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환상의 빛>은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하고 1995년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를 본 후 바로 원작 소설을 사서 읽어보았다. 여 주인공 유미코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담담한 서간문 형식의 소설이었다. 영화도 원작과 다르지 않게 보는 내내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영화를 볼 때보다 소설이 더 구체적으로 내용이 다가오긴 했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고레에다 감독은 시각적 영상을 통해 전달해 주는 명장면이 있었다. 달리는 기차가 오는 신호를 표해주는 차단봉을 무시하고 훔친 자전거를 탄 이쿠오가 기차가 지나가는 옆에서 달리는 기차와 경쟁하듯 자전거 페달을 밟는 장면이다. 이쿠오는 더 전진하지 않고 오던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이 장면은 소설에 없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 이 장면은 이쿠오의 자살을 암시하기도 하고, 동시에 소설에서 드러나게 묘사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환상을 시각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평론가 이동진이 추천하고 있는 소설로 유명한데 소설 뒷부분 이동진이 쓴 평을 보면 "불현듯 남겨진 자가 삶에 끝없이 메아리치는 비극적 순간의 의미에 대해 곱씹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충분히 공감되는 평이다. 그러나 <환상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작가는 좀 더 깊이 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의도를 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간파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양한 관점으로 읽힐 수 있는 원작을 영상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 장면이 위에서 언급한 기찻길 장면이다.
주인공 유미코는 어린 시절 집 나간 할머니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녀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가출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가족 중에 자신만 보았고 할머니를 그때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할머니가 가출한 그즈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쿠오라는 남자아이와 동네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녀는 그와 결혼해 아들을 낳고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된다. 그런데 아들 유이치가 3개월쯤 되던 어느 날 이쿠오의 자살로 평온하던 일상은 깨지고 만다. 남편 이쿠오가 자신의 자전거를 도둑맞아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도둑질 한 날로부터 며칠 후 밤, 달리던 기차를 피하지 않고 철길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행방불명된 할머니에 대한 상처가 늘 유미코의 마음에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는데 그 불안의 징조는 이쿠오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녀의 삶은 산산조각 난다.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아들 유이치를 데리고 그녀는 파도와 바람 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마을에 사는 타미오와 재혼을 하고 나름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쿠오에 대한 상처가 그녀의 머리에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쿠오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바닷가를 배회하던 그녀에게 남편 타미오는 전 남편의 자살에 대한 유미코의 고백에 이렇게 답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라고. 그 말에 위안을 받은 유미코는 일상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나 있지,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왜 자살을 했고 왜 철로 위를 걷고 있었는지 그런 거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게 돼. 그 사람이 왜 그랬을 것 같아?”
“바다가 부르는 것 같았대.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배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이 작품이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낌 이면에 보이지 않는 심해의 바닥에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을 작가가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쿠오는 도둑맞은 자신의 자전거와 상응하는 자전거를 훔친다. 자전거를 향한 이쿠오의 욕망이 영화나 소설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지는 않는다. 유미코의 아픈 기억으로 그 욕망은 묻힌다. 인도 영성가이며 철학자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욕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문제는 욕망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욕망이나 동경심, 그리고 몸 달게 하는 갈망의 전체 과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물건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얼마나 숭배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역기 천박한 반응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수많은 기대와 욕망 신념 갈등 같은 것으로 뒤틀려 있을 때 외면적인 물건만을 포기하는 것으로 출발할 수 있을까요?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마음속을 말하는 것이지, 물건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다는가, 어떤 것을 몸에 걸치고 있다든가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은 너무 천박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외관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과 ‘나’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정신의 욕망이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 <자기로부터의 혁명> 중에서-
자신이 가진 욕망을 미화시키지 않고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 통찰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타미오가 말한 아름다운 빛은 어쩌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하나의 유혹의 상징일 수 있다. 그 빛에 혼이 나가 그 빛에 현혹되 가게 되면 파멸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아름다움이 무조건 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한다. 젊은 이쿠오 또한 자신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배어있는 우울감, 3개월 된 아들을 가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자전거 도둑이 된 자신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고 싶지 않을 만큼 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미코의 가출한 할머니도 자신의 죽음을 어두운 집이 아닌 자신의 옛 시골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이것을 우리는 소박하고 절박한 소망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는 이것 또한 욕망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욕망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길을 인도하는 빛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단지 환상을 비쳐주는 빛인지 모르고 실재한다고 믿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 소설 마지막 장면에 유미코는 말한다.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으니 잔물결의 빛과 함께 상쾌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곳만은 바다가 아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부드럽고 평온한 일각처럼 생각되어 흔들흔들 다가가고 싶어 집니다. 그렇지만 미쳐 날뛰는 소소기 바다의 본성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잔물결이 바로 어둡고 차가운 심해의 입구라는 것을 깨닫고 제정신을 차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욕망의 환상에 빠져 사는 인간의 집착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잔잔하게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 또한 소소기 바다처럼 잔물결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그 이면에 어둡고 차가운 심해의 입구가 있어 거기로 빠지면 욕망의 늪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임을 자각하고 살아야 함을 궁극적으로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커피에 중독되면 그 커피가 내 몸을 깨우고 힘을 내준다고 착각한다. 몸이 망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술 중독의 위험성은 알지만 커피 중독은 술에 비하면 뭔가 도덕적으로 괜찮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의 견해로는 둘 다 욕망인 것이다. 그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욕망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욕망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구별하기 쉽다고 자만한다. 하지만 욕망은 소망과 희망의 빛, 아름다운 빛으로 둔갑하고 우리를 늘 유혹한다. 욕망이 유혹하는 빛에 매료되어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혼 마저 잃어버리게 되면 이상 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빠지게 된다. 그것이 환상의 빛이다. 커피와 술의 중독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커피 냄새의 유혹, 즉 환상의 빛으로 오라는 손길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언제나 깨어있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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