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2006년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분쟁을 그린 영화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10년 뒤 다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은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로 지명되었으나 이를 고사했다고 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 세상을 바꾸고 싶은 그의 신념과 철학에 대한 확고함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주로 노동자 빈민 노숙자 등 사회에 소외된 이들이 나온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매체, SNS등 부와 명성을 거머쥔 사람들에게 주목하며 그들에게 관심일 쏠리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는 실제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미카엘 하네케, 다르데 형제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드러내어 세상을 제대로 볼수 있는 눈을 키워주게 만드는 거장이다. 몇 년 전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를 인상 깊게 봤는데 다시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을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처음 감상할 때 작품 속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가 다큐를 보는 듯한 착 느낌이 들어 초반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켄 로치 감독 역량의 작지 않음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아일랜드 어느 시골, 그 마을 청년들이 모여 게임, 헐링을 끝내고 데미언은 미하일의 집으로 가 그의 가족들과 자신이 짝사랑하는 시네드와 작별인사를 하고자 한다. 미하일 가족과 함께 런던의 일류병원에 의사로 취직한 데미언의 런던행을 축하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영국군인들이 들이닥쳐 총으로 위협하며 평화스러웠던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시네드의 동생 미하일은 영국군이 영어로 말하라는 명령에 불복하고 아일랜드어로 반항하자 죽임을 당한다. 미하일의 장례식을 치르고 이런 영국에 대항해서 맞서 싸우자는 친형 테드와 동료들의 권유를 뒤로한 채 데미언은 런던으로 떠날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기차역에서 영국군을 기차에 태우지 말라는 아이랜드 조합의 지시에 기차를 타고자 하는 영국군의 불만은 무력으로 이어진다. 이를 목도한 데미언은 독립 투쟁에 가담하기로 결정한다. 형 테드가 이끄는 IRA와 영국군의 투쟁은 보복과 살상으로 얼룩진다. 영국군의 협박에 못 이겨 영국군에 이실직고한 IRA 단원인 크리스 때문에 이들은 영국군에게 붙잡히고 마는데, 테드는 손톱이 다 뽑히는 고문을 당하고, 다행히 아일랜드계 영국군의 도움으로 이들 일부만 탈출하고 남은 나머지는 영국군에 의해서 처형당한다. 이 소식을 접한 테드는 자신들을 배반한 크리스를 처형하라고 지시하고, 어린 시절부터 형제 같은 사이였던 데미언은 걷잡을 수 없는 내적 갈등을 느끼면서 크리스를 총살한다. 그 뒤 IRA 내부에서도, 둘로 의견이 나누고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을 예고하게 된다. 데미언에게 형 테디는 자신에게 영웅적 존재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형제 사이도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얼마 후 영국과 아일랜드와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전쟁은 종식되지만 이것은 형식일 뿐, 결국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자치령에 예속된다는 협정이었다. IRA는 이 협정에 순응하자는 자유국 정부군 편에선 테드와 이제껏 투쟁한 결과를 이루어야 한다는 반대파 로리의 의견으로 나뉘고, 데미언은 형이 아닌 로리의 편에 서서 투쟁을 하게 된다. 이제는 아일랜드 안에서 내전이 시작되고 , 영국군과의 전쟁을 재현하게 되는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자유국 정부군의 무기고 습격을 하던 중 데미언은 정부군에 붙잡히고 이 군대의 수장인 형 테드는 데미언에게 동료들의 있는 곳을 말하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데미언은 "내가 크리스의 심장을 쐈어. 왜 그랬는지 알잖아"라는 말을 던지고, 죽음을 선택한다.
"조국이 정말 이렇게까지 행동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 크리스를 처형하라는 테디의 지시를 받고 데미언이 댄에게 한 말이다. 조국을 위해 인간끼리 살생하면서 애국심을 내세워, 국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현혹되어, 인간 존중을 저버리는 것은 애국심이라는 환상에 놀아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우주이다. 애국심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아닐까. 그 어떤 것도 인간 생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켄 로치 감독이 하고 싶은 메시지와 영화 속 주인공 데미언의 시각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데미언이 런던행을 포기한 궁극적인 이유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결심한 것이라고 판단되지 않는다. 이보다 사랑하는 시네드와 죽은 그녀의 동생, 자신을 살아생전에 존경했던 '미하일이 마음에 걸려' 데미언 자신에게 보장된 부와 성공을 뒤로하고 돌아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신의 고국 아일랜드를 위해서 투쟁에 가담하려는 결정은 부차적일 뿐이다. 런던행을 포기하고 돌아온 데미언에게 시네드는 미하일의 유품을 건네주는데, 이 유품을 데미안은 죽기 전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데미언은 크리스와 미하일, 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의무감 그리고 그밖에 자신과 끝까지 함께 했던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신의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다. 처형후 손에 꼭 쥐고 있던 미하일의 유품인 메달은 테드를 통해 다시 시네드에게 건네진다. 그 유품은 인간 존중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켄 로치 감독이 영국의 권력 남용과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이 영화를 제작했을까. 그것으로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거머쥐게 된 것일까? 영국 출신인 그가 영국을 비난하고 고발하기 위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세계적인 거장이라고 불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이 영국을 부정하고 아일랜드가 처한 힘든 상황을 대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켄 로치 감독은 국가애, 그 이상을 뛰어넘은 “인간“의 소중함을 강조한 것이다. 국가간의 분쟁과 전쟁을 통해, 희생당한 인간의 비극적 참상을 그려낸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은 그 비극적 현실을 섬세하게 묘사하게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 놓칠 수 있는 장면들이 초반에 있어 주의를 기울이고 봐야 한다. 헐링 게임 후 미하일의 집에 무장을 하고 들이닥친 영국군은 먼저 총을 쏘고 아일랜드 청년들을 위협한 것이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군은 동네 젊은이들에게 무리 지어 다니지 말라고 명령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런데 미하일의 애국심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저항한 것이다. 데미언의 말대로 영국군 앞에서, 영어로 말했으면 죽음까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국심이라는 환상에 미하일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것이다. 이것이 과연 지혜로운 행동일까. 데미언이 런던으로 떠나려던 기차역 분쟁도 마찬가지이다. 아일랜드 조합에서 영국군을 기차에 태우지 말라는 지시가 오히려 발단이 된 것이다. 갈등이 있는 두 집단을 결국 서로 붙여놓은 꼴이 된 아일랜드 조합의 지시는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처사다. 자신의 고향으로 가겠다는 영국군인들을 못 가게 막아 오히려 그 지역 내 분쟁을 부채질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국군은 기차에 올라타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에 화가 난 그들은 아일랜드인들에게 폭력적 태도를 취한다. 이것들이 아일랜드 내전으로 치닫고 결국 형제끼리 분열의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카인과 아벨의 저주가 일어난 것이다.
좋은 영화와 문학은 한 번 봐서는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모든 좋은 작품은 앞에서부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일어나기에 그 어떤 장면과 글의 내용도 소홀히 해서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한번 보고 그 작품을 파악해서 안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강자인 영국에 비해 약자인 아일래드에 마음이 쓰이기도 했지만 둘 다 똑같다는 영화 속 진실에, 나의 고정된 편견을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또 되었다. 그리고 켄 로치 감독이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 또 실감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거장의 혼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 존경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동참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켄 로치 감독의 다른 작품뿐만 아니라, 전에 봤던 두 작품도 다시 보고 블로그에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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