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영화 어나더 라운드 (feat.죽음, 삶의 의지)

Christi-Moon 2024. 6. 9. 19:59

덴마크 출신 토마스 빈터베르크 감독과 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연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그들의 전 작인 <더 헌트> 못지않게 감동을 주는 명작이다. 무엇보다 배우가 되기 전 무용을 했던 마르틴역, 매즈 미켈슨의 춤 실력은 이 영화 엔딩씬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영화의 깊이를 더해준다. 오래전에 <더 헌트>를 감명 깊게 보고 매즈 미켈슨에게 반했었는데 그의 매력은 나이 들수록 더 짙어지는 듯하다. 토마스 빈터베르크 감독이 매즈 미켈슨의 매력 포인트를 잘 알고 끌어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마르틴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무료(無聊)하고 우울하다. 야간 근무를 하던 아내와도 권태로운 관계를 이어가고 아이들에게도 의욕적으로 대하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에 재직 중인 동료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와 마르틴은, 니콜라이 40살 생일 축하 식사를 가지게 되는데, 이 세명 또한 마르틴처럼 삶에 찌들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서 니콜라이는 “인간에게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시키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후 마르틴은 이것을 수업 시간에 시도해 본다. 이것을 안 다른 세명의 동료들도,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말자.라는 조건하에 동참하게 된다. 이 실험은 네 명의 학교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게 되고, 이전보다는 좀 희망적이며 행복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도 뭔가 부족함을 느낀 마르틴은 각자에게 맡는 알코올 농도를 달리해서 마셔보고자 제안한다.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들으며 감상에 빠진 네 명은 각자 다양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해 자신들 삶의 질을 끌어올려 보기 위한 2단계 실험에 돌입한다. 주량은 더 늘어나고 생활에 활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더 나아가 갈 때까지 가보자는 술에 대한 욕망에 빠져들고 결국 과한 술은 자신들의 삶을 파괴시킨다는 결론을 얻고 허탈감에 빠져 술 실험을 종료시킨다. 과한 알코올 섭취는 마르틴 부부의 관계를 다시 더 악화시키고, 외롭게 늙은 개와 살던 톰뮈는 술 중독에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게 된다.

톰뮈의 장례를 치른 뒤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이 배경 음악으로 나오며 그의 죽음을 애도라는 장면도 좋았지만, 마지막 씬의 배경 음악인 “What a Life"에 맞춰 학생들과 주인공 마르틴이 자유롭게 춤추는 장면은 세계 영화사에 남을 엔딩씬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장면만 돌려 보고 또 돌려 봐도 배우 매즈 미켈슨의 춤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동시에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강한 매력이 있다.


마르틴은 과거에 춤 잘 추고 잘 나가던 연구원이었지만, 삶에 지치고 점점 변해간다. 이런 남편 마르틴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낀 그의 부인 아니카는 바람을 피운다. 하지만 마르틴은 아니카에게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해 속앓이를 하며 살아간다. 톰뮈는 이혼하고 병든 개와 외롭게 살아가고 페테르는 사귀는 여자들과 늘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해 아직까지 외로운 독신이다. 니콜라이는 돈 많은 부인과 살지만 그녀의 눈치를 보고 어린아이들 셋을  돌보다 보니 정신이 없다. 네 명의 삶은 불완전하다. 한마디로 그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네 명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술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과 막연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술로 자신들의 현재 삶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과도한 술을 경계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주지만, 과연 우리가 찾고자 하는 행복과 그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갈구하고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져준다. 술뿐만 아니라 담배 커피 더 나아가 돈이나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이 술의 양을 조절하듯 적절하게 유지하고 적당하게 만족할 수 있다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보다 모자란 것이 낫다 “라는 말이 있다. 부족함을 과도하게 채우려는 욕망에 빠지면, 파괴를 부르고, 그 욕망은 해체되게 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였던 것이다. 과도한 불러일으킴은 뭉침을 낳고 그것이 강하고 세지면 결국 부서져서 흩어지는 것이 우주의 섭리라는 것이다.

행복은 어디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의 삶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이것을 아는 현명함은 사실 술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더 잘 깨닫게 된다. 톰뮈의 죽음은  마르틴 부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해 주는 원동력이 되고 톰뮈가 사랑을 준 어린 제자는 톰뮈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할 줄 알고 용기를 가진 소년으로 거듭난다. 독신인 페테르는 여자 친구가 생기고 니콜라이는 자신의 아이가 오줌 싸는 것을 멈췄다고 좋아한다. 이 소소함이 바로 행복이었다는 것을 톰뮈의 죽음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술 같은 쾌락의 도구가 삶의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의 유한한 삶을 깨달을 때 삶의 의지를 가지게 되고, 인간의 죽음을 기억할 때만이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진심으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늘 함께 하고 있다. 너무 소박하게 느껴져 하찮게 여기고,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함을 알아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더 멋진 파랑새를 잡기 위해 애쓰고 고전분투 하다 지치고 그런 삶을 반복하며 살아가지만, 파랑새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여기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늘 깨어있자. 그리고 중용의 감각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도록 하자.

좋은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던 주말 밤의 여유가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 토마스 빈터베르크 감독 매즈 미켈슨이 함께 작업한 영화 <더 헌트>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