛰쳐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관점으로 작품을 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닌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원래 뒤에서 욕을 심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앞에서 안 그런 척하는 경우도 많다. 그중에 가장 단순하고 요령 없는 사람이 앞뒤가 다르게 행동 못해, 더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인물들의 표정은 섬세하고 예수의 말에 반응하는 태도도 각기 다르며 역동적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생생하다. 상상력이 진짜 대단하다. 인물들의 퍼포먼스가 다 다르지만 산만하지 않으면서 놀라운 균형 감각과 인물들끼리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천재 중에 천재다.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작품을 보고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예약날과 시간을 미리 예매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귀국하는 당일날 아침 극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면 짜릿하다. 귀국 비행기 타야 하는 날, 아침 일찍  줄을 서서 기다린 후,  당일 취소된 입장권으로 그날 오후에 관람할 수 있었다. 다행히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후 늦은 시간이었기에, 밀라노에 있는 암보로시아나(Ambrosian Library)에서 미켈라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io,1573~1610)의 작품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었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공항까지 잘 도착해야 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다녔지만, 여행 마지막 날을 알차게 보낸 감사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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