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이 말한 대로 시간의 개념은 느끼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짧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의 생각이 참으로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뮌헨여정의 삼분의 이가 끝나고 있다. 뮌헨에 도착한 지가 어느덧 2주가 흘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 온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느낌이다. 딱히 너무 재미있다거나 흥분된다거나 가슴 설레었던 여정이었다기보다는 좀 안정적인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유럽에 여러 곳을 그간 다녀 본 결과,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짜여 있고, 구글맵이 상당히 디테일하기에 교통편을 검색만 할 수 있다면 거의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다. 타국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한국에서도 길을 잃기도 하니까 말이다.
여행을 하면 조바심이 생기곤 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여행 일정을 쪼개서 다른 도시나 나라를 이동하곤 했다. 작년 스페인 40일 여행 때도 그랬다. 여행 기간이 길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마드리드에 좀 더 오래 머물러도 될 뻔했구나 이런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늘 여정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한 곳에만 있었다면 분명 가까운 도시를 방문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생겼을 것이다. 뭐든 완벽함은 없다. 이제는 내가 선택한 것에 감사하고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부적함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완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 여정은 지난 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그랬지만 도시를 많이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이곳에 와서 다른 지역을 가보고 싶다면 그때 결정을 해도 이제 늦지 않다고 말이다. 하루 전날이라도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지 갈 수 있기에 미리 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여유가 있고 좀 안정적인 여정을 보내고 있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영국정원(Munich English Garden) 걷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말이 정원이지 거의 숲이다. 면적이 거짓말 보태서 뮌헨 면적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또 뮌헨 중심부에 넓게 위치해 있기에 뮌헨 시민들이 이용하기가 용이해 보인다. 이곳은 뮌헨의 맑은 공기를 책임지고 있으며 그들의 힐링 공간이며 자전거 타기와 조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보인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정말 부럽다. 이 정원은 영국인 물리학자 벤자민 톰프슨(Benjamin Thompson)의 조언으로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가 이자르강(Isar River) 북쪽에 있는 늪지대를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꾸어 1790년에 이곳이 처음 조성되었다고 한다. 곳곳에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은 곳도 있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베를린에도 이와 비슷하게 큰 공원이 있지만 이 정도로 멋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탁 트인 드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나무숲이 어우러져 있고, 숲 속 곳곳에 흐르는 개울은 정겹고 물도 상당히 맑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휴식하며 가족 피크닉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하천의 급류 지점에 인공적으로 빠른 물살을 만들어 서핑을 할 수 있게 만든 곳이 있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서핑을 즐기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될 정도로 흥미진진한 광경이었다. 이것을 ‘리버서핑'이라고 하는데 뮌헨의 영국공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겨울을 예고하는 가을비 내린 직후 숲에서 나는 풀 냄새를 좋아한다. 그 어떤 향기보다도 더 사랑한다. 영국 정원 역시 비에 젖은 촉촉한 풀 냄새는 사람을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으로 내몰게 한다. 하지만 몸이 정화되고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머릿속이 맑고 상쾌해진다. 이 깊은 가을 비로 적셔진 풀 냄새와 처절한 고독은 하나로 연결된다. 아마 바로 이곳에 누군가가 곁에 있다 해도 이 지독한 고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곳이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인공적으로 손을 댄 느낌이 아니라 적절하게 내버려 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점이다. 관리를 했지만 티 안 나게 아주 자연스러운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숲 속 곳곳이 깨끗한 편이다. 관리가 결론적으로 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걷고 또 걸었다. 뮌헨의 여정이 끝나는 날까지 이 숲의 정기를 한껏 받고 많이 걸으며 귀국할 것이다. 이 감사한 여정을 무사하게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뮌헨 시민들 그리고 한국에 나의 가족 지인들에게 고마움이 크다. 한 사람의 행복은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만하지 않고 그 고마움과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흥분되지 않은 고요한 삶을 살고 싶다. 딴 얘기지만 커피 끊어야 한다. 여행 중에 커피는 꿀 맛이지만...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욕망이여 잠자거라, 깨어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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