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영화 <더 스퀘어> (feat. 관계의 미학)

Christi-Moon 2024. 6. 30. 15:58

스웨덴 출신 루벤 외스틀룬드는 2017년 <더 스퀘어>, 2022년 <슬픔의 삼각형>으로 황금 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다. 이 두 작품 모두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로, <더 스퀘어>를 보고 난 뒤, 흥미가 생겨 <슬픔의 삼각형>도 챙겨 보았다. 일단 두 영화의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뛰어나 다큐보다 더 다큐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지역할을 맡은 단역부터,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작품의 몰입도를 상승시켰다. 이렇게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녹아,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감독의  뛰어난 역량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 크리스티안이 작품 "더 스퀘어' 전시 오픈 관련 연설 중에, 니콜라 부리오의 저서 <관계의 미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전시라고, 미술관에 모인 청중들에게 이야기한다. 니콜라 부리오는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프랑스 출신 수석 큐레이터로, 그의 저서 <관계의 미학>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크리스티안은 유럽의 세계적인 미술관인 X Royal Museum에서 근무하는 나름 부와 명성을 지닌 수석 큐레이터이다. 미술관에서 전시될 “더 스퀘어”라는 작품 준비로 크리스티안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침 출근길, 길에서 도움을 요청한 여자를 도와주려다 도리어 크리스티안 자신의 지갑과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하게 된다. 그날은 마침 '더 스퀘어' 전시 오픈식에 크리스티안의 연설이 있던 날이었다. 작품 "더 스퀘어" 안의 공간이 "신뢰와 배려를 하는 성역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 등등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라고 오픈식에 참여한 VIP 손님들에게 설명한 뒤, 핸드폰을 찾기 위해 자신의 직무실로 급하게 돌아온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한 장소는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건물이었고 직원의 아이디어로 건물 입주자들에게 협박 편지를 쓴 뒤, 건물 입주자들 우편함에 그 편지를 넣어둔다. 다행히 휴대폰과 지갑이 고스란히 그의 손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협박 편지를 받은 그 건물에 사는 이민자 소년이, 자신의 부모로부터 소매치기라고 오해받았다며, 해명하라고 크리스티안을 쫓아다니며 난처하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하룻밤 사랑을 나눈 기자도 그가 근무하는 미술관으로 와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 미술관 직원들도 그를 협조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제작한  미술관 유튜브에 올라온 '더 스퀘어' 티저 영상 논란으로 크리스티안은 큐레이터 자리를 사임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를 어느 정도 반성한 크리스티안은  소매치기 누명의 억울함을 호소한 소년에게 사과하려고 가지만 그 소년은 이미 이사 간 후였다. 
 
니부코 부리오가 쓴 <관계의 미학>에 이 영화가 말하려고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라 여겨져, 이 책을 찾아보니 이미 절판되어 출간되지 않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봤을 때 처음 든 생각 또한 ”스퀘어“에 담겨있는 본질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 작용의 측면을 감독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관계란 다름 아닌 '도움(help)'과 '배려'이다. 이 영화 속 크리스티안은 "더 스퀘어" 전시 오프닝 연설에 "더 스퀘어" 전시 의도가 ’ 신뢰와 배려'와 '보살펴야 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공간으로 작품을 설명한다. 
 

친애하는 내빈 여러분, 저희는 아르헨티나 출신 예술가이자 사회학자인 롤라 아리아스의 작품 더 스퀘어를 선보입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 미학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공공장소에 있죠. 오덴플란 같은 곳을 떠올리셔도 되고 도시의 다른 넓은 광장도 괜찮습니다. 머릿속에 그리셨나요? 여느 때처럼 평범하고 다들 바삐 움직이죠. 발밑을 내려다보니 정사각형 안에 있습니다. 가로세로가 4미터인 반듯한 정사각형이 더 스퀘어가 가진 물리적 형태입니다. 속이 채워지길 기다리는 빈 구조물 같달까요. 롤라 아리아스는 이를 횡단보도에 비유합니다. 이 횡단보도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살펴야 한다는 명확한 약속을 맺게 하죠. 횡단보도와 비슷하게 더 스퀘어로 서로 보살펴야 한단 약속이 맺어집니다. 서로 도와야 해요. 이 공간 안에 들어와 도움을 요청하면 옆을 지나가는 누구나 도울 의무가 있죠. "밥을 사주실래요?" "수영 가르쳐주실래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대화할 사람이 없어요" '저를 위해 30분만 내주실래요?"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하실 주도 있겠죠. 심지어 이상적이라고요.

 
크리스티안이 '신뢰와 배려를 하는 성역'의 상징으로 전시될 "더 스퀘어"는 작품 의도가 참으로 이상적이고 따뜻하다. 누구든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왔을 때 서로 보살펴줄 의무를 약속하는 결속의 의미로 더 스퀘어를 묘사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크리스티안은 미술관 운영에 절대적으로 큰 기부금이 들어와야 좋은 작품을 미술관에서 구매해 전시할 수 있고, 그 작품을  많은 대중에게 보여주고 함께 누릴 수 있다고 이 전시 취지를 인터뷰 기자 앤에게 설명한다.

신뢰와 배려는 기득권이  더 가져야 할 권리이며 의무라는 생각을 기득권자들이 실제로 더 고민하지 않을까. 기득권들은 약자들에게 가지는 동정심과 인간 존중에서 나오는 신뢰와 배려를 착각하고 혼동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것이 곧 자만이라는 것을 크리스티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계층인 크리스티안도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오히려 배려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도움과 배려는 사회 약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 영화 속에서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리스티안은 출근길 도움을 요청한 여성에게 도움 주지만, 정작 자신이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하고, 행인들에게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산 물건을, 지나가는 백화점 고객들에게 잠깐 지켜봐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도움 받지 못한다. 결국 현금이 없어 돈을 주지 못한 거지에게 도움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 분실한 핸드폰을 찾는 것도 크리스티안의 부하 직원이 도와주게 된다.

*The Square


우리가 살아보면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혀 내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타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당황하기도 한다. 또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갑과 을의 관계도 뒤 바뀐다. 크리스티안처럼 말이다. 이 예측하기 어려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어쩌면 상호 연관되어 있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관계의 키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호작용으로 연관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고가 아니다.

극 중 ”신뢰와 배역의 성역“의 상징인 “더 스퀘어" 전시를 준비하면서 크리스티안은 나름 선한 삶을 실천해야 된다는 의식을 더 견고하게 가졌을 것이다. 그러기에 바쁜 출근길에도 위급한 처지에 놓인 여성을 도우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대로 일이 일어나 핸드폰을 분실한 때부터 그의 일상은 꼬이게 된다. 크리스티안이 하룻밤 즐긴 기자 앤과의 관계도 "더 스퀘어"의 전시로 인한 인터뷰에서 시작되어 하룻밤 관계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관계가 돼버린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인한 크리스티안의 협박 편지에 화가 난 이민자 소년으로 골치 아파하는 중에, 회의에 못 들어간 크리스티안은 그 회의 때 결정된 직원들의 과한 행동이 결국 자신의 직위를 내놓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오히려 타인의 신뢰와 배려를 받아야 할 입장에 크리스티안이 처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자리를 내려놓게 되는 상황이 되자 이 모든 일들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의  협박편지를 받아 곤란한 처지에 놓은 소년을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회적 지위와 최고의 지성을 지닌 수석 큐레이터의 좌충우돌하는 해프닝에서 우리는 신뢰와 배려는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각형은 "원(circle)"처럼 하나로 연결되지만, 뾰족한 점이 있다. 한 선을 기준으로 평행한 선이 마주 보고 있어 사각형에서 두 선은 마주 보지 않고 평행을 유지한다. 동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선과 평행하는 선이 접하는 다른 두 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주 보는 두 선 또한 서로 상호작용 힘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데이비드 봄이 말하는 ‘전체성’의 맥락에서 이 '스퀘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만물은 상호 연관되어 관계를 맺고 있음이 “circle"의 형태가 아니라 “스퀘어”처럼 이어져 관계 맺고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스퀘어”도 사실 “원”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고 전체성'의 견지에서, 신뢰와 배려는 누구나 가져야 할 덕목이며 의무인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예술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켜 예술작품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직업을 가졌다. 이것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식인, 기득권층 예술가들이 먼저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기 전에, 자신의 성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책무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배운 사람들이 해야 될 배려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기 수행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만약 크리스티안이 조그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핸드폰을 찾기 위해 협박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힘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무의식이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편지를 전달하기로 했던 부하직원의 거절로 크리스티안이 그것을 해야만 했을때 자신이 체면 깎기는 것은 생각하지만 그 전달 편지의 내용이 타인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한 배려는 하지 못한다. 자신의 핸드폰을 찾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타인의 배려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배려만 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미술 큐레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맹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배려하며 돕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어쩌면 배려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앤이 크리스티안이 사용한 콘돔을 앤 자신이 굳이 버리겠다고 고집한다. 휴지통에 버려주는 것이 배려라고 앤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크리스티안 입장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영화 속 X Royal Museum에서 전시된 "더 스퀘어"는 인간 삶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 제시해 주는 예술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수석 큐레이터는 “더 스퀘어” 의 예술작품의 진정한 의도와 자신의 삶을 연관시켜 실천하지 못했다. 자신의 직위를 내려놓은 후에야,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보려 주려 한 것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제작될 루벤 감독의 작품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