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

자연이 주는 지혜 (feat 산)

Christi-Moon 2023. 4. 28. 13:01

John Minford가 엮은 <I CHING> 17괘에서  인용한, 시인 Xie Lingyun의 시 중에  ‘참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마음에 와닿아 적어본다. 시의 요지는 ‘산속에 살면서 벌어지는 즉흥연주에도 마음을 고요히 만들라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내용이다.
 

".. the image of the True Gentleman  "going in to rest" in his "Rhapsody on LIving in the Mountains.... Cultivate Heart-and-Mind, Let it be unmoved By sorrow and joy, Know that certain things are inevitable. This is the height of Spiritual Strength..."


특히 "‘going in to rest’ in his Rhapsody on Living in the Mountains" 이 말이 아름답다. 산처럼 우리 삶은 늘 내면에서든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든 늘 요동치고 있고, 그 요동으로 인해 즉흥적이며 충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오름과 내림으로 빚어진 랩소디의 연주에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참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산은 인간의 삶을 조물주가 형상화시켜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고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새벽 읽었던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2>을 읽으면서 주인공 토마스가 동생인 토니에게 말한 산과 바다에 대한 것이 글 또한 멋지다.  
 

예전에 내가 산을 더 좋아한 이유는 아마 그게 더 멀리 있어서 그랬을 거야. 이제 다시는 그리로 가고 싶지 않아. 두렵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것은 너무 자의적이고 너무 불규칙적이고 다양해...산에서는 용감하게 등반할 수밖에 없지... 모험심, 결의, 용기로 충만된 자신 있고 힘찬 행복한 눈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휘젓고 다니지...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력을 시험하려고 들쭉날쭉하게 솟아 틈이 벌어진 현상들의 불가사의한 다양성 속으로 대담하게 기어올라 들어가지.

 
토마스 만의  소설에서 말하는 산은 "in his Rhapsody on Living in the Mountains"을 정확하게 묘사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의  중국시인은  산을 멀리 조망하고 철학적으로 사유하여 시를 통해 전해줬고, 토마스 만은 산을 아주 디테일하게 관찰한 것을 소설로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의 주인공 토마스는 마음의 평온을 산이 아니라 바다에서 찾았다는 사실이다. 

넓은 범위의 파도... 줄줄이 잇다가 왔다가는 부서지고 왔다가는 부서지고, 황량하게 끝도 목적도 없이 헤매지만 그것은 단순한 것이고 당연한 것이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로해 줘. 점점 더 많이 바다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 바다의 단조로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인간일까? 그들은 내면적인 문제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얽혀 들어간 사람들일 거야... 사람들은 해변의 백사장에서는 조용히 쉬게 되지만 산에서는 용감하게 등반할 수밖에 없지.

 

 


역경(I Ching)에서의 산은 우리가 그 산속에 있더라도 삶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산은 바다처럼 역동적이지는 않다. 침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산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생명과 변화와 역동성이 숨겨져 있다. 고요해 보이지만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역동적인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오르고 내림이 순환하고 지속된다.  때로는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다가 어떨 때는 끝없이 추락하고, 또 어떨 때는 계속 올라갈 거 같지만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산 은 그야말로 우리 삶을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다.  

토마스 만이 25살에 쓴 <부덴부르크가 의 사람들>에서는 삶을 투쟁을 벌이는 곳으로 산을 표현했다. 산을 오르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의 소설에서는  삶의 투쟁처가 산이고 위안처는 바다였다. 바다는 파도가 밀려왔다가 부서지는 필연성을 보면서 삶의 오르내림을, 파도가 일지 않는 것을 보면서, 평점심을 가지게 된다고 소설 속 주인공 토마스는 말한다.
 

동양과 서양이 보는 산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지만 뭔가 딱히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조금은 다른 듯하다. 뭔가 수묵화에서 보이는 산이랑 산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서양 미술 작품을 볼 때의 차이라고 할까.

토마스 만이 후기에 쓴 <마의 산> 은 중국 시인이 말한 산의 통찰과 더 가깝긴 하다. <마의 산>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가 눈 덮인 산속에서 길을 잃고 스키를 타는 장면은 그야말로 산이 지닌 역동성, 고요함 그리고 예기치 않은 변화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 그야말로 산속에서 연주되는 랩소디를 듣는 것처럼 섬세하고 대담하게 산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작품 속 요양원이 있는 산 위로  호기심과 도피처로 올라가지만 결국 죽음으로 인한 것이든 또 다른 도피처로 가기 위해서든 아니면 한스처럼 전쟁 속으로 자신을 던지든, 결국 언젠가는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토마스 만의 ‘산’은 정복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경(I Ching)에서 산은 피 터지는 투쟁처지만 그것은 결국 랩소디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산을 바라보면 삶은 늘 올라가고 내려가는 반복적 흐름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둘은 나눌 수 없는 하나이기에 이것을 간파하여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삶, 즉 마음의 평정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독서가 주는 즐거움은 막연하게 생각하고  알고 있던 것들을 명료하게 밝혀준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접근 방식이 작가마다 다르게 읽히니 흥미롭다. 그러나 그 각기 다른 것들이 결국 하나로 통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달을 때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따스해진다. 그래서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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