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랍시고 가르친 지도 20년이 되어간다. 오늘 스승이라고 시간 내서 연락 주고 말 걸어준 제자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바빠서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도 문득 어느 날 나를 생각해 준다면 그 또한 감사하고 감사하다. 나도 이 만큼 성장하기까지 도와준 스쳐간 많은 스승들에게 인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유독 학생들에게 예술활동 하는 것을 권장하셨다. 그래서 학예회 때 의상 구해서 입고 연극했던 기억이 난다. 그 추억은 사춘기 때 남들처럼 공부해서 점수에 맞는 전공을 택하는 것이 싫어 연극 영화과 가겠다는 것까지 이어진다. 고등학교 입학해서 연극반에 못 들어가게 말린 엄마 때문에 하고 싶었던것을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반항심도 컸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하기 때문에 (지금도 잘 안 고쳐진다), 거품 물고 반대하시는 엄마의 뜻을 꺾고 연극영화에 입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이 전공을 안 해도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그 당시는 간절했다. 아무튼 이런 초등학교 때의 추억이 이어져 지금까지 관련일을 하고 있으니, 스승이라는 역할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한 나로서 지금 스승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사실 부끄럽다. 스승으로서 인격 미달에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가르치면서 오히려 내기 더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을 가르치기 전에 나 스스로 선생다운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문해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더욱더 한심한 것은 이런 선생으로서 스스로 성찰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끄럽고 한편으로 미안하다. 제자들에게 집착하고 좋은 선생으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떠나간 제자들을 미워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보기 어렵지만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중에 나오는 글은 읽고 또 읽어 보아도 항상 울림을 주고 나를 채찍질해준다.
스승은 혼자 힘으로 걸을수 없는 제자에게 목발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제자는 다리가 회복되면 목발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다리가 다 나았는데도 계속해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스승에 대한 최고의 경배는 목발이 되어 나를 걷게 해준 스승을 미련없이 떠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목발이 되어주었듯 나도 다른 이에게 목발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껏 연락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당시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이라고 구별 지었던 모두가 나에게 깨우침을 주지 않는 인연은 없었다. 그들 모두 나에게 삶의 지혜를 주는 제자이며 동시에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다. 그들로 인해서 성장할 수 있었고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 은인들이었다. 이런 삶을 가도록 인도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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