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칸 황금 종려상을 두 번 이상 받은 감독들 작품 위주로 골라 보고 있다. <더 차일드>는 벨기에 출신 장 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뤽 다르덴(Luc Dardenne) 형제가 감독한 영화이다. 2006년 황금 종려상을 받은 이 작품은 본인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하였다. 미카엘 하네케, 루벤 외스틀룬드, 켄 로치, 토마스 빈텐베르그, 고레에다 히로까즈, 같은 감독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에, 작가로서 세상을 바로 보는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 그리고 이것을 시각화시켜 살아있는 인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품은 믿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시나리오 속 장면은 아니지만 동일한 쟁점을 지닌 장면들로 그렇게 연기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가 소니아가 될지 감을 잡기 시작하죠. 마침내 두 명이 남게 되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합니다... 최후의 한 명과 함께 한 버전과 다른 버전을 시도하고 이런 식으로 해봐라, 이렇게 하는 대신 저렇게 해봐라, 하고 시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반응을 살피죠. 그다음에 다양한 의상을 시험해 봅니다. 그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기 위해 바지를 입어봐라, 치마를 입어봐라.. 그다음에 헤어스타일고 테스트합니다..."아 그녀는 이제 소니아가 되었구나. 정말로 그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그녀만의 존재감을 갖게 되었구나"라고 느끼며 말하게 되는 것과 같죠. 이것은 언제나 아주 모호한 작업이기 때문에, 캐스팅할 배우를 만나기 전에 미리 등장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갖지 않으려고 미리 생각을 차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처음엔 소니아가 금발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저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게 한 거죠.
뤽 다르덴 감독과 프랑스 영화 잡지 기자인 미셸 시망이 <더 차일드>로 인터뷰한 내용으로 여주인공 소니아를 뽑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감독이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미리 그려놓고 배우를 뽑는 제작 방식이 통상적이라 생각했는데, 이미지를 먼저 정해놓지 않고, 등장인물을 구현하는데, 여러 가능성을 오픈시켜, 캐스팅하는 과정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배우가 맡은 인물 구축을 위해, 철저하고 세심하게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배우가 앵무새처럼 대사 위주로 연기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몸을 먼저 써서 인물의 감각을 찾아가는 작업 방법이 액팅 코치인 나로서는 설득력 있게 들렸다.
인물이 대사가 있는 연기를 할 때 그 인물의 대화와 목소리가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대사 연기를 하는 경우,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개입되어 말하는, 즉 “목소리가 몸 안에 남아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신체 감각을 키우면서, 맡은 역할을 차츰 만들어 가야만 한다. 배우가 대사를 암기한 수준의 연기는 인물 창조의 30%도 채우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배우가 그 역할을 체화시키는 과정에 보다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우리나라 메이킹 영상들을 보면 책상에 앉아 리딩부터 시작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씨네 21에 실린 다르덴 감독의 디렉팅 방식을 우리나라 감독들도 배워야 되지 않을까. 영화는 감독 예술이기에 배우들 연기를 감독이 컨트롤하지 못하면 좋은 작품을 완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르덴 형제의 독특한 연출방식의 예가 되는 것은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육체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업은 먼저 카메라맨 없이 시작되어, 많은 리허설로 동선을 구성해 보고, 또 몇 가지 버전으로 바꿔본다. 이때는 대사에 대한 부담도 주지 않는다. 수차례 반복한 뒤 카메라는 돌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연습한 걸 정확하게 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의 움직임과 디테일들이 살아난다. 그때에 가서야 대사를 시작하고 조정해 나간다. 다르덴 형제는 배우가 육체로 말을 건네기를 원한다. 카메라는 그 살아 있는 ‘물질성’을 담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식의 ‘리얼리즘’이며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넘어오면서 발전되는 그들만의 요소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보이는 주인공 브뤼노는 지나가는 차와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자신보다 어린 소년들을 이용해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간다. 브뤼노와 그의 여자 친구 소니아의 사이에서 지미라는 아들이 태어나는데, 소니아 와는 다르게 자신이 부모가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아버지로서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는 브뤼노는 브로커를 통해 소니아 몰래 아들을 입양시키고 돈을 벌려고 한다. 이 돈을 아무런 거림 낌 없이 소니아에게 알리는데, 쇼크를 받은 그녀는 기절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임을 깨우친 브뤼노는 아기를 되찾아 오기는 했지만, 소니아는 브뤼노를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브뤼노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입양 브로커들의 협박을 받아 가진 돈도 뺏기고, 소니아의 집에서 내쫓긴 브뤼노는 오갈 데가 없어지자, 굶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결국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절도 파트너인 어린 스티브와 소매치기를 하다가, 스티브만 경찰에 붙잡히자,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를 하고 브뤼노는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 감옥으로 면회온 소니아에게, 브뤼노는 자신의 아들 지미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며, 두 연인은 이제껏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구원자인 여주인공 소니아처럼, 이 영화 속 소니아 역시 구원의 손길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브뤼노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아준다.
2주 전 블로그에 올린, 루벤 외스틀룬드가 감독한 <더 스퀘어>도 그랬지만, 이 동북 유럽의 영화 스타일이 상당히 다큐적 요소가 강하다. 이런 점이 작품 속 몰입도를 높이게 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에 집중도는 배가된다. 관람자가 배우의 연기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등장인물이 살아 숨 쉬고 존재하고 있기에, 그 인물 자체로 느껴진다.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 라는 평조차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작품 속 모든 등장인물의 연기가 조화롭고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영화 안에 녹아있다. 어느 누구도 연기의 흠을 잡기 어렵고, 반대로 누구 하나 연기를 잘한다고 집어내기도 쉽지 않다.
<더 차일드>의 스토리는 특별한 극적 반전이나 사건이 있지 않다. 관객들에게 감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감독은 애쓰지 않으며,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에서 작품을 따라가 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흐름과 호흡을 통한 긴장감은 작지 않고 마지막 두 연인의 폭풍 눈물로, 이제껏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감정을 그들과 함께 쏟아내어, 관람자에게 카타르시스까지 경험하는 기염을 토한다.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저희가 촬영하는 인물들이 속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존재여야 하고, 살아있는 실체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 있으려면 개인의 두께, 인간의 두께를 지녀야 하고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도 져야 하죠... 저희는 어떤 힘든 일이 일어나더라도 인물들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했고, 관객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내면적 삶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런 반응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어쨌든 저희는 촬영하는 동안 매일 그 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더 차일드>를 비롯해, <로제타>,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면서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극적인 사건이나 사회 배경을 가시화시키지 않는다. 또 세상을 비판하는 시각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외부로부터 고립된 한 인간의 내면에 침투해 들어가, 한 인물의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말로써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느껴진다. 인물이 주는 느낌을 관람자인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신반의하기도 하지만 그런 모호한 느낌이 인간의 감정 상태를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로 작품 초반 소니아가 브뤼노에게 장난 거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때 애기 아빠로서 브뤼노에 대한 섭섭한 소니아의 감정이 느껴진다. 다르덴 감독의 특별한 면이 바로 이거다. 말이 아니라 인물의 행동을 통해 복잡한 인간 내면의 심리를 그려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 <로제타> 속 주인공 모두 돈의 결핍으로 고통이 시작되지만 <더 차일드>처럼 돈에 대한 직접적인 불안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해결하려는 한 인간의 행동과 그 행동 속에 잘 드러나지 않은 복잡 미묘한 감정 상태의 표현이 탁월하다. 이런 점이 다르덴 감독들의 영화 특징인 것 같다.
한 개인의 내면 의지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고 외부와 연결되면서, 내면의 성장이 확장되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 관객은 집중하게 된다.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은 결국 외부적 요인 없이 해결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외부를 차단하게 만드는 내면의 고립은, 역으로 외부와의 끈을 잡을 때 해소되고 그때 비로소 인간다운 성장점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외부와 손을 잡을 때 변화가 일어나기에, 나와 외부의 분리는 무의미하다. 외적인 것과 내면이 결국 하나로 통합될 때, 삶 속 실낱 같은 희망의 빛이 찾아온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브뤼노는 감옥으로 찾아온 소니아에게 제일 먼저 아들 지미의 안부를 묻는다. 어린 소년에서 아버지로 성장한 진통의 변화를 에둘러 전해 준 것이다. 이 역시 대사로 인간의 마음 상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한 변혁의 시작점을 알려주는 지점이다. 인간 내면의 혁명을 이 대사 하나로 간접적으로 전달해 준 것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다르덴 형제들의 역량은 1시간 30분이 안 되는 스토리 속에 사회 시스템에서 소외된 인간들의 삶을 빛나고 값진 인물로 만들어 관람자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준다.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들이며, 다르덴 같은 예술가들이 지금 이 세상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 그들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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