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록

로나의 침묵 (feat. 침묵 속 사랑)

Christi-Moon 2024. 8. 11. 08:54

벨기에 출신 쟝 피에르 다르덴, 뤽다르덴 형제가 감독한 <로나의 침묵>은 2008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작품으로 이제껏 본 영화 중 가장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마약을 끊기 위해 고통을 호소하는 마약 중독자 클로디가, 자신과 위장 결혼한 로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녀를 애타게 부르던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더 차일드>와 <자전거를 탄 소년>에 출연했던 제레미 레니에는 마약 중독자 역할을 위해 15kg 이상을 감량했다고 한다. 말이 쉽지 비만한 몸이 아닌 상태에서 10kg 이상 뺐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클로디를 연기한 제레미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고 순수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 그가 연기한 마약 중독자 역할과 어린양 같은 이미지가 맞물려 극 속 로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해 보였다.
 
마약 중독자 클로디와 위장 결혼한 알바니아 출신 로나는 쇼콜이라는 남자 친구와 벨기에 시민권을 얻은 뒤, 이곳에서 식당을 차리고 싶어 한다. 위장 결혼을 주선하는 범죄 조직 일원인 파비오는 로나를 통해 러시아인과 또 다른 위장 결혼을 주선해 큰 돈 벌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해 그는 로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조종하려 든다. 로나를 의지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클로디는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병원 입원까지 자처한다. 하지만 러시아인과의 위장 결혼을 서두르기 위해 파비오는 클로디를 죽일 계획이라는 사실을 안 로나는 클로디를 죽이지 말 것을 부탁하며, 자신이 클로디와의 이혼 절차를 보다 빨리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나는 클로디에게 연민의 정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클로디를 죽이지 않기 위해 이혼 절차를 서둘러야 하는 로나는 클로디에게 자신을 폭행해 달라고 부탁하고 이를 유도한다. 그러나 로나를 사랑하는 클로디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급해진 로나는 벽에 자신의 머리를 찧어 피를 낸 다음 클로디가 자신에게 가한 폭행 서류로 꾸민다. 이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고 클로디가 병원에서 퇴원한 날 마침 이혼하라는 판결문을 받는다. 이혼으로 떠날 로나와의 이별이 고통스러웠던 클로딘은 다시 마약을 손대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로나는 클로디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고 관계를 가진다. 이 사랑도 잠시 파비오는 클로디를 결굳 죽이고 이 때문에 로나는 큰 상실감을 얻어 상상 임신까지 하게 된다. 이런 그녀를 파비오는 알바니아에 돌려보내는 척하면서 그녀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이 위험으로부터 탈출한 로나는 숲 속 오두막에 머물며, 클로디 아기를 상상 임신한 그녀는 아기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하며  잠이 든다.

*영화 로나의 침묵


영화 속 이 둘의 사랑은 '침묵' 한다. 사랑과 관련해서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향한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영화를 보는 중에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다 보고 난 뒤 영화 속 장면을 되짚어 보면서 깨닫게 되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더 가슴 아프게 전해져 왔다. 이런 긴 여운은 다르덴의 영화의 모든 특징이며 굉장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그 둘의 행동으로 충분히 넘쳐 났다. 그런데 말로써 그 자극을 주지 않기 때문에 빨리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의지하고 위해 주려고 했는지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그 둘의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사랑이 있을까 싶다. 특히 클로디가 죽기 전  그가 탄 자전거를 쫓아 달려가는 로나와의  이별장면에서,  언어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로나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아직까지 어색하고 조금은 수줍어하는 클로디의 모습,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더 건강해지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클로디의 진실된 사랑, 클로디가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무의식에 그와 함께 하고 싶은 로나의 마음, 클로디처럼 로나도 나중에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복선, 동시에 클로디의 죽음에 따라가지 않고 세상에 던져져 다시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등... 한 장면 안에, 이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감독의 감각적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을까 싶다.
 

돈은 로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그녀가 사회적 지위를 바꾸고 꿈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됩니다. 또한 돈은 파비오에게 시시한 사기꾼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조금은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게 해 주고, 클로디에게는 마약을 더 쉽게 살 수 있게 해 주죠... 이처럼 돈은 영화의 주인공들 각각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데, 돈의 순환에는 두 가지 회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살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돈이 있고, 사람을 살 수 있는 훨씬 덜 정상적인 돈이 있어요... 저의 영화의 인물들 중 일부에게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게 해주는 돈도 있습니다. 클로디는 로나에게 돈을 건네주면서 커다란 신뢰를 보여줍니다. '나는 필요 없으니 당신이 맡아줘"라고 말하죠. 저희 영화에서 돈은 이런 기능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돈이 인간에 대한 통찰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과 관련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니라 사용 가능한 상품처럼 여겨집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가치를 매길 수 없고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돈으로, 하나의 값으로 평가되죠.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더 자주 사람들을 돈으로 환산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 둘의 사랑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돈에 대한 것임을 다르덴 형제의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돈이라는 소재는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는 큰 요인 중에 하나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위 인터뷰에서 로나에 대한 클로디의 신뢰와 사랑은 두 사람의 돈거래에서 엿볼 수 있다. 로나는 시민권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인물이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고 갈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클로디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로나 또한 클로디가 죽고 난 후에 장례식 비용을 스스로 치르려 하고 남겨진 클로디 돈을 가족에게 전달하려 한다. 아무리 어렵고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지만 인간 본성의 선함을 잃지 않고 있기에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 부부들 간에도 클로디와 로나처럼 행동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결혼해 본 부부들이라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돈거래로 두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은 인간 간의 신뢰와 사랑 표현을 넘어 고결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랑도 서로에게 예의를 갖출 때 신뢰가 쌓이고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르덴의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영화 속 인물들끼리 상대방의 이름을 부를 때, 뭔가 그 안에 많은 것이 실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차일드>에서 소니아는 아기 아빠인 브뤼노를 간절하게 부르고 <자전거를 탄 소년>에서도 사만다는 시릴을 부르며 그를 찾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영화 속 로나의 도움과 구원을 청하기 위한 애절한 클로디의 목소리는 심금을 울리면서 귀를 자극한다. 로나에게 도움받기 위해, 클로디가 로나를 부르는 소리는 마치 곤경에 빠진 어린 아들이 엄마를 찾는 느낌마저 들었다.

클로디가 죽고 그의 돈을 돌려주기 위해 찾아간 클로디의 엄마와 친형은 마약 중독과 절도범인 클로디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 보였다. 이때 죽은 클로디가 사람에 대한 정이 얼마나 그리웠을지 로나는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로나를 더욱더 불러 낸 것임을 말이다. 파비오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낌새를 알아채고 연인 관계였던 "쇼콜"을 차 안에서 부를 때, 로나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로나에게 간절한 도움을 요청했으나 매정하게 클로디 요청을 자신이 거절했던 때를 기억하며 로나가 마음 아파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함 스토리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여러 행동들을 통해 섬세하게 극을 구성해 쌓아 나가는 방식은, 인간에 대한 관찰과 성찰의 깊이가 남다르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르덴의 다른 영화를 볼 때도 이 견해는 약화되지 않는다. 어떻게 인물의 행동 안에서, 그토록 많은 것을 담아두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을 지녔을까. 두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것이라서 그럴까. 한 명은 철학을 전공했고 또 한 명은 실험 영화를 공부했다 한다. 정말 환상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그들이 인간을 향한 존중과 사랑이 작지 않기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발로 물든 이 두 형제의 순수한 마음이 전해져 내 마음까지 따스해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