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눈물로 닦다>에서 조이한은 “미술은 때로 깨달음을 주는 대상, 그것도 매우 훌륭하고 흥미로운 대상" 이라고 말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걸작 “The Lovers” 는 조이한의 말대로 매우 훌륭하고 흥미로운 대상 그 자체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오해다. 동시에 사랑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연인들은 불완전한 상대를 앞에 두고 완전하다고 상상한다. 상상력이 있기에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상상력이 있기에 사랑한다.’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말은 분명한 진실이지만 씁쓸하다. ‘상상력이 있기에 사랑할 수 있다.’라는 의미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풍부한 상상력이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방해하는 망상으로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화가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눈 가린 연인들의 키스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 연인들은 얼굴을 가린 채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한 채 키스한다. 눈을 가려서, 시각적 끌림이 없으니 서로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더 잘 파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앞을 가려 더 볼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알지 못하게 될까? 베일에 가려져 있어 서로에 대해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오히려 연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을까? 지금은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지만, 만약 저 베일이 벗겨지면 연인의 관계는 끝이 나는 게 아닐까?
묘하게도 오른쪽 연인을 감싸고 있는 베일은 왼쪽 연인의 베일 보다 더 타이트하게 덮여 있으며 검정 넥타이는 그 느낌을 강화 시켜 답답한 기분이 든다. 반면에 왼편 연인에게 씌워진 베일은 오른편 연인의 것과 달리, 느슨하고 자유로운 느낌 마저 든다. 베일을 쓴 저들의 모습은 이 두 연인 중에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 순간 헷갈리기도 한다. 넥타이를 맨 연인이 대부분 남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것 일 수 있다. 왼편 연인이 키스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지만 외형에서는 남성성이 더 느껴진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저 베일을 벗기면 옷을 그렇게 입었을 뿐 왠지 왼쪽이 남자고 오른쪽이 여자일 수 있을꺼도 같은 착각 마저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오른쪽 연인의 베일은 넥타이와 함께 목을 옥죈다. 뒤 오른쪽 기둥까지 답답한 느낌을 자아낸다. 완전한 사랑의 결실로 맺어지는 키스가 아니라, 뭔가 불완전하고 결핍이 느껴지는 키스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 나름 작품을 보면서 상상해 본 것이다. 작품이 관람자로 하여금 궁금증과 상상력을 끌어 오도록 자극시킨다.
우리는 눈으로 많을 것들을 볼 수 있지만 정작 본질을 놓치고 만다. 그래서 본질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마음으로 보기 위해 상상력이 요구되지만 그것 또한 한계가 있다. 진정한 상상력은 세상의 틀과 익숙한 생각으로 믈든 관습에서 벗어날 때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망상과는 다른 영역의 힘이다.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남자와 여자로 분별되는 이분법적 관계를 넘어선 ‘감성’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 작동할 때, 진가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연인들의 진실된 사랑은 베일을 벗어던질 때 비로서 생길 것이다. 눈을 가리는 베일뿐만 아니라 마음의 베일까지 벗을 때 따르게 되는 불편을 감수하고서 말이다. 그것들을 모두 벗길 수 있는 상상이야 말로 연인들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힘인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The Lovers”는 미묘하고 복잡한 사랑의 관계에 대해 미술작품을 넘어 철학적 사유까지 할 수 있도록 관람자를 이끄는 힘이 느껴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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