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

일상의 기록 (feat 도심 공원)

Christi-Moon 2023. 5. 7. 14:22

2019년 독일 베를린 여행때 도심 공원 숲을 산책하면서 숲 근처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으로 바란 것뿐인데 2019년 코로나 터지기 직전 예상치 않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아파트 주변에 숲이 있는 공원이 있어서 거의 매일 산책을 하고 있다. 도시 여행을 하면서 빼놓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도심 속 숲이 있는 공원을 가보는 것이다. 도심의 공원은 시민들 뿐 만 아니라 낯선 여행자에게도 좋은 안식처이기도 하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새소리 들으며 현지인처럼 돗자리 깔아놓고 커피 마시며 책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아니면 가벼운 조깅이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Tiergarten Berlin, Germany


숲이 있는 동네 공원길을 산책하면서, 사 계절의 흐름을 지켜본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공원 숲 속 나무들을 보다가, 그 한결같은 변화 속에 다양한 역동성이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됐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요동치는 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신기했다. 숲 속의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는 그  여름에 많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늘 가던 곳이었음에도 낯설게 느껴진다. 다른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50살이 넘어서야 새삼스렇게 이런 자연의 변화를 직접 느끼다니,  그간 뭐 하면서 살았나 싶다. 뭘 위해서 살면서 이 자연이 주는  위로와 고요하고 아늑한 여유를 외면하고 살았던가 말이다. 앞으로 이사 갈 일이 또 생긴다면  숲 가까이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낙산공원


숲 속을 거닐다 보면 나무가 우리 인간과 닮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 많은 나무들이  어쩜 그렇게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숲에 서있는지,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달라도 어떻게 저렇게 다 다르지?라는 의문이 든다.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나무이고 그것이 숲을 이루고 살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개성이 상당히 뚜렷하다. 서로 비슷한 나무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라도 너무 달라, 누가 더 좋고 잘생긴 나무인지 구별이 안된다. 그리고 상당히 나무들은 독립적이고 쿨해 보인다. 자기 잘난 맛에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보이고, 다른 나무 신경 안 쓰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롭다. 한마디로 개성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튀지도 않는다. 물론 몸통과 가지가 다른 나무에서 비해 유난히 굵어, 숲에서 대장 나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들도 있다. 강하고 힘이 쎄 보인들 다른 나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무를 보면서  뭔가를 구별하고  판단하려는 나의 습관에서 나온 망상일 뿐일 것이다.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잡음에 지쳐있을 때  숲 속 나무들의 각기 다름을 보며, 위로와 치유의 힘을 얻을 수 있다니 감사하다.

*Gruneburg Park, Frankfurt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나무 잎들은 매일 매일 눈에 띄게  늘어난다. 짙고 울창하게 늘어난  많은 잎들은  햇살이 비쳐줄 틈 마저 거부하고 건강한 푸르름을 자랑한다. 그 푸름이 무성하고 빽빽할수록 햇살이 가려지고 그늘이 만들어진다. 온통 푸르기에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힘차고 건강한 기운이 저마다 힘자랑을 하는 듯 보이나 잎들이 다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인간의 젊음처럼  청춘의 열정과 에너지는 강하지만 아직 저마다 특성과 개별성으로 두곽을 나타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 레티로 공원 (Parque de El Retiro) Madrid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즈음, 빽빽한 잎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그 틈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색바랜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짙은 초록의 기운이 사라지고 가녀린 나뭇가지와 나무 몸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 울창하고 짙은 녹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낯선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푸르던 잎들은 이제 각기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또 한 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각기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숲은 더 멋지게 변모한다. 그 개성들을 내뿜은 날도 잠시, 미련 없이 그 시절을 버리고 사뿐히 땅으로 떨어져 대지의 일부로 돌아간다. 그리고 앙상하게 변한 가지 사이사이로, 많은 잎들에 가려 비추지 못했던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 숲은 또 다른 여유와 쉼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지난 가을 산책하면서


에크하르트 토레가 쓴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인간은 매일 매 시간 죽기에, 어제와 같은 지금, 지금과 같은 내일은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 '현존' 할 뿐인데, 지나간 기억을 곱씹어 속상해 하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현재를  볼모 삼아 희망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고문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것 모두 망상에 불과할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깨어있어야' 됨을 강조한다. 한때 찬란하고 풍성했던 나무들은 자신의 일부였던 잎들이 떨어져 나가도 연연해 하지 않으며 그리고 곧 닥칠 혹한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인다. 다만 땅 속에 뿌리 내린 채 '지금' '이 순간' '여기' 에서 꿋꿋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나무들이 숲에서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관계의 집착이 버려지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숲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삶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기록(feat. 독서와 일의 연결)  (1) 2023.05.14
독서를 하면서 드는 생각들  (2) 2023.05.09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0) 2023.05.03
자연이 주는 지혜 (feat 산)  (0) 2023.04.28
깊이에 관하여  (0)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