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의 저자 정여울 작가는 나에게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용기와 미술관에 대한 관심에 힘을 불어넣어 준 작가 중 한 명이다. 인스타를 지금 하지 않지만 예전 정여울 작가의 인스타를 보면 다방면으로 재능이 많은 작가로 보였다. 물론 작가라는 직업이 해박한 지식과 소양이 겸비되어야 하겠지만 그녀는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작가로 보인다. 어린 왕자의 사랑과 빈센트 반 고흐의 사랑을 쓴 글들을 읽으면서 공감대 형성한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따뜻했고 그녀의 글들이 위로가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체화시킨 글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능력은 부러운 일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 목표는 미술관 관람이다. 이 또한 정여울 작가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녀는 미술관에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지에서 본 미술 작품들이 주는 위로에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내 마음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전 느껴지는 설렘으로 가득 찬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분위기는 묘하다. 자유로운 엄숙함, 간결한 화려함, 무게감을 지닌 자유로움, 거리가 느껴지는 친밀감, 냉정과 열정의 조화로움이 어우러져 뭔가 모를 기운에 휩싸이게 만든다. 전시된 미술 작품들이 전해주는 말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글로서 말로써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림에서 주는 전달력과 호소력은 글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치유의 힘과 다르지 않다.
서양 미술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면서 화가의 영혼을 느꼈을 때부터이다.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대부분 그게 뭐지 고개를 꺄우뚱하며, 설마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작품을 보는 그 순간 나는 그랬다. 그 후부터 미술 작품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즈음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읽으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거장 지오토(Giotto di Bondone)가 그린 <그리스도를 애도함>을 보고 전율이 일었다. 책에서 그 작품을 봐도 소름이 끼치는데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몇 년 안에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가서 그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305년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 작품은 비극적 상황에 슬픔을 지닌 인물들의 애도의 장면을 그린 것이지만 나는 그 안에 희망을 보았다. 슬픔이 가득하지만 유머가 있었고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해 있었으며, 애도하는 이들의 표정은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다채로웠다. 그림 속 애도는 거기서 그 상황이 끝나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전해졌다. 무엇보다 작품 속 인물들이 모두 예수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지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천사들을 비롯해서 인물 하나하나가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 뒤 서양 미술을 눈으로 직접 보고자 하는 갈망이 커졌고 정여울 작가처럼 나의 여행은 미술관을 가기 위한 여정이 중심 축이되었다. 그런 경험과 기회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의 나의 상황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 뒤 가슴앓이는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파리 오르세,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 네덜란드 조용한 소도시에 있는 크뢸러 미술관을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나를 끌어당긴 작품은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이다. 책에서 먼저 보게 된 고흐의 이 작품은 제일 먼저 파리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파리 오르세에서 이 작품을 오롯이 혼자 보고 싶어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연인과 재회하는 그 순간의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야 만났다는 행복감과 다시는 못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이 순간이 멈춰 영원함을 간직하고 싶다는 열망과 곧 이별해야 되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났다. 론강의 별은 성스러움 그 자체이다. 론강의 별 빛에서 흐르는 소박함과 따스함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소리 내서 엉엉 울고 싶었다.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뭔가 삶에서 먼 길을 돌아 돌아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내 삶의 가치관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세상이 강요하는 가치 기준과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읽을 수 있는 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고흐는 나한테 그런 사람이었다. 저 아래 세상에서 나를 들어 올려주었다. 종교적 영성의 충만함을 그의 작품에서 받은 것이다. 나 못지않게 정여울 작가의 고흐 사랑 또한 크다. <오직 나를 미술관>에서도 그녀의 원픽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별'을 그린 화가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별빛'을 그런 방식으로 그린 화가는 고흐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고흐의 별빛은 불꽃놀이처럼 아스라하게 번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물 위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소용돌이 같기도 하묘, 초신성이 폭발하는 것처럼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없지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누이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밤하늘의 별을 그릴 때야말로 모든 시름을 잊는 행복한 순간이라고 고백했다, 아마도 별빛에 투사된 그 간절한 때문에 오늘날 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이 여전히 고흐가 그린 밤하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별빛에 무슨 간절한 사연이 깃든 것처럼, 별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간곡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고흐가 그린 밤하늘은 아름답게 빛난다... 그는 예술이야 말로 삶으로 인해 망가지고 부서진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몸직임을 알고 있었다.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에서 소개된 미술작품들 중에서 직접 내가 여행 가서 눈으로 본 작품들을 정 작가가 어떤 시각으로 나와 달리 작품을 바라보는지 흥미로웠고,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작품도 있어 유익했다. 특히 재작년 스페인 여행 때 방문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살바도르 달리’의 <창가의 소녀>가 실려 있어 반가웠다. 이 작품은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의 재기 발랄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림 속 달리 여동생의 뒷모습에서, 관능적인 느낌이 풍겨난다. 원숙한 관능미라기보다는 젊고 풋풋한 건강함이라고 말해도 좋을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싱그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푸릇푸릇하지 만은 않다. 그녀가 앞으로 마주할 세상이 찬란함만으로 채워질 수만은 없는 여정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작품 속 달리의 여동생은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 안에 침잠되어 어떤 생각에 빠져있다. 언뜻 보면 작품 속 그녀가 바다를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바다 앞쪽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떤 고민에 빠져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묵직함’은 젊게 살아가야 할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여울 작가 또한 나처럼 이 그림의 관심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사실이, 마음 맞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처럼 뿌듯했다. 이런 것이 독서가 주는 장점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미술은 문학처럼 스토리를 읽어서 이해가 되는 장르가 아니다. 처음 미술 작품을 접하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봐야 하는지 당황하게 되고 그 당황함은 미술 감상과 영영 멀어지게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싶고 그림을 보다 더 잘 이해하며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미술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들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술에서 보여주는 세상을 좀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쌓이면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자기만의 관점이 생기고 더불어 언어로 설명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음을 차츰 인식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화가는 그림 속에 수많은 자신의 생각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을 읽기 전이라면 정여울 작가가 쓴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추천하고 싶다. 한 명의 예술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또 다른 예술가도 사랑할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 그 파급 효과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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