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Christi-Moon 2023. 9. 2. 20:20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 <히든>은 3년 전쯤 본 영화이지만 어제 다시 한번 보았다. 역시 미카엘 하네케 작품은 문학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영화의 깊이와 내공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특히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자신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을 봐서 필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을 보면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집중력을 가지고 보아야 이해가 되는데, 작품의 연결성이 사슬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극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처음 무심코 몰라서 장면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초반부터 보여지는 배우 표정의 섬세함은 후반부 극적 반전에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이미 영상 속에 담겨 있다. 이 영화로 미카엘 하네케는 2005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는데,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1961년 알제리인들을 향한 '파리 학살'에 관련된 사건이, 작품을 제작한 의도의 중심축이다. 1961년 알제리의 독립운동 단체(FLN)는 알제리 전쟁에서 저지른 프랑스군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인다. 그 시위 과정에서, 파리 경찰 11명이 죽고 17명을 다치게 했는데, 이에 대해 파리 정부는 알제리인들과 무슬림들을 탄압한다. 그해 10월 파리의 경찰들은 파리 중심부에서, 평화 시위를 하는 알제리인들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심한 폭력을 휘두르며 알제리 시위대를 진압한다. 이 과정에 수많은 알제리인들이 사상되고 실종된다. 이 사건 후 프랑스 정부는 오랫동안, 진압과 관련된 사건의 전모를 은폐하고 언론과 방송의 노출을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작품 제목이 왜 히든인지, 그리고 이 사건을 바탕으로 감독이 영화를 왜 제작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강렬하게 인상이 남는 장면으로는 마지드가 조르쥬 앞에서 결백하며 자살을 하는 모습으로, 모든 알제리인들의 고통을  대변해 주고 상징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여해 진다. 
 
이 작품 속 마지드의 부모님은 '파리 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이다. 이 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마지드는 조르쥬 부모님 밑에서 길러지게 되는데 이것이 사건 발단의 시작이다. 유명한 TV 프로그램 진행자 조르쥬에게, 어느 날 자신의 가족과 집 주위를 촬영한  영상 비디오가 배달된다. 이때부터 조르쥬는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특히  조르쥬는 자신의 과거를 부인 안느에게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그냥 넘기기에는 섬뜩한 그림까지 함께 동봉된 녹음테이프를 받게 되고 차츰 배달 횟수가 잦아지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이 결국 드러나 파헤쳐져, 가족의 일상과  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악몽 같은 과거로 인해 부서질 거 같은 위기감에 내몰리게 된다. 이렇게 되자 조르쥬는 어렸을 적 자신의 모함으로 집에서 쫓겨난 알제리인 마지드를 만나게 되고 오랜만에 상봉한 조르쥬를 반가워하는 마지드는 조르쥬의 냉정한 태도에 상처를 받는다. 급기야 조르쥬는 마지드의 아들을 테이프를 만들어 보낸 범인으로 지목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고, 마지드에 대한 조르쥬의 반감은 극에 달하게 되고, 급기야 마지드는 조르쥬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목에 칼을 긋고 많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마지드의 죽음 후에도 영화는 끝까지 숨어있는 감시의 눈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완벽하게 진실 또한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것이 밝혀진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것이 더 꽁꽁 감춰져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며, 관람자에게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가지도록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역사와 지금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대한 진실이 과연 진실이었을까라는 의문을 이 영화를 보면서,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과 현상에 대한 왜곡과 은폐의 소산은 조르쥬가 일하는 ‘언론’과 조르쥬 부인이 일하고 피에르가 사장인 ‘출판’ 쪽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 속 조르쥬가 자신의 방송 진행 프로그램에서 편집하는 장면은 언론의 조작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한 예이다. 그 편집된 영상은 그것이 사실인 것 마냥 시청자에게 보이고 들려진다. 출판되어 대중에게 전달되는 신문의 기사나 책은 언론 보다 더 쉽게 편집이 가능하고 심지어 오래도록 남고 기억되는 강력을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이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아닌가 말이다. 이런 것에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의 가능성을 제한받고 급기야는 정신을 마비시켜 버린다. 알제리 사건처럼 시간이 지나 가려져 있던 것들이 다시 수면으로 드러나고 제대로 된 역사의 해석을 다시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영화 속 또 다른 작은 ‘히든’이 있었다. 히든은 국가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영화를 세 번쯤 보면서 '히든'은 어쩌면 일상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감독은 놓치지 않고 있다. 조르쥬 부부와 마찬가지로, 학교 친구들로 부부가 된, 피에르와 마틸다 부부는, 조르쥬 부부가 비디오 사건으로 힘들어할 때 위로를 해주며, 조르쥬 부부의 대소사를 함께 공유하는 친한 친구로 보인다. 그러나 각자의 배우자를 속이고 각자의 배우자와 서로 맞바람을 피우는 관계이다. 영화 초반부 친구 모임 장면에서 안느가 일하는 출판사 사장이며 동시에 조르쥬의 친구이기도 한 피에르가 클로즈업되는데, 그 클로즈업이 인위적이고 상당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길었다. 그리고 감독은 조르쥬 부부를 모임 테이블에 떨어 뜨려 놓고, 피에르 옆에는 안느, 마틸다 옆에는 조르쥬를 배치한다. 앞에서 언급한 미카엘 감독의 섬세함이 여기서 돋보인다. 그다음 소름 끼치는 사실은 피에르라는 이름은 조르쥬와 안느 사이에 낳은 아들의 이름과 참으로 비슷하다. 이들의 이름이 비슷하므로 조르쥬는 안느가 피에르를 만났다고 말했을 때 아들을 만났다 생각하고, 착각까지 한다. 그리고 아들 피에로는 급기야 자신의 엄마가 일하는 출판사 사장인 피에르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가출까지 한다.

왜 '파리학살' 사건의 은폐를 감독이 이야기하면서 이 가정에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폭로하는 것일까?  이런 상상을 해봤다. 조르쥬와 안느의 아들 피에로는 어쩌면 조르쥬의 아들이 아니라 출판사 사장인 피에르의 아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 초반부 친구들 모임 장면에서 피에르를 긴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고, 피에르의 곱슬머리와 아들 피에로의 곱슬머리가 서로 닮도록 분장을 유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상징적 의미에서 어린 피에로도, 나중에 커서 엄마가 바람피우는 ‘출판사’ 사장 피에르의 머리를 닮고 ‘언론’에서 일하는 아버지 조르쥬의 마음을 닮아 역사를 왜곡하는 능력자로 클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피에로는 엄마가 아버지 몰래 바람피우는 것에 대해 반항하고, 마지드의 아들과 호의적인 대화를 하는 마지막 장면을 봤을 때, 어린 피에로는 하네케의 <하얀 리본>에 나오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명예와 위선, 욕망의 늪에 빠진 어른들에게 저항하고, 세상의 진실을 밝혀주는 위로와 힘을 주는 상징적 존재일 수 있을 것이다. 미카엘 감독의 방향성은 후자일 것이다. 작은 빛은 어린 피에로처럼, 깜깜한 곳에서 더욱더 빛날 수 있기에, 짙게 어두워 가려진 길을, 밝혀주는 든든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우리에게 어린 피에로와 같은 어른 피에로 같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다 보았다. 공개되지 않는 그의 작품을 전부 보지 못해 안타깝지만 이제껏 본 작품들을 다시 시간 날 때마다 보고 난 뒤 글로 다시 정리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80살이 된 하네케 감독은 어디서 무슨 생각을 지금 하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