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급히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내려왔다. 아버지께서 다행히 정신은 맑으시지만 연세가 적지 않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구십 평생 단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으실 정도로 건강하셨던 분이라 얼마나 아프시고 불편할지 생각해 보면 자식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결국 인생은 혼자 가는 거고 누구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는 말을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니 실감했다. 당신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그 고통을 나눠가질 수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께서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씀을 어머니께 하셨다고 한다. “여보 미안하오...”
아마 이 말은 지금 당신이 아파서 엄마가 힘들까 봐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60 평생 같이한 배우자에게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하고, 이제껏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말씀일 것이다. 왜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누렸던 삶 속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일까.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반성이 아버지 입원이라는 현실에 직면해서야 하게 된다.
요즘 나는 시니어 분들 상대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신들 젊은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지금 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단순한 착각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향한 자세는 참으로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젊은 친구들 못지않다. 거기에 삶의 연륜에서 오는 유연함은 배움의 속도를 가속화시켜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집안일이든,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었든 모든 일은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그때 몸이 기억한 배움에 대한 과정의 노하우는 다른 일에서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시스템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확인 힐 수 있었다. 시니어 분들은 기술에 대한 습득이 생각보다 빠르다. 더 나이가 들면 이 또한 느려지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삶은 너무 목표 지향적, 즉 결과 중심의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이 부분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과 중심적 사고로 젊은 시절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에 대해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면 시니어 분들 역시 결과 중심적 사고를 하기는 마찬가지로 보였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할 것이고, 그것으로 내 삶은 더 이상 괴롭지 않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를 인내하고 노력하면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쓸데없는 망상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결과 중심의 사고는 현재 자신의 삶을 좀 먹는 실체 없는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지게 된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을 인내해야 된다는 강박관념과, 노력하면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망상은, 삶을 지혜롭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과를 빨리 따서 먹을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사과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든 빨리 먹기 위해서든, 이 결과물에 초점을 둔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편법을 써야만 한다.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거나 병충해 방지를 위해 살충제를 강하게 뿌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과 수확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누가 진정한 수확의 열매로 받아들이겠는가. 빠르고 좋은 결과물을 얻게 해주는 역할을 우리는 반드시 신에게 넘겨야 한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 말이 진심으로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다.
이 점에 대한 성찰의 부족이 나이 들어서 까지 이어진다면 삶의 진정한 자유는 평생 얻지 못할 것이다. 결과는 한순간이고 과정은 길기 때문이다. 열매를 따는 것보다 열매를 맺기 위해 여러 과정과 긴 시간을 지나 숙성되어야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열매를 따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두려움으로 삶을 갉아먹어야 되겠는가. 때로는 폭우가 내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에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게 전전긍긍한다고 될 일인가. 내 의지의 노력 가지고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폭우가 내려 열매를 맺어 수확을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자세를 지니는 게 더 가치 있음을 이제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과가 좋았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 결과에 대한 만족은 일시적이고, 그 당시 원하는 결과를 이루기 위해 내가 했던 행동과 마음가짐에 대한 것들을 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했던 일들이 소중한 삶의 선물이었다. 원하던 결과로 이루었을 때도 물론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 결과물 자체가 지금 나를 만든 것보다는 그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조금만 성찰할 시간을 가진 나면 누구나 내 말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갈 때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 원하는 결과 중심의 사고 때문에 과정 중에 흘리는 땀과 기쁨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열매 이상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읽어낼 통찰이 요구된다. 꾸준한 독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아프신 아버지가 어떻게 될까 봐 입원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보낸 하루가 지나고, 새벽에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될 일과 지금 사랑해야 될 것에 집중해서 살아야겠다는 점을 다잡아 본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행동과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살아가야 함을 말이다. 그러면 신이 알아서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이다. 감사하자. 지혜로운 길로 가려하고 있음에.
'삶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이야기 (feat.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5) | 2024.12.17 |
---|---|
전체성을 인식하기 위한 방법 (feat.명상) (2) | 2024.05.12 |
혜안으로 이르는 길 (feat. 디팩 초프라의 '우연의 일치' & 동시성') (5) | 2024.05.06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와 데이비드 봄 (feat. 관찰자) (0) | 2024.04.29 |
자기 탐험 (feat. 변화를 위한 여정 ) (4) | 2024.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