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여러 편 보니 처음 봤을 때 보다 그의 작품 세계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이해가 잘 되기 시작했다. 2010년에 제작한 <하얀 리본>이 <퍼니 게임>보다는 뒤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억압과 폭력성이, 성인이 된 후 결국은 폭력의 형태로 발현되는 과정으로 이어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퍼니게임>에서 파울과 피터가 낀 하얀 장갑은 <하얀 리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한 폭력성의 상징이며, 가해를 당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그 폭력에 대한 억압을 분출해 자신도 폭력적인 인물이 되는 하나의 표식으로 보인다.
게오르그 가족은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자동차에 요트를 싣고 가는 중이다. 함께 휴가를 즐길 이웃인 프레도, 에바 부부와 인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태도에 이상한 기운을 느끼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하며 자신들의 별장으로 향한다. 별장에 도착한 가족은 짐을 정리하고 잠시 후프레도와 함께 온 파울이라는 청년의 도움으로 게오르그는 차에 매달렸던 요트를 호수에 띄우고, 부인 안나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저녁을 준비한다. 이때 낯선 청년 피터가 집으로 들어와 이웃집 에바가 보냈다며 달걀 4개를 빌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실수로 가장하여, 고의로 전화기를 싱크대 물에 빠뜨리고, 달걀도 깨뜨리는 등 이것을 이상하다 감지한 안나는 그를 내쫓으려고 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피터와 합세한 파울은 조금씩 게오르그 가족을 죽이기 위한 퍼니게임을 시작한다.
미카엘 하네케는 영화 장면마다 하나의 상징과 복선을 깔고 있고 등장인물 눈빛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기에, 보는 중간중간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기록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의 영화에서 장면마다 숨어있는 상징을 찾아내는 것은 그 영화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미카엘 감독의 영화를 몇 번 봐서 그런지 감독이 어떤 식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는지 대충 파악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그의 작품을 볼 때 어려워서 한발 물러서서 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요트를 차 뒤에 매달고 리모컨으로 작동해야 열 수 있는 별장의 대문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차에 매달린 요트는 마치 죽은 사람을 위한 관을 매단 것처럼 보였고, 리모컨을 작동하여 집으로 들어가고 대문이 닫히는 모습은 마치 퍼니게임 속으로 입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나가 음식 정리를 위해 연 냉장고 안의 분홍 포장지(고기의 피로 물들어 분홍색으로 보인 듯) 안에 든 고기는 마치 사람 시체가 들어 있을 거 같은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관객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하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섬세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이웃에 사는 프레도가 파울이라는 청년을 데리고 게오르그의 요트를 차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도와주러 왔을 때 대문 창살로 보이는 이 둘의 자세에서 프레도는 죄인처럼, 그리고 파울은 하얀 장갑을 끼고 죄인을 데리도 다니는 저승사자 같은 분위기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피터와 파울이 깨뜨린 달걀의 노른자는 끈적끈적한 피처럼 보여 불편한 감을 떨칠 수 없었다. 또 이웃집에 사는 게르다 로베르트가 요트를 타고 게오르그의 별장 근처에 정박하고 안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데, 그때 게르다는 검정옷에 흰 신발을 신고 있다. 그녀의 의상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곧 이 퍼니게임에 참여할 희쟁자의 한 명이 분명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징적인 배경과 소품등으로 전해주는 상징성 이외에 이 극이 일어난 스토리의 타당성 또한 감독은 놓치지 않고 있다.
집에 갇힌 피터와 파울은 게오르그 가족을 죽이기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이 둘은 마약 중독자이다. 파울이 피터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일을 이야기한다. 엄마가 피터를 성폭행까지 했고 피터에게 엄마가 집착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파울도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게오르그가 때린 뺨에 모욕감을 느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골프채를 무기로 이용했다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 둘은 마약 중독자였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른들 혹은 기성세대에 대한 억압, 아니면 별장과 골프와 요트를 소유한 부유층을 겨냥한 반발심과 분노가 때로 게임이라는 가상의 영상 공간에서 분출된다. 게임 세계에서 살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가능하다. 억눌린 감정을 잔인한 폭력 영상물로 위안을 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둘의 살인 게임이 단지 사이코패스의 행동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연대적 책임 의식을 무시한 처사일 것이다. 피터는 달걀 때문에 모욕적이었다고 말한다.
“달걀 좀 주면 어때서..."
뭔가 틀린 말로 들리지 않는다. 힘센 어른들은 자신 보다 나이 어리거나 약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약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함부로 말을 하고 행동한 적이 없는지, 이 부분을 고민하고 반성하라는 점이 감독의 의도일 수 있다.
“프레드와 사냥 간 적이 있나? 당신 아들이 이걸로 나를 쏘려고 했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그렇지 꼬마야?"
파울은 이렇데 말하고 피터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해?"
피터는 순수하게 대답한다.
“나쁜 짓이야."
어린 아들이 아버지가 사냥하는 것을 보고 총을 사용하는 것을 알았을 거라는 파울의 지적에 게오르그는 뜨끔해한다. 그리고 내 속을 편치 않게 한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면 안나가 고기의 피로 물든 종이봉투에 싸여 있던 붉은 고기를 칼로 써는 장면이다. 우리 인간은 동물을 먹기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냥하고 도살한다. 땅에 작은 개미도 발에 밟혀 죽을까 봐 위기의식을 느끼고 빠른 속도로 도망간다. 우리 인간이 죽음 직전에 느끼는 공포와 뭐가 다른가 말이다.
미카엘 하네케는 인간 이면의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관객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그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하라고 알려준다. 단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작품이 보기 불편한 이유로 낮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낮은 평점이 우리가 감춰진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고 있는 반증이 아닌지 고민하고 숙고해 봐야 될 문제라 생각한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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