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feat. 데이비드 봄의 "On Dialogue")

Christi-Moon 2024. 5. 19. 15:18

"인간은 생각할 때 자유롭게 생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사용하여 판에 박힌 틀과 고정틀에 들어있는 생각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에 나오는 토마스 만의 통찰이다. 이 통찰은 디팩 초프라, 데이비드 봄, 크리슈나무르티가 가장 핵심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이 알고 보면 사실이 아니고 이 사실이야 말로 사실을 방해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감심을 가져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영화 <괴물>에서 괴물은 바로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로 보는 편견과 선입관이 얼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실체가  없어 파괴력 강한 괴물임을 미나토와 요리, 두 어린 소년의 순수하고 마음 아픈 사랑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미카엘 하네케만큼 내가 존경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와세다 대학 문예학과를 나온 그는 자신이 감독한 작품에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이 <괴물>은 시나리오 작가인 사카모토 유지와 각본을 협업한 작품이라고 한다. 일본 국민 여배우 키키 키린과 작업을 많이 했으며 고레에다는 <어느 가족>으로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는 가족과 관련된 스토리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이 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마냥 무겁지는 않다. 따뜻함과 희망, 인간미가 이야기 안에 녹아있어 마음에 온기를 전해준다. 그의 연출 특징 중 하나가 따스한 영상을 구성하는 장면마다, 작품 주제와 소재에 관통하는 상징적 묘사를 뛰어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화 <괴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작품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작년에 사망한 일본의 세계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괴물> 엔딩 음악은 고레에다가 추구하는 영화세계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감동이 배가 되었다.
 
싱글맘인 사오리는 동네 걸스바 건물에 불이 나는 것을 보면서 아들 미나토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미나토의 돼지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들이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사오리는 느끼기 시작한다. 미나토는 자신의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어느 날 사오리는 밤 숲 속을 돌아다니는 미나토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급기야 미나토는 달리던 차에 뛰어내리는 등 알 수 없는 행동까지 한다. 이런 아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이 모든 행동이 학교 담임인 호리 선생에게 문제가 있다 판단한 사오리는 학교에 찾아가 항의한다. 이 일로 호리 선생은 교직을 박탈당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억울한 심정으로 괴로워하던 호리 선생이, 학교에서 가져온 짐에 미나토와 한 반이었던 요리가 쓴 글을 읽게 되면서 요리와 미나토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선생으로서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 호리는 미나토 집에 찾아가 미나토의 방 창문 밖에서 미나토에 대한 잘못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 시간 미나토와 요리는 둘만의 놀이 공간이던  숲 속 버려진 기차 안에  있었다. 호리 선생에게 아들과 그의 친구 요리와의 관계를 전해 들은 사오리는 호리 선생과 함께 산사태가 난 두 아이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날은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나고 요리와 미나토가 있던 폐 기차는 뒤집힌다. 뒤집힌 기차에서 빠져나온 요리와 미나토는 수로를 통해 밝은 숲으로 나가게 된다. 빛나는 햇살이 가득한 숲 속, 그 둘은 신나서 소리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괴물의 미나토와 요리


이 영화의 백미는 두 아역배우들의 명 연기를 보는 재미일 것이다. 이 둘의 사랑이 동성애에 대한 이슈가 될 수 있기도 그 이슈 자체도 실체 없는 괴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성애가 잘못됐다는 폐쇄적인 사고의 틀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결국 그것은 어른들의 삶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규율과 틀은 폭력이고 억압이며 아이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괴물'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다시 또 다른 모습의 괴물이 되어 어른들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호리의 여자 친구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본 호리의 반 아이들은 호리가 걸스바에 다닌다고 소문을 내고 결국 이것도 선생인 호리의 해고와 관련을 맺게 된다.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가 성장해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아들 미나토에게 주입하려 하고, 아들의 반항적인 행동을 엄마 사오리는 그 책임을 학교 탓으로 돌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사오리의 항의에 학교 당국은 입막음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괴물 같은 행동을 한다. 결국 어린 요리와 미나토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 의도하지 않게 어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괴물이 된다. 즉 등장인물 모두가 괴물이다. 자신은 '괴물'이 아니라는 '오만'에 빠져있을 수 있지만 그 '오만'은 다름 아닌 '편견'과 '사회가 정해 놓은 틀'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사고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진짜 '괴물'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진실'인가를 말하는 경우 그들은 사실 상대의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진실을 보는 남다른 특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봄 <대화란 무엇인가> 중에서-

 
 
아이들이 그 나이에 얼마나 창의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영화 속 어른들은 무지했다. 데이비드 봄의 <대화에 관하여>에서 '사실'이라 인지하고 겉으로 드러난 표현이 나중에 알고 보면 사실이나 진실과는 다르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대화를 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데이비드 봄은 대화할 때 '성찰지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상에는 감춰진 질서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된다고 했다. 자신의 의견 고수가 자신의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믿지만 결국 자신이 쏜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구조로 짜여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괴물이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살아있다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미나토가 말한다. "괴물이 누구게..."라고. 외부에 있는 괴물도 두려움과 공포에 대상이지만 실재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 보이는 괴물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고 또 그런 괴물이 내 안에도 있을 수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본의 어느 한 마을의 어린 소년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전해주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레에다의 칸느 수상작 <어느 가족>에서도 어린 소년 쇼타는 암울하고 상황을, 어린 동생 유리를 위해 어른들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기 있게 헤쳐나간다. <괴물>에서도 어린 미나토는 교장선생님에게 자신의 잘못과 비밀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용기 내어 고백한다. 학교에서 억울하게 쫓겨나고 급기야 실연까지 당한 호리 선생은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 요리의 글을 통해 선생으로서 과오를 깨닫고 미나토에게 잘못을  구하는 용기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이 실 낫 같은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괴물>은 그의 작품들 중, 나에게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 중 하나로 남을 만큼 좋았다. 감사하다. 수준 높은 영화를 감상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