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은 전체 7부로 쓰여 있다. 1부 얼굴, 2부 불멸, 3부 투쟁, 4부 호모센티멘탈리스, 5부 우연, 6부 문자반, 7부 축복으로 나뉜다. 오늘 살펴볼 챕터는 2부 불멸이다. 1부가 아녜스의 이야기였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독일의 대문호 괴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괴테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몇 년 전에 읽었지만 최근 <파우스트>를 읽다가 내공이 아직 부족한지 끝까지 읽지 못했다. 괴테에 대한 밀란 쿤데라에 대한 견해가 <불멸>에 암시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 괴테에 대한 작품들을 읽고, 괴테에 대한 나 나름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소설을 읽을 때 참고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 소설 속 베티나는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를로테의 딸로 나온다. 베네타는 어린 시절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괴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렇게 자란 그녀가 불멸을 꿈꾸며, 괴테를 만난다. 괴테의 주위를 맴돌며 괴테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그와 관계를 유지한 뒤, 그를 등에 없고 자신의 글이 세상에 불멸하기를 원한다. 그녀 자신의 불멸을 위해 괴테뿐만 아니라 베토벤 등 당대 명성 있는 인물들과 관계 맺기를 원하고, 불멸하기 위해 그들을 이용한다. 이런 그녀의 내심을 파악한 괴테는 자신의 처세술로, 그녀와 거리를 두면서 그 관계를 지속한다. 이 처세술을 괴테가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스스로 불멸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생선 괴테는 문학가이자 사상가이며,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재상까지 지내며 정치를 하기도 한 당대 최고 부와 명예와 명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당연히 불멸은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사회생활 해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역할도 해내기 힘든 상황에서 정치까지 한 괴테였다면 그의 처세술과 스스로 조절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밀란 쿤데라는 주목한 것이다.
이 같은 괴테에게 더한 상대가 있었으니, 자신이 사랑했던 샤를로테의 딸 베티나이다. 괴테는 젊은 베티나에게 여자로서 매력도 느끼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명성에 해를 입지 않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괴테는 명예심이 강한 인물로 묘사된다. 밀란 쿤데라의 상상력으로만 치부하기에 그 당시 사회 안에서 괴테의 역할은 컸고 영향력은 상당했다. 밀란 쿤데라의 괴테 이야기가 픽션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괴테는 젊었을 때부터 이미 여자들의 표적이었으며, 그것이 베티나를 알기 사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에게는 약간의 충동만 받아도 즉각 시동이 걸리는 유혹자의 몸짓과 반사작용 체제가 완벽하게 배어 있었다. 그때까지는 분명히 얘기하지만, 베티나 앞에서 그 체제가 작동하지 못하게 하느라 적잖이 애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티나의 결혼 소식을 듣고 홀가분해진 괴테는 베테나에게 그녀의 가슴을 열어보라고 요구하고 "아무에게도 가슴을 내준 적이 없는 젊은 여인의 수줍음을 오랫동안, 탐욕스럽게 깊이 관찰한다." 그녀의 가슴을 만지지는 않았지만,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해 보면 자신의 불멸에 손상이 갈까 봐 자신의 욕망을 자제했기에 가슴을 만지지는 못했다, 가 더 적합할 것이다. 괴테의 명성에 대한 집착이 자제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미화된 장면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을 상대하고 권력을 지닌 남자는 아랫도리를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철저히 지킨 괴테였다. 그는 큰 불멸을 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 괴테는 베티나의 글을 통해 사후 불멸의 지속을 꿈꾸려다가 그녀의 내심을 파악하고 경계를 할 정도로 눈치 백 단이다.
하지만 괴테나 베티나가 욕망했던 "세속적 불멸'은 이 "불멸" 그대로 불멸하지 못하고 퇴색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밀란 쿤데라는 지적한다. 나이가 들어 몸이 힘드니, 괴테는 주위에서 떠드는 말들이 귀찮아진다. 이제 불멸을 관리하기가 노쇠해 쉽지 않다. 또 사후 위인들에 대한 평가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당시 최고의 음악가 베토벤 헤밍웨이의 불멸이 그러하다. 끊임없이 위인들을 재평가하고 재해석하기를 사람들은 원한다. 죽어 눈에 안 보이니 입방아 찢기 딱 좋은 상황이다. 만약 하늘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입에서 한숨이 나올만하다.
불멸이 나를 두 팔로 꽉 끌어안은 걸 확인한 그날 내가 맛본 공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했죠. 사람은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불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죠. 일단 불멸의 배에 오르고 나면 영원히 내릴 수가 없지요... 그 뒤에서 아들놈도 뭔가 써대고 늙은 마녀 거트루드 스타인도 거기서 뭘 쓰고, 나의 모든 친구들 역시 거기서 나에 대한 온갖 뒷공론과 중상을 떠들어 댔지요... 모든 대학의 교수 군단이 그 모든 얘기들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발전시켜, 수없이 많은 논문과 수백 권의 책을 펴냈답니다.
괴테와 저승에서 만난 헤밍웨이의 토로이다. 우리가 단순히 '불멸'하면 뭔가 좋다는 느낌만을 가지게 된다. 불멸의 속성은 무궁무진하게 스토리가 변화고 재해석을 거치며 불멸이 이어지는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점이 밀란 쿤데라가 우리에게 불멸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불멸은 무거움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불멸의 영속성 이면에, 불멸의 무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가벼워질 수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베티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언제 가는 죽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그녀 사후에 출판된 글 이면의 진실이 담긴 내용이 폭로된다. 그녀는 불멸에 대한 속성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멸에 대한 개인의 욕망은 죽음이라는 진통을 거쳐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영원불변의 불멸이 아닌 변화 가능성의 불멸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이다. 속세에서 만들어진 것 모두 지속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책을 읽고 불멸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내포한 속성을 가진 것이 불멸이란 것을 말이다. 그럼 우리는 이 불멸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밀란 쿤데라는 영원 지속 가능한 것은 없음을 경계한다.
불멸은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유한성의 한계를 넘는 변화를 거쳐, 무한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무한할 것 같은 불멸의 명성도 불멸하지 않는다. 변화를 거쳐 재생될 가능성의 여지가 생겨, 재해석되고 탈바꿈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밀란 쿤데라는 ”불멸은 죽음과 함께 생각해야 되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있다."라고 우리를 일깨워 준다. 인간이 남겨야 될 진정한 불멸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세상에 보탬이 될 가치를 남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불멸이 아닐까 싶다.
밀란 쿤데라는 괴테를 통해 또 다른 베티나가 되었다. 이야기 속, 괴테에 대한 통찰은 충분히 공감되고 흥미롭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을 쓰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도 또한 제2의 괴테가 되어 미래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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