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불교 사상가와 서양 과학자의 만남 (feat.법륜 & 데이비드 봄)

Christi-Moon 2024. 4. 21. 22:44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과 그분이 쓴 경전을 해석한 글들은 참 명쾌하고 읽기 쉽다. 불교 경전과 부처님 법문의 깊이는 보통사람이 접근하기에 어려울 수 있지만 법륜스님을 거쳐 나온 것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그러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오늘 유튜브 영상에서 부탄의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봉사활동 하시는 법륜 스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했다. 그의 저서 <붓다 나를 흔들다>를 읽으면서 불교와 과학자인 데이비드 붐이 말하는 것들과 불교 사상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뭔가 항의를 할 때 엄마는 우리 애가 말을 잘 못했는데 이제 말을 제법 한다.‘하고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엄마, 왜 늦게 왔어?”하는 소리를 ‘쟤가 배가 고팠구나’라고 이해하고 오히려 등을 두드리면서 “배고팠지? 빨리 밥 차려줄게”이렇게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힘들게 고생라고 와도 아이는 엄마가 ’이런 일로 늦었구나 ‘하고 이해해 주지 않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린 아이고, 이해하는 사람은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어리다는 말이 어리석다는 말과 통하는 것입니다.
 -법륜 스님의 <붓다 나를 흔들다>-


데이비드 봄의 <봄의 창의성>을 보면 분절된 사고와 언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더 나아가 인류에 해가 되기에, 그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한데, 그 방법론 중의 하나가 올바른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화에 대한 개인의 인식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고 그 개인의 실천이 시발점이 되어 퍼져 나가야, 인류가 지구 위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바람직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인의 “생각과 사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이 하는 ‘사고’는 인종 정치 경제 종교 집단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인식이 깊게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봄은 말한다. 이것들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는 습관적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닌데, 언어로부터 파생된 잘못된 사고와 인식이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 종교 예술을 오늘날 분리시켜 분절된 각기 다른 것이 모아져 각각의 실재가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 생태계 파괴, 기후 온난화, 식량 위기 자연재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이 결국 개인이 지닌 의식과 생각이 하나로 연결되어 일어난 것이기에, 이것을 전체로 파악하고 해결하는 힘이 모아질 때 비로소 세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 봄의 시각이다. 그의 견해는 법륜스님이 쓰긴 책 속 부처님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법이 바로, 이 세상은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하나하나를 보면 별개 같지만 그 연관된 전체를 보면 하나일 뿐이라는 연기법이죠.
 -법륜 스님의 <붓다 나를 흔들다>-


불교의 연기법 또한 봄이 주장하는 ‘사고’ 체계 역시 연결되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사고’하는 방식 또한 기존의 사고 흐름과 다르게 인식해야 된다는 봄의 주장은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심’을 일으켜 사고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고’와 ‘분별심’을 일으키게 되는 본질적인 문제는, 출생 후 개인이 속한 집단의 요구에 맞게끔, 생활 방식과 언어를 습득하고, 크고 작은 틀 안에 교육받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을 진리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봄은 지적한 것과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심’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생각한 것에 토대를 두고 있는 모든 사고는 분명 기억에 연유한다. 우리는 경험과 실천을 통해 지식을 쌓는다... 문제는 우리는 이런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사람은 나쁘다.‘고 말하는데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사고로 인한 표상이 직접적인 인식에 기초한 제시 안으로 침투한다. 일단 이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당신의 내재적인 사고, 즉 암묵적인 사고 안으로 들어온다...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옳다거나 옳을 가능성이 크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그것이 우리를 구속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절대다수 의견에 반기를 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봄의 <대화의 관하여>-


봄의 저서 <대화에 관하여>을 읽어보면 불교의 ‘분별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다. 개인의 생각이 각기 구별되어 본래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 문화에서 시작되어 그것이 개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가족, 학교, 친구, 책 등에서 받은 영향을, 취사 선택하고 남아 있는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데 결국 개인의 ‘사고’는 공동체에서 얻은 축적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개인끼리의 대화든 집단에서의 대화든, 언어로 한정된 집단으로부터 나온 ‘사고’ 체계에 관한 문제점을 인식해야 하고, 지금과는 다른 ‘사고’ 흐름으로 변화시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봄은 피력하다. ‘나의 생각’은  나‘라는 독립적인 실체 안에 발현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만들어진 표상의 축적물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고’를 인식하고 변화시켜야 갈등 없이 공존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서양 물리학자의 생각이고 철학이다. 이런 봄의 사상은 결국 동양 불교 사상에서 ‘분별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봄의 저서 <창의성>과 <대화의 관하여>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가는데 그것을 설명하는 화자의 열정이 느껴져 좋았다. 법륜 스님이 쓰신 책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고 글 속에 스님의 내공과 따스한 온기가 더불어 소박함이 느껴져 좋다. 봄이 우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끈다면 스님은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른 색깔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해주어도 그 둘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사상가 모두 삶의 지혜와 통찰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과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잊고 살기에 자만심을 가지게 되고 교만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망각하고 살아선 안될 것이다. 우리는 대단한 것을 추구하고 남과 달리 특별하게 살는것이 잘 산다고 착각한다. 남보다 더 좋은 능력을 가지기 위해 고전분투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인식이 뿌리 박혀 있다.

두 위대한 사상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이제껏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잘못된 의식과 사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과 나와의 연결성을 늘 염두에 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분별하고 습관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데이비드 봄이 지금 살아있다면 법륜스님과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봄과 법륜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늘 깨어있어야 된다는 것과 스스로에게 경고할 줄 알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속적인 정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