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로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관한 글을 마무리할 것이다. 불멸을 2번 읽으면서 그의 초기작인 <농담>도 함께 읽었다. 많은 작가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밀란 쿤데라 역시 세상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농담> 이 세 작품에 관통하는 작가의 철학은 세상이 우리가 늘 보는 방식이 아닌, 또 다른 시각과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무거운 삶의 무게를 덜어, 삶의 균형 감각을 찾고, 진정한 삶의 행복을 얻기 위함인 듯하다. 제대로 된 행복을 이해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통찰을 힘을 우리에게 키워주기 위한 작가의 의지가 느껴져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불멸>의 6부 문자반에서 쿤데라는 삶은 재현된다고. 동일한 물결이 우리 삶을 관통한다는 것을 직시하라고 알려준다. 여기서 쿤데라가 말하는 관통은 바로 본질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것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삶의 혜안은 확장되고 삶을 함부로 살지 않게 될 것이다. 또 관통하는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 내면의 두려움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본질의 상징이 바로 "문자반"인 것이다. 이 문자반의 본질을 쿤데라는 이렇게 설파한다.
쾌종시계 문자반 위에서 바늘들은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점성가가 그리는 황도대 역시 문자반처럼 생겼다. 호로스코프(占星), 그것은 시계다. 점성감의 예언을 믿건 말건 호로스코프는 인생의 은유이며 인생이 은유로서 위대한 지혜를 내포한다... 인생이 바로 그렇다. 인생은 주인공이 장(章)과 장을 거듭하면서 공통분모라고는 없는 언제나 새로운 사건들을 느닷없이 겪는 그런 악당 소설과는 다르다. 인생은 음악가들이 변주가 있는 테마라 부르는 그런 작곡과 유사하다... 점성술은 '너는 절대 너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는 운명론을 가르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너의 인생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매 순간 한 단계의 종결과는 다른 단계의 시작을 가리킨다. 젊었을 때 시간을 원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을 일직선으로 이끄는 길처럼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단지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나중에 삶이 처음으로 여러 변주를 만들어 낼 때 이를 깨닫는다.
자신이 살았던 삶과는 무관하게 살아지지 않고 '새로운 삶'은 환상일 뿐이며, 이미 내가 살아온 삶의 변주 안에서 삶은 전개될 것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봄 여름 가을은 늘 변함없이 순환한다. 이 계절의 공간이 문자반과 그 본질의 궤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계절의 반복은 일직선이 아닌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 즉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탄생과 죽음만을 놓고 보면 일직선이라는 오유를 범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큰 시각에서 보면, 죽어야 탄생하는 것이므로 순환 반복이다. 이 순환의 상징인, '문자반'안에서 무수한 변주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정리해 보면, 삶이 순환한다는 밀란 쿤데라 말은 언어의 틀에서 사고할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사계절'의 틀을 이해하고 이 사계절이라는 공간(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공간이 늘 알던 '공간의 개념', 즉 한정 지어진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공간임을 이해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무한한 공간 안에서는, 수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세상의 시스템이 전부라고만 알았다면, 삶의 변주는 다채롭지 않게 될 것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한정 지어 사고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떄문이다. 자산의 삶을 위한 변주는 다양성의 가능성과 확장성이 잠재되어 있는데 말이다. 다만 우주의 섭리 안에서 움직인다는 본질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이것들을 이해하고 성찰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수많은 삶의 경험과 더불어 독서의 노력이 이것들을 알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늘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의 틀을 만들어 그 삶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사고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구속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정해준 범주 안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알게 모르게 내 안의 감옥을 만들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정해진 세상이 다인 것처럼 알고 살았다. 이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었음을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밀란 쿤데라의 관점에서, '세상'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있는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마치 세상이 이렇다고 정해져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백 명이 있다면 백개의 세상이, 억만 명이 있으면 억만 개의 세상이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세상은 외부에서 주어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해석되고 창조될 수 있는 매직이 있음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주어졌다고 착각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틀을 뛰어넘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한 내 안의 울림은 바로 이것이다.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자.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유념하며 타인을 바라보자. 언어에서 주는 개념의 틀에 속아 나를 구속하지 말자. 분리와 개별 분리의 환상을 버리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간과하지 말자. 감정이 있다 착각하고 그것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자. 집착하려는 에너지의 기운을 알아차려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의 근육을 키우자. 타인의 욕망이 내 욕망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타인의 인정욕구에 맞춰 서 살아가려 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쿤데라뿐만 아니라 위대한 영혼들이 지속적으로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답은 이것들 안에 담겨 있다. 실행의 몫이 나에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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