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멸> 5부 “우연”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 우연은 없다."라고 밀란 쿤데라는 이야기한다. 미카엘 하네케 영화 <하얀 리본>을 보면 한 마을에, 원인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은 다 그 원인이 있음을 말해준다. 영화 전면에 인물 내면의 욕망이나 억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처음 볼 때는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 속 마을 아이들은 자신들이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억압과 폭력성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그 폭력성을 외부로 표출한다. 그 마을 내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은 마을 전체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으로 이어지고 이 불안이 사회를 교란시키고 결국 전쟁까지 일어나게 하는 원인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영화에서 경고한다. 미카엘 하네케 영화 속 전쟁 또한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이 원인이 아니라 더 뿌리 깊숙하게 근원이 되는 뭔가가 계속 쌓여서 일어난 것이다.
자살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은 결국 외부 요인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네. 그 욕망은 그녀의 존재 밑바닥에 심겨 있었고 그녀 내부에서 서서히 움터 마침내 검은 꽃으로 활짝 피어난 거지.
<불멸> 5부 “우연”은 아녜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겉으로 드러난 죽음은 도로에 자살하기 위해 서있는 여자를 피하기 위해 일어난 사고였지만 아녜스의 죽음을 향한 욕망은 늘 그녀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욕망의 뿌리가 결국 교통사고로 발현된 것이다. 사고가 날 그즈음 아녜스는 남편과 동생, 폴과 로라와 멀어질 기회를 잡게 되고, 자유를 만끽하고자 한다.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나머지 삶을 살다 간 죽음 직전의 아버지를 늘 동경한 그녀였다. 그녀의 심연에는 아버지를 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아녜스가 사고 난 어느 날 밤, 휴게소에서 울며 떼쓰는 어린아이를 우연히 맞닥뜨리는데, 자신에게 사랑 때문에 떼쓰는 동생 로라와 중첩되어 분노를 그 아이에게 표출한다. 어머니 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하게 된 이유를 돌아보며, 그녀는 그날따라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도로 위 뚱뚱한 오토바이들이 질주하는 것을 본 그녀는 질주하고 싶은 운전 충동을 순간 느끼고, 자살하기 위해 도로에 서 있던 여자를 피하려던 아녜스의 차는 곤두박질치게 된다.
내가 자네에게 설명하고자 한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 밑바닥에 행위의 동기로서 독일 사람들이 Grund라고 하는 어떤 토대가 있다는 거라네. 우리 운명의 본질을 내포한 어떤 약호랄까. 그리고 이 약호에 내가 보기엔 은유의 성격이 있네... 꽃이 이날이 아니라 하필이면 왜 그날 피었는지 어찌 설명하는가? 때가 됐을 뿐이지. 스스로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녀 안에서 서서히 움텄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네
<불멸>을 읽고 정리하면서 인도 영성 철학가인 삿구르(Sadhguru는 인도 영성가로, Isha 재단의 창립자)를 유튜브 영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저서 <카르마>에 흥미가 생겨 지금 읽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책이지만 미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카르마로 살아가지만, 그 틀을 깨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읽어 볼만한 유용한 책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마존 e-book으로 읽고 있다. <불멸> 속 나오는 “Grund “라고 하는 어떤 토대"가 결국 인도의 ‘카르마‘와 일치한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삿구루의 <카르마>와 <불멸>은 다른 언어 같은 의미이다. 이 두 작가의 글을 ’우연의 일치‘로 나는 ’동시‘에 읽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려다 보면 우연하게 일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날 그 토대가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의 나로서 살고 싶지 않은 갈망이 누구보다 큰 사람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변화하고 싶다. 이런 욕망에 대한 실현의 욕구가 독서와 명상으로 이어지고 불교 교리와 양자 역학을 알게 되고 그것이 주는 삶의 원리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자아’에 대해, 이제껏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들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럴수록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졌다. 독서량이 쌓이면서 ‘자아’에 대해 내려놓아야 내 삶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되기 시작할 즈음 유튜브 Al은 나를 삿구루 영상을 구독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 다음 삿 구루의 저서 <카르마>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불멸>을 읽고 있었고 이 둘이 통하는 이야기에 놀라웠다. 우연이 아닌 이미 씨앗은 심어져 있어 그 뿌리가 만들어지고 자라나는 것이 필연이었기 때문이다.
Karma is like old software that you have written for yourself unconsciously.
카르마는 당신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머리에 새겨 놓고 기억된 것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작동하는 기계와 같은 것이다
-Sadhguru <Karma>-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실제로 마주하는 사건들은 자신만의 이유, 자신이 축적한 토대로 말미암아 마음 깊은 곳에 쌓이게 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의 드라마가 된 것이다. 즉 이미 오래도록 변치 않을 동기, 즉 ‘Ground’(카르마)가 각인되어서 이것들이 우리 운명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수레바퀴처럼 윤회하는 것이다. 길게는 베니타에서 로라로, 짧게는 아녜스의 아버지와 아녜스처럼 반복 재생 즉 윤회한다.
이것에 힘입어, 카르마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나 자신을 알고, 타인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빛이 나를 비쳐준다. 내가 이제껏 한 행동들의 뿌리를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겨 감사하다. 상대방의 행동도 그 행동의 씨앗이 바로 눈앞에 벌어진 갈등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에 집중하니, 상대방을 좀 더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커졌다. 내 마음의 평정심이 이전보다 더 잘 유지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감사하다. <불멸>은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통찰이 집대성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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