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의 후기 소설 <선택받은 사람>은 독일의 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 (Hartman von Aue 1165-1215)의 서사시 <그레고리우스>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속죄와 구원의 여정 스토리는 이제껏 읽은 토마스 만의 작품과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친상간이라는 특별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소재는 무겁지만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가볍지 않고, 어두운 이야기지만 아름답게 흘러간다. 종교와 관련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 보고 난 뒤에는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세속에 가질 수 있는 모든 부와 권력을 가진 대공 부부에게 자식이 없었다. 그런 그들은 뒤늦게 쌍둥이 남매를 낳게 되는데, 빌리기스와 지빌라, 이 둘은 서로를 욕망하고 결국 근친의 선을 넘게 되는 행위를 하고, 지빌라는 오빠 빌리기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십자군 전쟁에서 빌리기스는 죽고 지빌라는 죄로 얼룩진 자신의 아들을 출생의
비밀이 적힌 서판과 함께 바다에 떠나보낸다. 아들은 아고니아 데이 수도원의 그레고리우스 수도원 원장의 품에 다행히 안기게 되고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수도원장은 서판을 통해 이 아기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잘 보살펴 그레고리우스라는 세례명까지 지어준다. 수도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성장한 청년 그레고리우스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젖먹이 형제와 싸움이 붙고 그 이후로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그 뒤로 수도원을 떠나 기사가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가 당도한 것은 자신을 낳아준 친모 지빌라가 군주로 있는 곳까지 당도하게 되고 전쟁 중인 그 나라의 여왕인 친모의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결국 전쟁의 승리로 이끈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어머니 인줄 모르고 지빌라와 결혼하여 딸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죄악의 열매인 그레고리우스는 자신과 오누이 사이였던 부모로 인한 고통과 참회의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지빌라는 자신의 아들이자 그의 부인이며 동시에 그레고리우스가 조카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빌라와 그레고리우스는 큰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 고행의 삶을 자처하고 헤어진다. 지빌라는 구제소에서 자신의 딸들과 병자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그레고리우스는 호숫가 험준한 바위섬에 묶인 채 17년간 잔인하고 혹독한 참회의 세월을 보낸다. 한편 로마 교황의 부재로 고민하던 로마의 두 귀족은 그레고리우스를 교황의 보좌에 앉히라는 꿈속 계시를 받는다. 그 후 그들은 바위섬에 묶여있는 그레고리우스를 찾아내 그를 교황으로 모시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유래 없는 지혜와 은혜로 세상을 밝게 빛내는 위대한 교황이 된다. 지빌라는 이 위대한 교황을 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딸들과 함께 교황의 거처로 간다. 그레고리우스와 지빌라는 만나기 전 이미 서로의 존재를 예감하고 있었다. 어머니이고 아들이며 동시에 조카이며 고모라는 사실을.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딸까지 그런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이끌어 준 신에게 감사함을 가진다. 그들의 참회와 회개는 신으로부터 구원의 영광으로 이어지고, 인간이 가지는 유한한 삶을 영위한 후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작품에서 욕망과 회개의 양 극단은 하나로 이어진다. 신분이 높은 위치해 있던 주인공들의 원초적인 욕망에서 순결한 영혼으로 갈 수 있는 길은 깊은 회개와 그에 따른 실천으로 가능했다. 인간 구원의 길의 열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처해서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 대가를 스스로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신에게 선택되고 신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자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선택받은 사람>,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인물들은 깊이 반성하고 그에 따른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에게 선택받은 그레고리우스와 신에게 축복받은 요셉이지만 이 두 남자의 인생은 꽃길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며 처해진 고난과 역경에, 마주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고행의 길을 스스로 자처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그들에게 신은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생명의 끈을 던져준다.
욕망에 대한 의식과 순결한 영혼을 지니게 될 가능성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 이 극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힘은 고행길을 거부하지 않고 가려는 스스로의 의지와 '진심 어린 회개'로 생겨나는 것이다. 요셉과 그레고리우스의 진심 어린 회개는 신을 감동시켰고, 그 뒤 이들에게 펼쳐진 삶은 "화려한 신의 선물"에 대한 성취 결과물의 집중이 아닌 "경건함" 그 자체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자만과 교만, 욕망은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뼛속깊이 알게 된 것이다.
숙연해진다. 우리는 삶에 대한 방식을 무한하게 선택 가능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신의 섭리와 우주의 조화로운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예전에는 살면서 지은 선행이 죽고 난 뒤에 결과로 나타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의문 조차가 자만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내가 판단하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 일이 벌어질지, 죽고 난 뒤에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가 나타날지, 그것에 대한 조치는 신과 우주가 알아서 할 일인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다니 반성할 것 투성이다. 진심 어린 반성이 늘 필요할 것이다. 삶에서 회개가 뼈저리게 필요한 것임을 이 소설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토마스 만에게 감사함과 무한 사랑을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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