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독일 베를린 여행때 도심 공원 숲을 산책하면서 숲 근처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으로 바란 것뿐인데 2019년 코로나 터지기 직전 예상치 않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아파트 주변에 숲이 있는 공원이 있어서 거의 매일 산책을 하고 있다. 도시 여행을 하면서 빼놓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도심 속 숲이 있는 공원을 가보는 것이다. 도심의 공원은 시민들 뿐 만 아니라 낯선 여행자에게도 좋은 안식처이기도 하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새소리 들으며 현지인처럼 돗자리 깔아놓고 커피 마시며 책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아니면 가벼운 조깅이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숲이 있는 동네 공원길을 산책하면서, 사 계절의 흐름을 지켜본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공원 숲 속 나무들을 보다가, 그 한결같은 변화 속에 다양한 역동성이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됐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요동치는 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신기했다. 숲 속의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는 그 여름에 많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늘 가던 곳이었음에도 낯설게 느껴진다. 다른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50살이 넘어서야 새삼스렇게 이런 자연의 변화를 직접 느끼다니, 그간 뭐 하면서 살았나 싶다. 뭘 위해서 살면서 이 자연이 주는 위로와 고요하고 아늑한 여유를 외면하고 살았던가 말이다. 앞으로 이사 갈 일이 또 생긴다면 숲 가까이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숲 속을 거닐다 보면 나무가 우리 인간과 닮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 많은 나무들이 어쩜 그렇게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숲에 서있는지,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달라도 어떻게 저렇게 다 다르지?라는 의문이 든다.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나무이고 그것이 숲을 이루고 살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개성이 상당히 뚜렷하다. 서로 비슷한 나무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라도 너무 달라, 누가 더 좋고 잘생긴 나무인지 구별이 안된다. 그리고 상당히 나무들은 독립적이고 쿨해 보인다. 자기 잘난 맛에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보이고, 다른 나무 신경 안 쓰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롭다. 한마디로 개성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튀지도 않는다. 물론 몸통과 가지가 다른 나무에서 비해 유난히 굵어, 숲에서 대장 나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들도 있다. 강하고 힘이 쎄 보인들 다른 나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무를 보면서 뭔가를 구별하고 판단하려는 나의 습관에서 나온 망상일 뿐일 것이다.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잡음에 지쳐있을 때 숲 속 나무들의 각기 다름을 보며, 위로와 치유의 힘을 얻을 수 있다니 감사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나무 잎들은 매일 매일 눈에 띄게 늘어난다. 짙고 울창하게 늘어난 많은 잎들은 햇살이 비쳐줄 틈 마저 거부하고 건강한 푸르름을 자랑한다. 그 푸름이 무성하고 빽빽할수록 햇살이 가려지고 그늘이 만들어진다. 온통 푸르기에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힘차고 건강한 기운이 저마다 힘자랑을 하는 듯 보이나 잎들이 다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인간의 젊음처럼 청춘의 열정과 에너지는 강하지만 아직 저마다 특성과 개별성으로 두곽을 나타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즈음, 빽빽한 잎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그 틈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색바랜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짙은 초록의 기운이 사라지고 가녀린 나뭇가지와 나무 몸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 울창하고 짙은 녹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낯선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푸르던 잎들은 이제 각기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또 한 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각기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숲은 더 멋지게 변모한다. 그 개성들을 내뿜은 날도 잠시, 미련 없이 그 시절을 버리고 사뿐히 땅으로 떨어져 대지의 일부로 돌아간다. 그리고 앙상하게 변한 가지 사이사이로, 많은 잎들에 가려 비추지 못했던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 숲은 또 다른 여유와 쉼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에크하르트 토레가 쓴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인간은 매일 매 시간 죽기에, 어제와 같은 지금, 지금과 같은 내일은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 '현존' 할 뿐인데, 지나간 기억을 곱씹어 속상해 하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현재를 볼모 삼아 희망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고문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것 모두 망상에 불과할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깨어있어야' 됨을 강조한다. 한때 찬란하고 풍성했던 나무들은 자신의 일부였던 잎들이 떨어져 나가도 연연해 하지 않으며 그리고 곧 닥칠 혹한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 다만 땅 속에 뿌리 내린 채 '지금' '이 순간' '여기' 에서 꿋꿋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나무들이 숲에서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관계의 집착이 버려지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숲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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