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영화 <해피엔드> (feat. 미카엘 하네케)

Christi-Moon 2024. 1. 21. 10:24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우리나라 개봉작 중 가장 최근 영화인 <해피엔드, 2017>는 프랑스에서 큰 기업을 소유한 '로랑'가의 가족 이야기이다. 80살 노장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 수는 그의 나이에 비해 많지 않다. 45살에 첫 장편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그전에는 희곡과 텔레비전 대본을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그의 작품을 다 보았는데,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네이버 평점은 그야말로 형편없지만 그 평점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더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유럽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 좀 더 집중해서 봐야 하는 부담감이 요구된다. 특히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에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의 힘이 필요하고 무의식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들을 이해하는 내공이 어느 정도 요구된다. 그러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한 작품을 감상하고 몇 번 반복해서 보면 잘 이해하게 된다. 감독이 관람자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일관되게 작품에서 전달되기 때문에 그의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할 때는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동일한 작품을 몇 번 반복해서 보게 되면 극의 짜임새가 워낙 튼튼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영화 속 인물의 행동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섬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역할을 맡은 배우들 연기의 디테일이 뛰어나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을 하는 배우 어느 누구도, 개인 연기가 튀지 않고 영화 속에 잘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 편의 다큐를 보는 것처럼 배우들 연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랑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로랑 가문은 프랑스 칼레 지역에서 상류층에 속해 있다. 둘째 아들 토마스 로랑의  전처 딸 에브가 이 집안에 들어오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남 부럽지 않은 부를 지닌 로랑 기업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해결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은 고민을 지닌 채 불안정한 삶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첫 장면은 사춘기 소녀 에브의 SNS 촬영으로 시작된다. 아빠와 이혼하고 아들 (에브의 오빠)을 폐렴으로 잃은 에브의 엄마는 우울증에 빠져 자신의 딸을 돌보지 못한다. 아들과 남편 없이 생활하는 우울증 걸린 엄마와 생활하는 에브는 디지컬 미디어에 집착하고 자신의 대화를 그것에만 의지한다. 심지어 에브는 우울증 약을 엄마가 먹는 음식에 몰래 넣는다. 엄마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입원까지 하게 되고, 결국 에브는 친부인 토마스가 사는 칼레로 가게 된다. 에브가 이 로랑가 본가에 살게 되면서 이 가족의 상처가 하나둘씩 드러난다.
 
에브의 아빠 토마스는 유능한 의사이고 자상한 아빠로 보이지만 재혼한 부인 아시아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다. 이 사실을 자신의 딸에게 들키고, 이것으로 에브는 자신의 새로운 안식처가 다시 와해되어 버릴까 봐 불안해한다. 에브의 새엄마 아시아나는 에브에게 다정한 면도 있고, 현모양처로 가정을 지키고 있지만, 남편 토마스와 애정이 없어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이 느껴지고 외로워 보인다. 토마스의 누나이며 에브의 고모 안느는 로랑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도 있지만 사업을 물려줄 하나뿐인 아들이 만족스럽지 않다. 로랑 기업을 물려받을 자신의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아들을 의지하려 하고, 아낌없이 지원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기업 운영에 혐오감을 느낀 아들 피에르는, 엄마와의 사이가 틀어지고 더욱더 방황하게 된다. 피에르는 큰 기업을 운영하는 냉정한 엄마와는 달리 로랑가에서 허드레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있으며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에게 경계심 없이 살아가는 정이 많은 청년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고 있다. 작은 무대가 있는 '바'에서 춤추는 피에르의 영화 속 장면은, 가슴에 울림을 주는 명장면이다. 갈가리 찢긴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어 춤으로 표출하는 그 씬은 인간으로서 태어나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외로운 우리 삶을 상징적으로 잘 그려내주고 있다. 나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피에르 자신을 향한 분노와, 자신의 엄마와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그의 어설픈 춤에서 제대로 느껴진다. 로랑 기업을 딸 안느에게 물려주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조르주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던 자신의 부인을 질식사시킨 죄책감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지만 끝까지 불발이다. 목숨을 끓는 것조차 자신의 의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영혼과 의욕 없이 지내고 뭔가 죽음과 삶을 초월한 느낌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탱하며 살아내고 있다.


*Michael Haneke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 <피아니스트> <하얀 리본>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폭력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자녀 세대들에게 전해짐을 경고한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폭력성은 다른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냉혹할 만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아무르> <해피엔드>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과 가족과 인간의 필연적인 관계로 인한 고통 심리등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익숙한 방식의 삶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냉철하면서 명확한 현실 묘사는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그 혼란은 이성적으로 정리가 되고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해피엔드>의 제목은 영화 내용과는 괴리가 느껴진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언 해피엔드>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가지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행복의 끝은 없다. 언어상에서 느껴지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 우리는 빠져나와야 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늘 우리는 자신에게 채워지지 않은 삶을 메꾸기 위해 고전분투 한다. 그 삶을 메꾸기 위한 집착과 욕망에 괴로워한다. 설사 자신의 원하는 삶을 가졌다고 해도 또 다른 것을 메꾸기 위해 또 다른 방식으로 고전분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은 반복과 재생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삶의 현상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가 얻고 싶은 행복은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미카엘 하네케는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끝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지 않는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삶이 늘 불안정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이다. 그래야만 행복감이 찾아오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에브는 사랑하던 오빠를 잃고 엄마와 헤어졌지만, 아빠와 새엄마, 남동생과 새 출발하게 된다. 토마스는 첼리스트 클레리와 바람을 피우며 자신의 허전함을 메꾸지만, 가장으로서 본분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안느는 차가운 기업가이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따뜻한 남자친구에게 의지하고, 아들 페에르의 상황을 객관성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피에르는 소외된 이웃에게 정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조르주는 자신의 부인을 질식시켰다는 죄책감에 빠져 사느니, 하루빨리 자신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힘없고 할 일 없는 노인이기에, 그것이 곧 우리에게도 현실로 닥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연민의 감정이 느껴진다. 조르주에게 자식들은 관심과 사랑으로 그를 살게끔 지탱해 준다. 우리 삶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내 삶을 돌아봐도 그러하다. 완벽하지 않은 삶이지만 아주 가느다란 한줄기 빛이 꺼지지 않고 우리의 삶을 비쳐주고 있다. 어둡지만은 않다. 최악으로 상황이 가지는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지금 나의 삶에 감사함을 가지게 되었다.
 
<해피 엔드> 이후  6년 동안 미카엘 하네케는 신작 발표를 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다려진다. 한국에 개봉되지 않은 그의 나머지 작품도 보고 싶다. 미카엘 하네케 영화를 보는 것은, 문학 한편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감과 충만감을 가지게 된다. 또 삶의 방향성을 리셋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게 해 준다. 그리고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은 의지가 일어나게 만들어 준다. 한 권의 문학이, 한 편의 영화가 삶의 여정에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종교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 곧 그의 다음 작품을 볼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