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

일상기록(feat. 독서와 일의 연결)

Christi-Moon 2023. 5. 14. 18:45

대학시절 내 전공은 연극학이다. 그래서 대사를 읽고 배우들 연기를 보고 들으며 그게 적절한지 고민해서 알려주고 분석하며 함께 작업하는 일이 이제껏 20년 가까이 한 내 직업이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안 보이는 공간을 읽어내는 힘을 기르고 그 안 보이는 것을 시각화시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것이 예술작업의 핵심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내 생각이 프리초프 카프라가 쓴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졌다.

* Museo del Teatro de Caesaraugusta


배우들이 하는 대사가 글자 문장의 나열을 암기하고 인물의 감정표현의 중요성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인물의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두 가지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흐름"의 측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사와 대사 사이에(배우들이 연기연습 과정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안 보이는 공간, 대사가 없는 이 공간에도 에너지 흐름이 실재한다는 점이다. 이 빈 공간에도 대사와 똑같은 에너지가 실려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그 에너지를 배우 스스로 인지 못한 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문장과 뒷문장의 흐름을 연결해 주기 위해 반드시 '대사와 대사 사이'에 "상호 역학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호 연결의 흐름" 속에서  대사가 진행되고 에너지가 흘러가므로 자신의 연기에 이것을 어떻게 구현해 낼지 훈련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에너지 흐름이 정해진 것이 아닌 "불확정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에너지의 흐름"이 늘 똑같은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받아 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 한 가지 중 쉽게 알 수 있는 것 중에,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관찰자, 관객' 그리고 '공간, 무대'에 따라서 이 에너지의 흐름이 배우에게 영향을 미쳐, 똑같은 공연이라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무대에 같은 공연일지라도 같은 객석에 관객이  열명일 때와 다른 날 관객이 백 명일 때, 혹은 같은 공연이  다른 공간으로 옮겨져 공연할 경우 아무리 같은 작품의  같은 배우들이 연기하더라도, 에너지 흐름과 기운이 달라져  배우 자신의 연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가 같은  대사로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기 느낌이 달라진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대사, 텍스트라는 거시적인 것에만 훈련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것에 대한 것이, 실재함을 적극적으로 받아드려 훈련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작품 속에 내재된 "에너지의 흐름, 역동성" "에너지의 상호 작용" 그리고 공간과 관객의 변화에 따르는 에너지 흐름의 "불확정성"까지, 늘 같은 공연이라도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 들을 훈련과 작품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이 같은 것이 중요하지만 물론 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Museo del Teatro de Caesaraugusta


그리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도, 일 적인 연관성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데, 몸과 마음을 항상 열어두고 세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길러야 하지 않을까? 과학적인 영역의 거대한 미시적 세상을 다 읽어낼 수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