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불멸>3 (feat.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욕망)

Christi-Moon 2024. 9. 15. 05:36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 속 3부는 2부의 베니타의 이야기에 이어 로라가 주인공이다. 베티나처럼 로라 또한 자신의  불멸을 위해 투쟁한다. 2부에서 밀란 쿤데라가 큰 불멸이 있고 작은 불멸이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괴테를 향한 베티나의 불멸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이 오래도록 불멸하기를 원했다면, 로라는 자신 주위에 인물들에게 자신을 영원히 각인시키기 위한 불멸을 꿈꾼다. 접근이 다를 뿐 불멸하고자 하는 욕망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 불멸에 대한 욕망이, 뭔가 큰 것 남다른 것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특별한 사람만이 가지는 감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욕망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
 
소소한 것에서도 이 불멸에 대한 욕망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남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욕망, 이런 욕망을 들려다 보고 내가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독서를 하면서부터이다.  그전에는 이런 욕망을 이루기 위한 행동들이 작품 속 로라처럼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었다. 지금도 완전히 이것에 깨어있다 불 수 없지만, 이 <불멸>을 읽으면서 좀 더 나를 관찰하는 힘이 생겼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고, 나 자신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좀 더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하다.
 
불멸을 위한 욕망을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욕망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도의 영성 지도자 '삿구루'는 욕망을 이렇게 설명한다. "욕망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며 욕망 때문에 우리는 행동하게 돠고, 이 욕망은 언제든 따라다닌 다고 이야기한다. 욕망이 어떤 누구와 관련을 맺을 때 생긴다고 하지만, 욕망은 그런 것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쪽에서 저쪽 장소로, 이동하고자 하는 것도 일종의 욕망이며, 이 욕망이 문제시되는 이유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충족되지 않을 때,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불멸을 이루고자 하는 베티나와 로라의 욕망에 대해 어떤 점을 밀란 쿤데라가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베티나와 로라는 누구보다 외부와 관련을 맺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타인에게 자신의 특별함을 새기고 각인되어 영원히 남아 불멸하겠다는 이 의지를 달성하기 위해, 돌진한다. 또 형부이며 변호사인 폴, 연인인 앵커 베르나르, 베르나르의, 아버지 정치인 베르트랑, 모두 자신의 이름이 남들에게 특별하게 남기를 원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엄격히 구별하고 자신만이 특별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서로가 서로의 먹이 사슬이 되는 구조안에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 상대방을 희생시키고 자신도 희생당하면서, 자신의 이익이 타인의 불이익이 되고 자신의 불이익이 타인의 이익이 된다.

자신을 상대방의 머리와 마음에 심어주기 위한 불멸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제시되는 행동과 언어는 미화되고 이미지화되면서 그 욕망의 실체를 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게 만든다. 무의식이 쌓여 이루어진 욕망에 사로잡히면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차지한 아녜스와 닮고  싶은 무의식이 로라에게 잠재되어 있다. 이것이 그녀의 욕망에 씨앗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녜스는 남자 친구가 정원 쇠창상 문까지 데려다줄 때마다 그 몸짓을 되풀이했다... 로라는 그들이 나누는 입맞춤을 보고자 했고... 아녜스가 팔을 허공을 날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 후 관념은 언니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이미지와 결부된 채 영원히 남는다... 형부 폴을 보는 순간 로라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사람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였는가? 어쩌면 아녜스 바로 그녀가 아닐까?


언니를 닮고자 하는 욕망은 무의식 속 관념과 이미지로 남아 저장되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기회가 맞으면 결과로 발현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因果)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평생 지은 선과 악의 업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갚음을 받는 일”을 말하는데, 이 <불멸>의 핵심은 이 인과의 원리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특별함을 내세워야 먹고사는 직업이 있으니,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정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 대중을 자신이 지닌 특별한 사상체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전분투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특별함을 드러내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특별함이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의 동의를 얻고 타인을 눌러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생기는 형국이 된다. 정치인들 이면에 이들의 생각을 알리고 비판하고 때로는 싹을 없애는 것이 가능한  힘을 지닌 직종의 사람들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베르나르 기자다. 베르나르는 정치가들을 떨게 할 사설을 쓰길  꿈꾼다.

권력 또한 영속적이지 못하다. 먹이사슬처럼 연결되어 엎치락뒤치락 발생한다. 그래서 삶은 재현되고 반복하는 패턴을 가지게 되나 보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한다. 늘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리는 것이 삶이고 세상이다. 이게 진리고 우주 섭리다. 불멸 또한 이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불멸이 지닌 영속성 안에 변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멸하겠다는 욕망이 한 인간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임을 이 소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욕망을 향한 로라의 행동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고 한 의도는 아니지 싶다. 삿 구루가 말한 것처럼 이 욕망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고, 욕망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단 우리가 이 욕망이 어떤 것인지 그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닐 필요가 있다는 점에 밀란 쿤데라는 초점을 이 소설에서 맞추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견주어 내 욕망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 밀란 쿤데라의 혜안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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