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더 차일드>에 관한 글을 올리며 다르덴 형제들이 감독하고 각본을 쓴 영화를 모두 보고 글로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르덴 감독들의 영화 대부분은 길지 않고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 지속적으로 그들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특징이 있는데, 주인공은 영화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 위기의 해소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결론은 아니다.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품고 있다. 그 희망의 빛이 강렬하지 않지만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절망의 늪을 앞으로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신뢰를 관객에게 심어준다. 주인공들은 건널목 표시가 없는 차도를 늘 건너 다니는데 세상이, 혹은 신이 지켜주지 못하는 곳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삶이 그러하듯, 아슬아슬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전해준다. 무엇보다 사회에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물들이지만 '선'함을 잃지 않는다. 고립된 상황에 놓여,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선'함을 놔버리지는 않는다. 그 선한 빛이 우리를 위로해 주고 감싸주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힘이고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희 경우에는... 있어서는 안 될 이런 깨어진 관계들에서부터 시작해 인간의 잠재력을 탐구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없다면 저희는 작업하기 어려울 거예요. 극단적인 단절의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런 상황은 사랑으로 누군가를 구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탐구할 수 있게 해 주죠.
-<다르덴 형제, 인간을 존중하는 리얼리즘 마음산책>
아버지로부터 보육원에 맡겨진 소년 시릴은 아버지와 연락이 끊겨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급기야 아버지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몰래 탈출하고 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시릴 모르게 이사 가버리고 없다. 그 아버지가 사는 아래층 병원에서 만난 미용사 사만나에게 자신의 위탁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시릴은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사만나는 그렇게 애타게 찾던 시릴의 자전거를 찾아주고 핸드폰을 사준다 그리고 시릴의 아버지가 사는 곳을 찾아 함께 시릴의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시릴에게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그것으로 그는 크게 상처받는다. 이런 시릴을 사만다는 엄마 못지않게 따뜻하게 감싸주지만 시릴은 동네 불량배와 친해지고 그에게서 도둑질하는 법을 배운다. 사만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릴은 사만다의 집에서 밤에 나와 폭행과 절도 행각을 벌인다. 훔친 돈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주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시릴을 쫓아내 버린다. 그런데 다행히 사만다는 시릴을 사랑으로 받아주고, 경찰에 불려 간 시릴은 사만다의 도움으로 절도에 대한 합의서를 쓰고 풀려난다. 시릴은 사만다에게 깊이 사과하고 그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심부름을 하던 시릴은 자신이 폭행한 서점 주인 아들에게 돌을 맞는다. 시릴은 그 돌에 맞아 기절하지만 다시 깨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사만다 집으로 향한다.
영화의 내용은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마음 좋은 아줌마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스토리이다. 그런데 이 안에 한 소년의 고독과 고통, 그리고 버림받아 상처 투성인 이 소년과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미용사 사만나의 엄마 같은 인내심과 사랑이, 깊은 울림으로 전해져 가슴을 뜨겁게 달궈준다. 눈물을 쥐어짜게 만드는 슬픈 장면은 없지만 그 슬픔의 크기는 작지 않다. 너무 아파 표현조차 어렵다고 할까. 영화는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는 여백미가 있고 사랑에 대한 섬세함이 천천히 전해져 여운이 길게 남는다.
사만다의 과거가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단지 친절한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어린 시릴은 보육원 직원들에게 쫓기다가 대기실에서 사만다의 품에 뛰어들어 그녀를 신체적으로 꽉 움켜잡습니다. 아이는 그녀를 넘어뜨리고, 그녀는 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 의미로 그대로 없어지게 되죠. 이 충격으로 인해 그녀는 이 소년, 자신에게 어떤 흔적을 남긴 소년의 혼란에 사로잡힌 것을 느끼지만 그의 구조 작업에 곧 봐로 동참하지는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죠.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고 그와의 사이에 일련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희의 이야기에 그 이상은 필요 없었어요.
시릴의 아버지나 시릴에게 절도를 강요한 청년 웨스는 영화에서 나쁜 인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지닌 최소한 선을 간직하고 있다. 시실을 내친 아버지는 요리할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하면서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되길 원할 정도로 삶이 가볍지 않아 보인다. 또 그 음악 소리에 아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음 하는 바람도 있지 않았나 싶다. 아들이 자신을 찾지 않았음 하는 거부의 소리를 록 음악이 대신 묘사해 주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아들 부양에 대한 책임감을 털어버리길 원하고, 심지어 아들을 버리려고 마음먹었지만 아들 시릴의 간식을 챙겨주고 시릴이 담을 넘을 때 다치치 않았는지 물어봐주는 등, 부성애가 완전히 결여되어있지 않은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감독은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조금은 남겨 두었던 것이다. 시실의 아버지가 틀어놓은 시끄러운 록 음악과 아들을 대하는 소심한 행동들이 대비가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아픈 사랑으로 느끼게 만드는 힘을 실어준다. 시릴을 나쁜 길로 빠지게 하는 불량 청소년 웨스도 아픈 할머니와 함께 산다. 그런 할머니를 돌보지 않고 웨스의 할아버지는 부재중이다. 웨스도 어린 시절 부모 돌봄 없이 시릴과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다. 그가 아르바이트했던 서점의 주인과 그의 아들이 서로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맺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모여 그가 시릴로 하여금 범법 행위를 저지르도록 유혹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웨스를 무작정 악한 인물로 내몰기에 마음이 쓰였다. 연민을 가지고 모든 인간을 대해야 되는 이유가 이런데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시릴 역을 맡은 토마스 도레의 에너지 넘치고 아버지의 부재로 불안정해 보이는 연기는 놀랄 정도로 섬세하다. 곧 쓰러져 절망의 구렁텅이게 빠져 들 것 같지만 그는 강인하다. 다리 부러진 새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쉽게 동정을 관람자에게 그 감정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시릴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참담함이란 이룰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린애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가 전해져 가슴 아프다는 느낌이, 묘하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느린 속도로 전해져 온다. 그래서 더 길게 여운이 남고 작품이 심플하지만 깊이가 크게 느껴지나 본다. 담담하게 그 소년을 지켜 봐주는 사만다 역할을 맡은 세실 드 프랑스의 차분한 연기는 유명한 여배우의 화려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강렬한 모성 본능으로 관객을 자극시켜 강인한 엄마의 면모를 보여주기보다는 한 인간의 따뜻한 정이 소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모성은 위대하다. 시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작지 않음을 알게 되고, 시릴이 그녀의 품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가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감정 에너지 소모가 영화 볼 때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야, 그 감정의 여백을 채워 넣게 만든다. 그런 특징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릴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이야기가 시릴 입장에서 작은 일이 아닌데, 그의 입장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면서 오는 아픔에 천천히 가슴이 죄여 온다. 그러나 그 아픔은 우리에게 위로를 상실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절망만을 경험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살아봄직한 온기 있는 세상임에 안도하게 된다. 인류가 공존해서 살아가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사만다 같은 사람들이, 다르덴 같은 인간적인 예술가가 이웃에 있어 우리 삶이, 사회가, 세상이 안전한 것이 아닐까.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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