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파우스트 박사 12 (feat. 욕망에 대하여)

Christi-Moon 2023. 7. 7. 15:28

일주일 동안 삶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루틴 하는 것도 규칙적으로 하지 못하고 책도 집중해서 읽어 나가지 못했다. 나 자신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마이너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간은 사람들과 연락도 자제하고 해야 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일들을 겪으면서 몇 가지 삶의 지혜라고 말하면 거창한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위대한 영혼들, 성인들이 하신 말씀이 들어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욕망이 강하면 부러진다는 교훈이다.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그게 선의든 악의든, 좋든 나쁘든, 선한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과유불급은 좋지 않다. 특히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넘어, 그 간절히 바라는 것에 대한 대상을 향한  욕망이 강하면 그 욕망이 실현될 수는 있지만 그 실현됨과 동시에 자신을 파괴시키는 결과는 낳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한 욕망이 개인을 향한 욕망이 아닌 예술 창작에 대한 욕망이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파괴의 형태든 아니면 창조의 형태든,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욕망은 누구를 희생시키기도 하고 반면에 누구를 회생시킬 수도 있을것이다. 어떤 것이 나쁘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당시 판단이 늘 옳은 것만이 아닌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달리 해석하는 세상이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쟝 줄리앙, 우양 미술관


<파우스트 박사>를 읽으면서  토마스 만이 말하고 싶은 것이 결국 욕망에 대한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독일이라는 국가의 힘과 권력에 대한 욕망, 아드리안의 예술에 대한 욕망, 이네스와 그녀의 여동생 클라리사의 사랑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이네스가 사랑하는 슈베르트페거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욕망, 이 각기 다른 욕망들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떤 삶의 방식과 태도와 행동을 가지게 되는지 이 책의 화자 제레우스는 그것을 관찰하며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끝까지 읽지 않아 구체적으로 이 욕망의 끝이 어디까지 인지 다 읽지 않아 알 수 없다. 파국으로 치닿고 있는 쪽으로 흐르고는 있다. 사실 이제까지 중간중간에  나오는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이야기가 토마스 만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의 이야기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슈베르트페거에 대한 이네스 로데가 가지는 사랑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32장에서 흥미롭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토마스만이 왜 이네스의 사랑 이야기를 삽입했는지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으나 읽다 보니 모든 이야기 들이 하나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드리안이 살던 이 시기는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억압된 환경에서 살고 있었던 시기였다. 결혼은 여자에게 있어서, 부모로 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행하는 도피처 이기도 했다. 동생 클라리사가 연극을 위해서 집을 떠나자, 이네스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고, 무엇보다 자신이 지닌 보헤미안 기질을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은근히 억압하고 있었다. 자신의 기질을 자신이 다스리지 않고, 상대의 강요의 의해서 발현되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그 억압에 대한 기운이 폭력성으로 변환되고  심지어 주위 사람을 파괴하거나 자신을 파괴하는 에너지로 전환되어 생성된다.    
 

그런 이네스가 독일 교수 부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남편 동료들의 정숙한 부인들과 교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탈리아와의 교제를 더 좋아했고 은밀히 그녀를 찾아가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천성에 잠재하는 분열증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사실 그녀는 평범한 시민 생활을 동경했음에도 근본적으로는 그런 생활에 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네스 로데와 헬무트 인스티토리스 교수는 결혼식을 올리고  남 부럽지 않은 지위에 오른다.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는 이네스는 딸 셋을 낳았다. 그러나 이네스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제대로 삶이 돌아가는 것처럼 외부에서는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네스는 슈페르트페거를 잊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향한 열정이 점점 더해 갔다. 이 열정을 오히려 슈베르트페거가 더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네스는 그 사랑의 열정의 기운을 다른 곳으로 쏟았다.
 

이네스 인스티토리스는 자신을 비호해 줄 중산층 신분을 보호막으로 삼아 정신 상태나 행동거지가 사춘기나 다름없는 남자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그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 세 불신과 근심을 안겨 주었지만,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에서 눈뜬 그녀의 관능적 욕구는 그의 품에서 만족을 찾았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은 당연히 그녀의 신경을 쇠약하게 만들고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매력을 위협함으로써 그녀를 극도의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서 느껴지는 쾌락은 번민하고 두려워하고 상심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이네스는 더 이상 쾌감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이 책의 화자인 제레누스에게 털어놓는다. 제레누스는 그녀에게 쾌락과 벌은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네스는 이 쾌락에 대해서 좀 다른 접근으로 사고하는 것 같았다.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일단 이네스는 육체적 쾌락을 일시적인 감각으로 치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정신적인 가치로 승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네스는 독서를 하고 시를 습작한 경험도 있다. 그러기에 이네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 말하는 관점의 전환, 이분법적 사고의 지양, 새로운 시각에서 나오는  창조성의 발현은 이네스의 욕망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아드리안의 가지는 예술에 대한 욕망이나 이네스가 가지는 육체에 대한 욕망, 또 그 욕망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녀는 애초에 적절히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 경우 그녀는 정신적 가치와 감각적 정열의 독특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정신적 가치는 그에 버금가는 진지한 쾌락 속에서만 충족되고 실현될 수 있으며 양자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빠뜨릴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이라는 생각에 몰입해 있었다. 그녀의 말에서는 '정신적 가치'와 '감각적 욕망'이라는 개념이 독특하게 뒤섞여서 우울하고 불안한 열정과 만족감의 뉘앙스를 띠었다. 그녀는 감각적 욕망이 곧 진실한 마음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으며, 혐오스러운 '사교계' 따위하는 상극이라고 생각했다.

 
이네스는 사교계에서는 정신적 가치가 실현될 수 없는 곳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녀는 정신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세계는 사교계에서 추구하는 맹랑한 허식과 거기서 느껴지는 짙은 슬픔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다. 오히려 이런 모순을 융합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의지를 가지기를 원했다. 그녀로서의 나름 투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슈베르트페거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다른 남자에게서 찾고 그것을 안식처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채운 그 이상을 넘지는 못했다. '여자'라는 제약이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여성미'를 앞세울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그것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어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욕망이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는 어떤 것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사랑을 향한 욕망은 더 그러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욕망의 실현은 창조성을 구현하고 세상을 탈바꿈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욕망은 오히려 반성과 성찰이 요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드리안의 음악을 향한 욕망은 어디까지 가게 될 것인가. 이네스와 제레우스의 대화 부분인 32장 역시 여러 번 읽어도 완벽하게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네스의
욕망은 아드리안의 욕망과는 다른 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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